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초판 서문
초기불교에 관한 저서들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필요성은 반박하기 어렵다. 리스 데이비즈(Rhys Davids) 여사는 지극히 중요한 질문을 제기했다. “불교의 본래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침착하게 자리 잡았던 불교 교학은 돌연 혼란스러워졌다. 불교의 가르침 안에 전통적으로 본래 가르침이라고 기록해 온 것과는 다른 부분이 있으며, 전통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인정되자 문헌에 대한 더 비판적이고 더 역사적인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리스 데이비즈 여사가 새로운 접근법을 통한 선구자적인 길을 택함으로써 불교의 기원 문제를 재평가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불교 경전 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최초기에 수집된 자료들조차도 그 시기가 불확실하며 여러 종류의 다른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리스 데이비즈 여사는 니까야(Nik?a)가 한결같이 동일한 교리를 설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였다. 오히려 다양하게 발달하게 될 씨앗을 내포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때로는 한역 아가마(?ama, 阿含)를 통해 비슷하게 알려진 내용에서 일반적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다. 결국 고대 불교에 대해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접근하려면, 니까야와 아가마의 시대층을 구분하지 않을 수 없다. 니까야와 관련해서는 본서의 제1장~제7장까지 이러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본 주제에 대해 새로운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더 찾아볼 수 있다. 인더스 계곡의 고대 문명의 발견은 인도 종교 및 문화의 토대에 대한 기존 관점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이들은 선사시대 인도에 한때 존재했던, 문명화된 비(非)베다 문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은 붓다 이전에 인도에 존재했던 모든 고등사고가 필연적으로 베다에서 기원했을 것이라는 공통된 추정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사실상, 인도의 문명화도 다른 곳에서처럼 합성된 창조물이다. 다양한 갈등을 통합하면서 발달된 오랜 인도 문화사(文化史)에서 많은 민족 공동체와 문화 공동체가 만나서 서로 싸우고 어우러졌다. 이런 관점으로 베다의 종교 및 문화의 발전, 붓다와 마하비라(Mah??a, 자이나교의 시조) 시대의 사회적·지적 경향의 발전을 검토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는 주로 제8장~제9장에서 관련 연구를 시도했다.
또한 붓다의 생애에 대한 저서가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붓다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붓다의 삶과 탐구, 경험 및 전교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이런 작업은 제10장에서 시도했다.
연기(Prat?yasamutp?a, 緣起)와 열반(Nirv??, 涅槃)이라는 불교 교리의 핵심을 ‘올바로’ 해석하는 데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고대 경전과 문헌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데, 논의되고 있는 문헌들이 상당 기간에 걸쳐 퍼져 있기 때문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본래 가르침’은 그 발달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를 취했으며, 이내 모호하다고 할 정도로 뒤섞여 버리기도 했다. 고대 불교의 개념을 역사적 관계 또는 발생적 관계와 관련하여 분명하게 분석하지 않는 한 그 근본 토대를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11장~제13장에서 연구를 시도했다.
마지막 두 장에서는 초기에 불교가 발달하면서 발생한 몇 가지 역사적 문제에 대해 간단히 분석해 보았다. 따라서 본서는 불교의 기원에 관한 역사적 연구와 관련하여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룹을 이루도록 제작했다. 주로 불교의 제도적 측면보다는 교리적 측면에 대해 고찰하였다. 다루는 주제는 상당 부분 문학적이고 종교·철학적 성격이지만, 논의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불교에 관해서는 주로 인도의 자료를 통해 접근하고자 하였다. 비록 원어로는 아니지만, 한역본과 티베트본도 활용하였다. 본서는 1947년에 알라하바드(Allahabad)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은 동명의 논문과 대부분 유사하다. 하지만 내용의 배열을 바꾸었으며, 학위수여 이후의 연구 및 소견을 감안하여 필요한 부분은 수정했다.
본 연구과정에서 알라하바드 대학 산스크리트학 부교수 차토파드야야(K. Chattopadhyaya) 님께 가장 크게 은혜를 입었다. 그는 연구하는 내내 이끌어 주시고 지도해 주셨다. 본서가 출판될 수 있게 해주신 알라하바드 대학의 주책임자 스리 자(Sri B. N. Jha) 부총장님, 삭세나(B. R. Saksena) 문학박사님, 예술부의 스리 고빌(Sri K. L. Govil) 교학처장님, 그리고 역사학 교수이신 삭세나(B. P. Saksena) 박사님, 고대 역사, 문화 및 고고학과의 스리 샤르마(Sri G. R. Sharma) 학과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서두르느라 오타가 몇 군데 생겨서 유감이지만, 의미의 전달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교정하지 않았다. 구별할 수 있는 구두점이 분명하게 누락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끝부분의 정오표(正誤表) 목록에 명시해 두었다.
색인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 스리 싱하 야다브(Sri Brij Nath Singh Yadav) 박사에게 감사드린다. 본서를 인쇄하는 데 도움 주신 인도출판(Indian Press)의 관리자 스리 고쉬(Sri H. P. Ghosh)와 인쇄 관리자 스리 다르(Sri K. P. Dar)에게도 감사드린다.
고빈드 찬드라 판데(G.C. Pande)
역자의 말
이 책의 저자는 종교 전통의 불교가 아닌 고대 인도에서 불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탐색하려 한다. 대승, 상좌부, 금강승이라는 불교 전통에서 벗어나 붓다를 직접 만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붓다의 원음을 찾고자 현재 전승되어 남아 있는 경전 안에서, 그리고 하나의 경전 안에서까지 고층과 신층을 구분하려 노력한다. 그는 니까야 안에서 법수의 형태로 정의되는 교리들에 대해 붓다의 말씀이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12연기라는 초기불교의 대표적 교리들이 해당한다. 또한 경전 안에서 나타나는 형이상학적·신비적·추상적 표현들을 모두 붓다의 원음에서 제외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은 최근에 우리나라에 초기불교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는 상좌부불교 중심의 불교 이해에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본서의 2장에서 7장까지는 니까야와 관련된 내용이다. 빠알리 원전이나 우리말 경전 번역을 함께 살핀다면 저자의 흥미로운 연구를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불교 지식과 연구 역량은 매우 뛰어나다. 그의 다양한 지식과 표현능력을 따라가기에 역자의 능력은 부족했다. 가능한 한 직역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의미 전달이 어려운 부분이 나타났고, 민족사는 과감한 의역제안으로 역자의 부담을 줄여 주었다. 또한 현대적 방식의 문헌 접근에 익숙한 역자가 저자의 오래된 참고자료들을 살피는 것 역시 녹록치 않았다. 아마도 컴퓨터의 사용이 제한된 시대의 연구이기에 따르는 문제점으로 보인다. 검색이 어려운 자료들의 등장에 당혹스러워할 독자들의 표정이 그려진다. 원서의 탓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역자의 게으름이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역자의 한계를 많은 분들께서 보완해 주셨다. 김현덕(산스크리트어), 데이브(Dave McPhee; 영어), 진우기(영어), 양영순(아르다마가디어), 이수련(불어, 영어), 한상희(빠알리어), 한자경(독어), 후지나가신(藤永 伸; 아르다마가디어). 이렇게 많은 분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번역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무엇보다도 부족한 역자를 믿고 오랜 시간 기다려 주신 세존학술연구원 성법 스님, 그리고 민족사 윤창화 사장님의 원력으로 가능한 작업이었다. 깊은 인연에 감사드린다. 끝으로 교정을 살펴주신 오세연 님과 민족사 편집부의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2018년 12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연구실에서
정준영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