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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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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1월 3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256g | 124*188*20mm
ISBN13 9791188862313
ISBN10 118886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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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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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한 편의 시다. 구름에서 떨어져내리는 가벼운 백색 송이들로 이루어진 시.
하늘의 입에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시이다.

그 시는 이름이 있다. 눈부신 흰빛의 이름.

눈. --- p.8~9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유코는 고요하게 흘러 사라지는 강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 p.11

어느 아침, 머릿속에서 물병 깨지는 소리에 한 방울 시가 움트고, 영혼이 깨어나 그 소리의 아름다움을 받는다. 그 순간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움직임 없이 여행을 한다.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 p.12

어느 날 아침 우리는 깨어난다. 그때는 세계에서 물러서서 세계에 대해 더욱 놀라게 된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보게 된다. --- p.13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슬프고 아름다운 사실이었다. 그는 늙어가리라는 것. 그래서 어느 날 죽으리라는 것. 그녀에게 걸린 사랑은 죽지 않으리라는 것. 얼음 속에서 잠들어 있는 얼굴도 늙지 않으리라는 것. --- p.47

“그러네.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줄타기 곡예사의 예술을 지니고 있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시의 줄은, 한 작품의 줄은, 한 이야기의 줄은 비단 종이에 누워 있지. 시를 쓴다는 건 한 걸음씩, 한 페이지씩, 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일세. 가장 어려운 건 지상 위에 떠서, 언어의 줄 위에서, 필봉의 도움을 받으며 균형을 잡는 일이 아닐세. 가장 어려운 건 쉼표에서의 추락이나 마침표에서의 장애와 같이 순간적인 현기증을 주는 것으로 중단되곤 하는 외길을 걷는 일이 아닐세.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시쓰기라는 줄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일세.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 상상의 줄에서 한순간도 내려오지 않는 일일세. 그런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세.”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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