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설에 의하면 기원정사 본당이 7층짜리 건물이었고, 또 오기단의 주춧돌의 규모로 미루어 웅장한 가람의 모습이 헤아라서 그런 인원을 수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중요간 반론은 아무리 『금강경』의 설법이 고도의 반야지혜만 꼭 선정된 남자 비구승 1,250명이 엄숙하게 앉아 있는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보살대승공한 이유는 승단내부의 자기반성으로부터 일어났기 때문이지만, 그것보다는 본질적으로 광범한 재가신도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토기승가의 모습은 오늘날의 절간에서 보여지는 군일색의 전문화된 집단이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엄격한 서열이나 차별이 있는 그런 집만이 아니었다. 따라서 『금강경』이 갊하여진 마당이 큰 비구들 1,250멸난의 자리이었다고 하는 것은 『금강경』의 혁신적이고 민중적인 성격을 비구의 엘리티즘으로 귀속시키는 병폐를 조장시킬 우려가 있다.
--- p.117
인도문명과 중국문명이 파미르고원이라는 지형상의 조건때문에 격절되고, 차단되어 교섭이 없던 시절, 붓다가 살아있던 그 시절 그 즈음에,중국에는 노자니 장자니 하는 성인이 살고 있었다. [장자][외편]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버려야 한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버려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말이라는 것은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 뜻을 잡으면 말은 버려야 한다.
말을 버릴 줄 아는 사람,
나는 언제 그런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해볼 수 있을 것인가?
장자의 제일 마지막 말은 매우 아이러니칼하다.'말을 버릴 줄 아는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한다'여기에 바로 방편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 p.216
오늘의 시대를 우리는 “위기의 시대”(the Age of Crisis)라고 말한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을 앞둔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에 대한 각성이 없을 수 없다. 지식만이 증대하고 지혜가 멸시되며, 감각만이 팽대하고 깊은사유가 차단되며, 육욕에 노예가 되어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늙은이조차 가치관을 상실한채 표류하고, 역사의 진행은 정당한 역사가 들어설 수 있는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면서 우리 삶의 질을 근원적으로 저하시키고 생명의 장들을 모두 파괴해나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종말의 기로에서 있는 것일까?
여기 이 절에서 수보리는 인류가 과연 이러한 말세론적 분위기속에서 <금강경>의 지혜와 같은 심오한 사유를 삶의 가치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 p.207
소승 아라한에게 주어지는 실천덕목으로 원시불교의 팔정도를 든다면, 대승보살에게 주어지는 실천덕목은 육바라밀이라는 것이다. 이 육바라밀이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 덕목을 말하는데, 앞의 전오바라밀은 최후의 지혜바라밀을 얻기 위한 준비수단으로서 요청되는 것이다. 바로 이 최후의 지혜바라밀, 즉 혜지의 완성, 그것을 우리가 반야라고 부르는 것이다.
--- p.43
버드나무 밑에서
찌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그래! 부처님이 문둥이요, 문둥이가 부처님이다.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이 뭉크러지고, 발톱이 빠지고 발가락이 떨어져나가고, 눈썹이 빠지고 코가 뭉그러지고 귀가 찌그러지고, 살갗이 바위처럼 이그러지는, 날로 我相이 없어져가는 바로 그 문둥이야말로 부처님인 것이다.
97 p.
돈이란 돈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에만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부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속성때문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만 돈을 번다. 돈을 벌어서 또 돈을 버는데만 열중한다. 그들의 돈을 버는 노력이 아무리 진실한 것이라 하더래도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진실이라면 그 진실은 아무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돈의 허상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돈의 확대재생산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돈을 祗園에 까는 가치로 환원시키는 자세가 바로 그 사회의 돈을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 사회의 부자들은 깊게 깨닫고 있지를 못하다. 미국의 부호 카네기도 미국에 거대한 도서관을 일천 팔백개를 지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러한 공력이 오늘의 미국의 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서원과도 같이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사설교육기관은 한 푼 두 푼에 허덕여도 그 서원마루에 황금 한 돈이라도 깔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으나, 라스포사의 터무니없는 비싼 옷들은 날개돋힌 듯이 팔려 나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반추해 볼 때 이 초기승단의 이야기는 오늘 교회나 사찰에 연보돈이 푹푹 쌓이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p.111
'금강경'은 논리의 전개가 아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찬가요, 해탈의 노래다. 그 노래가 이 진언속에 다 함축되어 있다. 진언을 말할 때는 반드시 리드믹한 노래로 불러야 한다.'
--- p.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