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컨대, 표백제가 피 냄새를 감춰 준다는 사실은 다들 몰랐을 거다. 대부분 표백제가 만능이라 믿고 마구잡이로 쓰면서도, 뒷면에 붙어있는 성분표를 꼼꼼히 들여다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표백제를 쓰면 소독은 되겠지만, 잔류물 제거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우선 욕실을 박박 문질러 삶과, 죽음의 흔적까지 깨끗이 지운 후에야 표백제를 사용한다.
지금 내가 들어와 있는 이 욕실은 최근에 리모델링한 게 틀림없다.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다. 세 시간 가까이 청소를 하고 나니 더더욱 그렇다. 샤워실 벽면 틈새, 누수방지제 사이사이에 스며든 피를 닦아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밖으로 나와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그가 쓰는 샤워 젤이며 칫솔, 치약, 모두 다 세면대 위에 달린 수납장에 들어가 있다. 샤워매트는 한 장 깔려있다. 직사각형의 노랑 바탕에 검정색 스마일상을 그려놓은 매트. 그것만 빼면 욕실은 온통 흰색 천지다.
그녀가 전화했을 때 나는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쟁반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접시 왼쪽에 포크, 오른쪽에 나이프를 놓고, 냅킨은 왕관 모양으로 접어서 접시 한가운데에 올려놓았다. 영화는 시작 부분의 자막에서 멈추어 있고, 오븐의 타이머는 막 종료음을 울리던 바로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있던 전화기가 맹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던 것.
집에 가면 음식은 이미 식어 있을 테지.
나는 세면대로 가서 장갑을 씻는다. 하지만 손에서 벗지는 않았다. 아율라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있다.
“시체를 버리러 가야 해.” 내가 그녀에게 말한다.
“나한테 화났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빨리 시체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이곳에 온 뒤, 일단은 동생과 함께 그 남자를 내 차 트렁크로 옮겨놓았다. 그래야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시선을 견딜 필요 없이 마음껏 바닥을 문지르고 닦을 수 있었으니까.
“가방 챙겨.” 내가 대답한다.
우리는 차로 돌아간다. 그는 여전히 트렁크에 실려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같은 밤 시간, 제3메인랜드 다리는 차량통행이 드문데다 가로등도 없어서 칠흑같이 어둡다. 하지만 장장 12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긴 다리 건너에는 도시의 불빛이 환하다. 우리는 지난번 시체를 던졌던 그곳, 다리 난간 너머 물속으로 그를 떠나 보낸다. 최소한 외롭지는 않겠지.
차 트렁크 안쪽에 피가 조금 배어있다. 죄책감인지 아율라가 청소를 하겠다고 나서지만, 나는 그녀의 손에서 청소용액을 낚아채 핏자국 위에 붓는다. 내가 직접 물 두 컵에 암모니아 한 스푼을 섞어 만든 용액이다. 범죄현장을 완벽하게 조사할 만한 기술이 라고스 경찰에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율라는 결코 나만큼 효과적으로 흔적을 없애지 못한다. ---「표백제」중에서
“그 남자 이름이 뭐였지?”
“페미.”
나는 그의 이름을 휘갈겨 적는다. 아율라가 내 침실에 함께 있다. 그녀는 머리를 뒤로 기댄 채 내 소파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다. 그녀가 목욕을 하는 동안 나는 그녀가 입었던 옷을 태웠다. 장미색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녀에게서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난다.
“그 사람 성은?”
그녀가 입술을 앙 다물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머리를 흔든다. 뇌의 앞쪽으로 이름을 흔들어 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한다. 나라도 그 친구 지갑을 챙겼어야 하는 건데.
나는 수첩을 덮는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공책이다. 일전에 TED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행복한 순간을 매일 하나씩 기록했더니 인생이 바뀌더라는 내용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수첩을 샀다. 첫 장에다 이렇게 적었다.
‘침실 창밖으로 하얀 부엉이를 보았다.’
그날 이후로 수첩은 거의 비어 있다.
“내 잘못이 아니야, 알잖아.”
하지만 나는 모른다. 어떤 잘못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의 성이 기억 안 나는 것? 아니면 그의 죽음?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칼은 그녀를 보호하는 무기였다. 남자랑 있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 남자들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갖고 싶어 하니까. 그녀는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만 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180센티가 넘는 그에게 그녀는 인형처럼 보였을 것이다. 작은 몸집, 긴 속눈썹, 도톰한 입술을 가진 인형. (그녀 자신의 표현이다, 내가 아니라.)
그녀는 첫 번째 공격에서 그를 죽였다. 심장에 그대로 꽂힌 칼. 그의 죽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그러고도 두 번을 더 찔렀다. 그가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숨소리밖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수첩」중에서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두 명의 여자가 방으로 걸어 들어가. 집은 아파트 3층이야. 방 안에는 남자의 시체가 있어. 두 여자는 어떻게 남들 눈에 띄지 않고 시신을 1층까지 운반할까?
첫째, 필요한 용품을 챙기지.
“침대보가 몇 장이나 필요할까?”
“이 집에 있는 게 몇 장인데?”
아율라가 욕실에서 달려 나가더니 세탁실 벽장에 5장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침대보가 많이 필요했지만, 그가 가진 침대보가 침대에 깔려 있는 한 장뿐이라는 걸 그의 가족이 눈치 챌까 걱정이 되었다. 보통 남자라면 그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꼼꼼한 사람이다. 책을 저자의 이름 순서대로 책장에 꽂는 사람이다. 그의 욕실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청소용품이 구비되어 있다. 심지어 내가 쓰는 것과 똑같은 소독제를 썼다. 그리고 부엌은 광이 났다. 아율라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세 장 가져 와.”
둘째, 피를 말끔히 제거하고.
나는 수건이 흠뻑 젖도록 피를 닦아서 싱크대로 가져가 쥐어짰다. 바닥에 핏기가 없어질 때까지 그 동작을 반복했다. 아율라는 이쪽저쪽 발을 옮겨가며 짝다리를 짚은 채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초조해하는 그녀를 못 본 체했다. 생명을 빼앗을 때보다 시체를 처리할 때 훨씬 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특히 살인의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을 때는 말이다. 그런데 벽에 기대어 앉혀놓은 시체에 계속 눈길이 간다. 그 시체를 어딘가로 옮겨놓기 전에는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다.
셋째, 시체를 미라로 만들지.
둘이서 침대보 여러 장을 뽀송뽀송한 바닥에 깔았다. 그녀가 그를 침대보 위로 굴렸다. 나는 그를 만지고 싶지 않았다. 흰색 티셔츠 아래 감추어져 있는 그의 조각 같은 몸이 눈에 보일 듯 했다. 두어 군데 상처쯤은 능히 견딜 수 있는 몸의 소유자로 보였다. 하긴, 아킬레우스와 카이사르도 그랬지. 죽음이 그의 넓은 어깨와 오목하게 팬 복근을 깎아내고 결국 뼈만 남기리라 생각하니 유감스러웠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세 번에 걸쳐 그의 맥박을 체크했다. 그리고 다시 세 번 더. 자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머리는 아래로 떨구고, 등은 구부정하게 벽에 기대고, 다리는 비스듬하게 틀어져 있었다.
그의 시체를 침대보 위에 올리느라 지친 아율라가 헉헉거렸다. 그녀가 이마의 땀을 닦았다. 땀을 닦은 자리에 핏자국이 남았다. 그녀가 침대보 한 쪽을 들어 그가 보이지 않도록 단단히 여몄다. 그 다음 둘이 힘을 합해 그를 굴려가면서 침대보로 단단히 감았다. 나란히 서서 미라가 된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어쩌지?” 그녀가 물었다.
넷째, 시체를 옮겨.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시체 싸맨 것처럼 보이는 짐을 나르다가, 중간에 누굴 만난다고 상상해본다. 몇 가지 변명거리를 생각해본다…. 안 돼, 계단은 말도 안 돼.
“엘리베이터를 타야겠다.”
아율라가 질문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고개를 저으며 다 시 다물었다. 그녀는 자기 몫을 다 했고, 이제 나머지는 나에게 맡겨졌다. 둘이 힘을 합해 그를 들어올렸다. 무릎이 아니라 허리를 썼어야 했는데. 무언가 빠지직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손을 놓치고 말았다. 내가 잡고 있던 쪽이 털썩 하고 떨어졌다. 동생이 화가 나서 눈을 부라렸다. 내가 그의 발을 다시 잡았고, 우리는 함께 그를 문간으로 옮겼다.
아율라는 엘리베이터로 튀어가서 버튼을 누른 다음 돌아와 페미의 어깨를 들어올렸다. 나는 아파트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계단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도를 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 문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동안 아무도 내다보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만 신은 그런 종류의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신 운과 속도에 의지하는 쪽을 택했다.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석조바닥을 가로질렀다. 엘리베이터가 때맞춰 딩동 소리를 내며 우리를 향해 입을 벌렸다. 우리는 한쪽으로 비켜서서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안으로 던져 넣었다. 눈에 바로 띄지 않도록 구석에다 그를 부려놓았다.
“엘리베이터 좀 잡아주세요!” 복도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율라가 문이 닫히지 않게 열림 버튼을 누르려는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쳐내고 1층과 닫힘 버튼을 여러 번 잽싸게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짧은 순간, 젊은 엄마의 실망한 얼굴을 보았다. 나는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는 한 손에 아기를 안고 다른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감옥에 갈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가책이 크지는 않았다.
“너 도대체 왜 그래?” 내가 낮은 소리로 아율라에게 불만을 토했다. 물론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는 건 안다. 어쩌면, 살 속으로 칼을 찔러 넣게 그녀를 몰아간 충동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잘못이야.” 그 말뿐이었다.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겨우 삼켰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1층에 아율라를 남겨두었다. 시체를 들키지 않게 잘 감시하면서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어야 했다. 나는 잽싸게 달려가 차를 아파트 건물 후문에 댔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시체를 거기로 끌고 갔다. 차 트렁크를 닫자, 가슴 속에서 날뛰던 심장이 겨우 진정되었다.
---「시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