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전통적인 조직 신학의 구조 대신 목회자나 신학생, 일반인이 가질 만한 궁금증을 각 교리의 핵심 문제를 여닫는 기본 틀이 되게 했다. 교리를 풀어 설명할 때도 실제 삶이나 교회생활에서 공명을 울릴 만한 사례가 없나 한 번 더 생각했다. 짧은 식견을 가지고도 무모하게 소설이나 시, 영화 등의 문화적 소재도 활용하면서 신학의 ‘낯섦’을 신학의 ‘어려움’으로 혼동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려 했다. 특정한 교단의 신학적 입장을 옹호하거나 소개한다는 느낌을 피하고자, 성서에 기초하면서도 그리스도교 전통 속에 서 발전한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감 있고 충실히 소개하고자 했다. -‘머리말’에서(13쪽)
현재 한국 개신교의 큰 문제로 지적되는 반지성주의는 왜 생겼을까? 신학적 고민과 교회적 실천의 역동성이 있어야 할 자리를 권력의지와 개인의 욕심이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가? 유명 대학 학위나 유학이라는 포장으로 빈약한 신학적 성찰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진지하게 공부하기보다는, 너무 쉽게 사회나 문화를 적대시하지는 않았는가? 이처럼 한국 교회의 여러 일그러진 모습은 신학의 부재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1장 ‘신학의 정의’에서 (37-38쪽)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 특별히 근대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의 인간들을 위해 ‘특별한 방식’ 으로 우주의 기원을 알려 주신 결과물이다. 창세기는 그 자체로 완결된 우주론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 신앙 속에서 성숙하고 자라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답고 지혜롭고 권위 있는 설명이다. 또한 창세기는 인간의 인식과 언어 수준으로까지 자신을 낮추신 하나님의 ‘겸손’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어두워진 마음을 밝히는 성령의 빛에 따라 창조의 신비를 배워 갈 수 있다.
-7장 ‘창조론’에서(164쪽)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으로 바꾸어 구약성서를 읽어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잘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숨겨진 뜻에 맞게 잘 사는지 아닌지 지켜보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를 통해서도 기뻐하기 원하시는 인격적 존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숨겨진 신의 의지를 찾으려고 불안하고 강박적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창조주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자유롭고 개성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한 가지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하기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해도 거기서 기쁨을 얻는 것과 유사하다.
-9장 ‘하나님의 뜻’에서(203쪽)
목회나 선교 현장에서 꼭 필요한 특정한 그리스도론적 이미지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실제 모습보다는 우리의 욕망, 시대적 필요, 교회의 요구, 현장의 논리가 오늘날 그리스도론에 관한 담론을 꽉 채우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영원한 ‘낯선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편하고, 다루기 쉽고, 이용하기에 편리하도록 현대 문화에 길들이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T. S. 엘리엇이 ‘호랑이 그리스도’Christ the tiger라는 시적 표현을 쓴 것이나, C. S. 루이스가 사자 아슬란Aslan으로 그리스도를 형상화했던 것도 그리스도마저 애완동물 다루듯 하려는 종교 심리로부터 그분을 낯설게 하고자 함 아니었을까?
-13장. ‘그리스도론’에서(301쪽)
아무리 욕망이 잘못 사용된다 하더라도, 욕망은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불가결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오히려 욕망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큰 만큼 오용의 사례도 많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욕망이 대중이 원하는 우상을 주조하지 않으려면,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근원적 갈망을 유한한 존재에 대한 욕망과 대치하지 않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의 다양한 욕망을 영원에 대한 갈망으로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19장 ‘욕망론’에서(415쪽)
하나님께서 꿈꾸셨던 미래를 상상하고 미리 맛보면서, 칙칙한 현실에 정 의와 평화가 흐르고, 사랑과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초대가 종말론 이다. 그렇기에 종말론은 철저하게 미래에 관한 교리이자 철저하게 현 실과 연결된 교리이다. 우리의 손으로 조종하거나 이뤄 나가지 못할 운 명에 관한 교리이지만, 우리의 순종과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리 이기도 하다. 종말론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오늘의 삶과 연결함으로써, 일상에도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가르침이다.
-34장. ‘종말론I’에서(740쪽)
수많은 이들의 질문이 오랜 시간 모이고 축적되면서 그리스도교 전통이 형성될 수 있었고, 질문이란 열쇠 덕분에 전통이라는 보고(寶庫) 속에 펼쳐진 의미의 세계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집필 하는 내내 흥미로웠다… 질문은 대화에 참 여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열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특정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며 의미가 형성되도록 인도해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질문이란 참 지식을 얻는 가능성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진정성 있고 충만한 대화를 만들어 주는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후기(後記)’에서(792-793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