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악기를 연주하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불이 꺼진 뒤 나는 물었다.
“명린금이에요.”
꼬마 동생은 대답했다.
“명, 린, 금?”
“네, 이렇게 써요.”
그는 허공에 손을 뻗어 검지로 뭐라 글자를 썼으나, 어두워서 읽을 수 없었다.
“흔한 악기가 아닌가봐.”
“네, 아마도.”
“어느 나라 악기인데?”
“음, 일본이에요. 여기요.”
“옛날부터 있던 거야?”
“아뇨,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고요.”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한층 더 가늘게 들렸다.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얼굴만 이으로 돌린 게 어슴푸레 보였다.
“어떻게 생겼지?”
“럭비공보다 좀 더 큰 게 두 팔로 안기에 딱 좋은 크기죠. 혹등고래의 부레로 만들어요.”
“저런.”
“부레 표면에 물고기 비늘을 빽빽하게 붙이고, 속엔 날치 가슴지느러미로 만든 현을 넣었거든요. 그게 진동원이 돼서 공기의 떨림을 비늘에 전달하는 거예요.”
“비늘 종류는 정해져 있고?”
“가급적 물고기 종류를 다양하게 쓰는 편이 깊이 있는 소리가 나오겠죠.”
명린금은이라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진기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인데.”
“아마 그럴 거예요. 명린금을 연주하는 사람은 세상에 저밖에 없으니까요.”
꼬마 동생은 말했다.
“제가 발명한 악기거든요. 제가 발명자고, 유일한 연주자예요.”
어둠에 눈이 익은 탓에 그의 얼굴이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커튼 틈새로 흘러든 달빛이 가느다란 띠가 되어 우리 둘 사이에 드리웠다. 옆방의 이즈미 씨 기척은 이미 완전히 조용해진 뒤였다.
“언제, 어떤 때 연주하지?”
“정해져 있진 않아요. 하지만 연주하는 장소는 꼭 해변이죠. 바다에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소리가 안 나거든요. 그게 그렇잖아요? 바다 생물로만 만든 악기니까요.”---「바다」 pp.24~27
“아무튼 먼 곳에 비록 한순간이라도 날 기억해준 사람이 있다니 기쁜 일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 못 이루는 밤도 안심이에요. 그 먼 곳을 떠올리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어요.”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 6일」 p.46
그들이 노쇠한 팔로 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는데, 내 마음에도 조금씩 슬픔이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말 한 마디 주고받아본 적 없고 나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의 죽음일지라도, 그 죽음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떠맡아야 하는 종류의 아픔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차가운 샘물처럼 내 몸을 적셨다.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 6일」 pp.49~50
“아주 조용한 활자랍니다.”
그의 목소리에 젖빛 유리가 조그맣게 흐려지는데, 눈으로 그 모양을 좇을 겨를도 없이 사라집니다. “조용한가요?”
저는 물었습니다.
“그래요. 말없이, 조용하게, 자기한테 주어진 장소를 지키면서 결코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흡사 고둥 속에 숨은 심해 생물 같습니다.”
저는 심해를 생각했습니다. 가본 적도 없건만, 모래의 까끌까끌한 감촉과 흔들거리는 물결,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어둠의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고막에 들러붙는 것 같습니다.
은 바다 밑에 묻혀 있습니다. 입구는 겹겹이 진 주름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곳에 그런 관이 묻혀 있다는 기미조차 없는데, 그는 어떻게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언제나 창고에 혼자 계시나요?”
저는 여기에 그 말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었습니다. 되도록 오래 그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활자를 다루시는데요?”
“저만의 방법으로 찬찬히 활자를 만지는 게 제 일입니다.”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pp.76~77
그 풍경 가운데 소녀가 있었다.
“그리 가면 안 돼. 그러다 차가 오면 치일 거야. 그래, 다들 이 나무 그늘로 모이렴. 겁내지 않아도 돼. 괜찮아, 금방 누가 구해주러 올거야. 걱정할 거 없어.”
소녀는 그들을 인도하고, 기운을 북돋워주고, 공포에 질려 꼼짝 못 하는 병아리를 품에 안아주었다. 색색의 깃털이 날아올라 소녀를 감쌌다.
남자는 이것이 그녀가 주는 진짜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녀가 들려준 목소리. 그것이 바로 자기에게만 주어진,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병아리 트럭」pp.115~116
“먼 옛날 있었던 잊지 못할 일, 애달픈 추억, 아무도 모르는 중대한 비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체험 등등 뭐든 다 된다만, 손님들이 가져오는 기억에 제목을 붙이는 것, 그게 내 일이란다.”
“제목을 붙이는 것뿐이에요? 그냥 그것뿐이라고요?”
“그것만으로는 미흡하냐? 하지만 내 감히 말하건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우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게 나한테 얼마나 시시한 이야기건 간에 전부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끈기와 넓은 마음이 필요하단 말이지. 나아가 그걸 상세하게 분석하고 의뢰자와 기억을 가장 친밀하게 엮어줄 제목을 이끌어 내는 거야.”
“왜 제목이 필요한데요?”
“아주 적절한 의문이구나.”
남자는 자못 감탄했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란히 아카시아 줄기에 기대섰다.
“제목이 안 붙은 기억은 잊어버리기 쉽거든. 반대로, 적절한 제목이 붙어 있으면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그걸 남겨놓을 수 있어. 보관해놓을 장소를 마음속에 확보할 수 있는 거란다. 평생 두 번 다시 떠올릴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기억일망정, 거기 서랍이 있고 라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다들 안심하는 거야.” ---「가이드」pp.143~144
나는 찬찬히 생각한 다음 말을 이었다.
“오늘 제 하루에 제목을 붙여주세요.”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밤의 어둠이 바로 저기까지 다가와 있는 하늘의 한 점을 응시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게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남자는 지팡이로 땅바닥을 한 번 내리쳤다. 그게 신호였다. 키 큰 몸을 굽혀 내 귓가에 얼굴을 가져와서는 고막으로 직접 전달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제목임을 바로 알았다. 오늘 하루를 기억에 아로새기기 위한 내 제목임을.
---「가이드」pp.157~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