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 이 백 번 죽어두 쌀 년! 앓는 남편두 남편이디만, 어린 자식을 놔두구 그래 도망을 가? 것두 아들놈 같은 조수놈하구서…… 그래 지금 한창 나이란 말이디? 그렇다구 이년, 내가 아무리 늙구 병들었기루서니 거랑질이야 할 줄 아니? 이녀언! 하는데, 옆에 누웠던 어린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이! 하였으나 꿈 속에서 송영감은 자기 품에 남은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 아바지이! 하고 부르는 것으로 보며, 오냐, 데건 네 어미가 아니다! 하고 꼭 품에 껴안는 것을, 옆에 누운 어린 아들이 그냥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러, 잠꼬대에서 송영감을 깨워 놓았다.
아까 잠들 때보다 더 머리가 무겁고 언짢다. 애가 종내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오, 오, 하며 송영감은 잠꼬대 속에서처럼 애를 끌어안았다. 자기의 더운 몸에 별로 애의 몸이 찼다. 벌써부터 이렇게 얼려서 될 말이냐고, 송영감은 더 바싹 애를 껴안았다. 그리고 훌쩍이는 이제 일곱 살 난 애를 그렇게 안고 있는 송영감은 다시 자기보다도 이 어린것을 두고 도망간 아내가 새롭게 괘씸했다. 아내와 함께 여드름 많던 조수가 떠올랐다. 그러자 그 아들같은 조수에게 동년배의 사내와 사내가 느끼는 어떤 적수감이 불길처럼 송영감의 괴로운 몸을 휩쌌다.
그리고 자기가 집증 잡히지 않는 병으로 앓아눕기 때문에 조수가 이 가을로 마지막 가마에 넣으려고 거의 혼자서 지어 놓다시피 한 중옹 통옹 반옹 머쎄기 같은 크고 작은 독들이 구월 보름 가까운 달빛에, 마치 하나하나 도망간 조수의 그림자같이나 느껴졌을 때, 송영감은 벌떡 일어나 부채방망이를 들어 모조리 깨부수고 싶은 충동을 받았으나, 다음 순간 송영감은 내일부터라도 자기도 독을 지어 한 가마 독을 채워 구워내야 당장 자기네 부자가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면서는, 정말 그러는 수밖에 없다고, 지그시 무거운 눈을 감아 버렸다.
--- p.367~368
『독 짓는 늙은이』는 1950년 4월「문예」9호에 발표되었으나 1944년에 씌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독 짓는 늙은이'의 장인다운 고고한 정신과 의지, 그리고 예술혼 들이 때로는 가마 속의 열광처럼 때로는 눈물 겹도록 펼쳐지는데, 그것은 곧 퇴화하고 죽어가는 것의 아르다움을 서정시처럼 형상화하는 것이다.
황순원은 인물을 묘사하는 데 있어 이목구비며 옷매무새며 몸짓이며 하는 것에 낱낱이 시선을 분배하는 사실주의 기법을외면하고, 가장 핵심적인 면 즉, 인물의 개성을 함축적으로 뚜렷이 보여 줄 수 있는 점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 황순원은 인물을 에워싼 세세한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 핵심적 이미지에 직접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단편 소설들은 인간에 대한 궁극적 흥미란 시간과 공간의 조건들이 미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속성에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도 시대적 역사적 조건 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그러한 외적 조건들이 생략된 채 완전히 추상화된 인간의 숙명 자체에 보다 깊은 흥미를 나타내고 있다.
(중략)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젊음을 상실한, 모든 것을 배앗긴 송 영감의 비탄과 분노를 민족 항일기 말기의 암담한 현실을 연상시켜 주고, 그러한 암담한 현실에서도 마지막 생명의 불꽃까지 태우려는 고집스런 장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것은 예술가의 정열이며 삶의 의지요, 암울한 시기를 살아온 작가 자신의 작가적 자세의 반영이며, 또한 이 작품의 가치이기도 하다. 송 영감이 어린 자식과 독에 대하여 가지는 애착, 고통을 이겨나가는 생명력, 외로움 들은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지각으로서 황순원의 초기 단편들의 미학과 결부된다.
--- p.397
『독 짓는 늙은이』는 1950년 4월「문예」9호에 발표되었으나 1944년에 씌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독 짓는 늙은이'의 장인다운 고고한 정신과 의지, 그리고 예술혼 들이 때로는 가마 속의 열광처럼 때로는 눈물 겹도록 펼쳐지는데, 그것은 곧 퇴화하고 죽어가는 것의 아르다움을 서정시처럼 형상화하는 것이다.
황순원은 인물을 묘사하는 데 있어 이목구비며 옷매무새며 몸짓이며 하는 것에 낱낱이 시선을 분배하는 사실주의 기법을외면하고, 가장 핵심적인 면 즉, 인물의 개성을 함축적으로 뚜렷이 보여 줄 수 있는 점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 황순원은 인물을 에워싼 세세한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 핵심적 이미지에 직접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단편 소설들은 인간에 대한 궁극적 흥미란 시간과 공간의 조건들이 미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속성에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도 시대적 역사적 조건 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그러한 외적 조건들이 생략된 채 완전히 추상화된 인간의 숙명 자체에 보다 깊은 흥미를 나타내고 있다.
(중략)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젊음을 상실한, 모든 것을 배앗긴 송 영감의 비탄과 분노를 민족 항일기 말기의 암담한 현실을 연상시켜 주고, 그러한 암담한 현실에서도 마지막 생명의 불꽃까지 태우려는 고집스런 장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것은 예술가의 정열이며 삶의 의지요, 암울한 시기를 살아온 작가 자신의 작가적 자세의 반영이며, 또한 이 작품의 가치이기도 하다. 송 영감이 어린 자식과 독에 대하여 가지는 애착, 고통을 이겨나가는 생명력, 외로움 들은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지각으로서 황순원의 초기 단편들의 미학과 결부된다.
--- p.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