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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망명자

아메리카의 망명자

: 칠레와 미국, 두번의 9·11 사이에서

리뷰 총점9.0 리뷰 3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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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576g | 140*205*30mm
ISBN13 9788936477004
ISBN10 893647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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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1973년 9월 11일,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그날, 난폭하게 또 항구적으로 내 삶으로 틈입했다. 나는 기적적인 우연의 연속으로 때마침 아옌데 대통령 수석참모의 문화언론 보좌관으로 일하던 대통령궁 모네다에 있지 않아 그 대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아옌데의 대통령직과 함께했고 엄청난 압력 아래에서 계속 싸우려 하는 ‘인민연합’ 소속 정당들의 남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칠레 저항세력이 내게 이 나라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고 나는 결국 마지못해 망명길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빌려온 시간을 살고 있다는 느낌, 죽음이 싼띠아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결코 떨칠 수 없었다. --- p.15~16

우리가 항의하자 그는 칠레에선 아이들이 매일 밤 경찰한테 공격을 받는데 이런 걸로 웬 법석이냐는 식의 말을 덧붙였다. 그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마주치게 되는 주장이었고 망명자들에게 어처구니없이 잘 먹혀드는 전형적인 도덕적 공갈이었다. 당신네는 … 같은 (빈칸을 채워보라) 하찮은 걸 걱정하고 있군요. 칠레가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는데 당신들은 이걸로 불평하고 있네요. 당신네는 장난감 살 돈이 있는데 고국의 아이들은 골목의 길고양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거죠! --- p.77

더는 싼띠아고의 거리가 군인들로 채워지진 않았지만 오랜 두려움은 여전히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다. 빠뜨리시아는 자기 가족 중의 우익들, 아들 한명과 딸 한명이 그녀의 은밀한 영웅적 행동에 관해, 그녀가 나 같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쓴 것에 관해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의 정체성이 영화를 통해 표면에 드러난다면 무시무시한 댓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삐노체뜨가 권좌를 떠난 지 십육년이 흐른 2006년의 칠레는 여전히 오염되어 있었고 빠뜨리시아 같은 이들은 여전히 은신하고 있었다. --- p.227

그가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였다. 내가 본 중에 가장 슬픈 사람. 그의 얼굴에 깊이 새겨진 것은 범상한 슬픔이 아니었다. (.…) 그는 삐노체뜨 반대 운동의 한 초석이 된 정권, 내가 불과 몇달 전 귄터 그라스의 집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를 거부한 정권, 바로 그 순간 수많은 형태의 지원과 포럼을 제공하며 우리 투사들을 훈련시켜주고 있던 그 정권을 피해 도망쳐 온 것이다. --- p.350

역사의 모든 망명자들처럼 1973년 칠레를 떠날 때 난 한가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무사히, 변하지 않은 채, 꺾이지 않은 채, 다시 돌아오는 것. 그와 동시에 역시 이 대지를 방랑하는 모든 다른 망명자들처럼, 시간이 채 얼마 흐르기도 전에 난 남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머리를 숙여야 하고 바깥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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