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꾸는 일은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함이 아니다. 크게 보면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새롭고 아름다운 삶의 실천 마당이면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실천이다. 작게 보면 건강한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고, 농사체험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며, 푸드마일(식량의 수송거리)을 줄여 소비를 건전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주변 모두가 함께 이루어가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도시의 커뮤니티를 복원하고 삶의 가치를 배양하는 공공의 정원 역할을 부가시켜준다. 우리 도시의 정원문화가 되는 것이다. - p.9
정원문화란 느림의 문화이고, 충분히-천천히의 문화이자, 생각과 고민의 문화다. 지금 정원문화를 공간과 장소에 펼쳐놓으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자 할 때 우리는 그러므로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아야 한다. 당장의 결과물에 조급해 하지 말고 다각도로 살피고 그 안에 나와 우리가 어떻게 자리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 p.14
아도르노는 자연사가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와 나눌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봄으로써 예술과 기술의 재통합을 통한 구원 가능성보다 더 비판적 또는 비관적 전망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조경과 도시농사의 재통합이 여전히 이와 같은 자연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면, 쉽게 말해, 또 다른 유형의 자연지배를 암시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함의하고 있다면, 양자의 재통합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암시를 그로부터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경과 도시농사의 재통합을 논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적 검토가 있음 직하다. 다시 말해, 설혹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가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과연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대로 인간의 이익만을 위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지를 솔직하게 물어보자는 것이다. 인간은 분명히 이성적 존재이다. 오늘의 난제 역시 이성으로 밖에는 풀어낼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도르노를 비롯하여 비판이론은 이성을 단순히 도구적 이성으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것은 마땅히 자신을 포함한 일체에 대한 반성능력을 포함해야 하며, 그때서야 비로소 인간세계는 다시금 야만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게 될 것이다. - p.81
생산과 경관이 결부되는 현상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개별 주거지에서 텃밭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서 각 가구별로, 텃밭이 배분되거나 청계산 자락을 필두로 한 몇몇 근린공원에는 체험 농장이 도입되고 있으며, 소규모 농업과 공공정원(public garden)이 결합되는 다양한 시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시민과 소비자 차원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정책적?제도적 차원의 노력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12년 5월 23일에 시행된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은 ‘도시농업을 농업의 개념이 아닌 도시민의 여가 활동 중심의 시민운동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전문적인 조경 설계를 통해서도 농업적 생산과 경관 사이에 긴밀한 함수 관계가 구축되고 있다. 이미 30년 전에 대지미술가 아그네스 데니스(Agnes Denes)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인근에 2에이커의 밀밭을 조성하는 실험을 전개한 바 있지만, 최근에는 농업 경관의 도시 내 도입이 실험적 작품의 경우로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 환경을 구성하는 공식적인 시설에 농업 생산지가 투입되는 예가 이제 낯설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조경가 콩지안 유(Kongjian Yu)가 설계한 선양건축대학교(Shenyang Architectural University) 캠퍼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 p.85
조선의 원림은 중국정원처럼 인위적 경계가 없고, 일본정원처럼 대상의 조형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정원은 정원이라는 인공적 개념과 산수라는 자연적 개념이 뒤섞여 있어 잘 구분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정원을 꾸밀 때는 주변의 식생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무의 자리를 잡고 연못을 팠다. 조선의 정원을 따로 원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전통조경의 원리는 마을 뒷산의 식생과 집의 정원, 그리고 마을의 생태계가 하나로 묶이는 효과를 낳는다. 우리가 도시농업을 생각할 때 조선의 원림조성의 원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채마밭이든, 원포든, 도시농업을 좀 더 커다란 생태계 안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집집마다의 작은 채마밭들이 이어져 그것이 뒷산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태적 그물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생태라는 것은 그 자체로 한 개인에게 기쁨이 되어야 한다. 사명감만으로 생태를 이룰 수 없다. 한 송이 꽃과 채소가 한 인간에게 기쁨이 될 때 생태든, 도시농업이든 의미가 될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이 기쁨을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 지복이라고 표현했다. - p.106
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해보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양적 발전 위주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한계에 부딪힌 오늘날, 도시에서의 삶의 질과 관련된 새로운 이슈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는 오래전부터 조경사를 관통해온 ‘생산의 장으로서의 정원’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것이다. 가장 보편화된 도시농업의 형태인 텃밭의원형을 추적해보더라도 인간이 정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든 울타리 안에 키운 작은 생산정원에서 비롯됨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정원은 시작부터 생산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원의 원형을 추적해보면 크게 위요 공간(정원을 의미하는 서양어의 공통된 어원인 gher)과 생산 환경(hortus: 채원, 과수원, 약초원 등), 즐거움의 장소[gan-(gher)+oden(-eden)=garden: 화원, 풍경식 정원]로 정리된다. 보통 정원이라고 하면 주로 아름답고 보기 좋은 즐거움의 장소로서의 정원을 먼저 떠올리지만 조경의 원류인 정원은 그 시작부터 ‘생산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 p.114
영국의 도시농업은 정원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얼로트먼트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적 기반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정원 소유의 유무를 떠나 웰빙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정원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기존 정원문화의 탄탄한 기반 위에 그 필요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과 관의 노력으로 얼로트먼트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실용적으로도 유기농 생산물을 증대시킴과 동시에 푸드마일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실시된 얼로트먼트-유케이닷컴(Allotments-UK.com)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얼로트먼트 이용자의 92퍼센트는 얼로트먼트를 통하여 새로운 사람과 교류를 하였고, 81퍼센트는 자신의 얼로트먼트에 친척이 방문하였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얼로트먼트가 사회에서 인간 간의 유대감 증진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얼로트먼트는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얼로트먼트 이용자의 62퍼센트는 가족 구성원과 같이 얼로트먼트를 가꾸며 여가의 한 형태로 이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7퍼센트는 상호 간에 정보를 공유하며 90퍼센트는 이웃한 이용자들과 그들의 재배 작물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다. - p.158~9
도시농업은 안전한 먹을거리의 확보나 건강증진 효과 외에도 지속가능한 생태계 유지, 삭막한 도시 환경 개선, 이웃과의 나눔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조명되면서 21세기 도시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미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시티팜(City Farm)을 발견할 수 있으며 텃밭, 옥상농원, 상자텃밭, 베란다농원 등 다양한 형태로 도시농업이 등장하여 확산되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도시농부는 8억 명 이상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에 8,000개 이상의 텃밭이 있고 뉴욕엔 600개 이상의 빌딩에 옥상텃밭이 있으며, 도시농부들이 이용할 수 있는 농사매뉴얼, 다양한 소포장, 디자인이 가미된 패션 농기구 등 새로운 시장도 자연스레 생겨나고 있다.
경제성장과 함께 진행된 급격한 산업화 및 도시화는 다양한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수반하였다. 즉 도시집중화로 야기된 생활환경의 악화는 물론 지역공동체의 파괴, 절대녹지의 감소 등 다양한 문제를 유발해왔다.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1960년 39.1퍼센트였으나 1990년에는 81.9퍼센트, 2005년에는 90.2퍼센트, 2009년에는 90.8퍼센트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으며, 이는 선진국 도시화율 ― 2005년 미국 80.8퍼센트, 영국 89.2퍼센트, 독일 88.5퍼센트 ― 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특히 미래학자들은 2050년경 세계인구의 80퍼센트가 도시지역에 거주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으므로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진입과 함께 도시농업이 피할 수 없는 국가적, 사회적 이슈로 맞이하게 되었다. - p.162~163
텃밭의 규모는 토지의 여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성인이 관리할 수 있는 규모로 16.5제곱미터(5평)를 많이 추천한다. 몸에 익지 않은 농사일은 자칫 도시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초기에는 욕심내지 말고 소규모로 꾸미는 것이 좋다. 밭 모양은 일반 논밭과 같이 직사각형 이랑을 만들면 재배하기에 편리하다. 그러나 토지모양에 따라 작업의 편리성을 고려하면서도 창의적이고 다양한 모양으로 구상한다면 ‘텃밭의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집단화되어 있는 공공텃밭은 진입로, 주차장, 화장실, 휴게실, 보관창고 등과 같은 편의시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근 도심에는 많은 옥상텃밭이 들어서고 있다. 옥상과 같은 인공지반도 약간의 노력으로 텃밭을 조성할 수 있다. 옥상텃밭은 설치하기 전에 건축물에 대한 허용하중과 방수상태를 조사하고, 필요하다면 보강공사를 실시한 후 설치한다. 일반 가정의 단독주택은 하중에 비교적 취약하므로 중량이 가벼운 인공용토를 활용한 텃밭을 조성하며, 중량이 무거운 토양을 활용할 때는 하중을 고려하여 옥상면적의 일부분에만 설치하거나 토양의 높이를 최대한 낮게 조성하도록 한다. - p. 182~3
스쿨가드닝은 다양한 방면에서 효과가 있다. 루브(Louv, 2005)는 “아이들과 자연의 교감은 신체적?정신적인 건가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한다. 미키와 뱅갈로(Michie and Bangalo, 2010)는 집안에서 제한적인 활동만 하는 몇몇 아이들은 햇볕을 쬐는 시간이 부족하여 비타민 D 결핍에 시달린다고 보고한 바 있다. 옥외 활동을 증진시키는 스쿨가드닝은 실제적인 건강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마저리 우브리(Marjorie Ouvry, 2005)는 어린이들은 야외 활동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2009년 발표한 저서 『아웃도어 포 에브리원』(Outdoors for Everyone)에서 야외공간에는 특별한 자연이 있다며 야외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쿨가드닝은 자연과의 친밀감을 촉진시키고,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장소이자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 라버스 등(F. Laevers et al., 2005)은 열린공간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더 강해질 수 있으며, 더불어 상상력이 풍부해진다고도 강조한다. 그 밖에 스쿨가드닝은 학업성취도를 높이기도 하며 건전한 생활방식도 촉진시킨다. 또한 환경보전 윤리를 실천하게끔 도와주며 지역과 사회발전에 기여하게끔 용기를 준다. 더불어 공간적 감각을 길러주고 자연과의 놀이를 통해 상상력과 이해력도 증진시킨다. - p. 203~4
‘농사’는 본래적으로 지역의 생태적 순환성이 사회적 순환성, 문화적 순환성 즉 인간의 순환성을 불러일으켜 큰 순환구조를 만들고 공진화(coevolution)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는 계절의 지표인 24절기라는 리듬 속에서 진행되었고, 여타 인문환경과 어우러져 다시 세시풍속이라는 리듬을 낳았다. 즉 농사를 매개로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조화롭게 뒤섞일 수 있었고 커뮤니티의 집합성과 공통의 리듬이 형성되었다. 그렇기에 도시농사는 사람과 사람, 장소와 사람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즉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생산적으로 진화할 수 있고, 농사가 갖는 본래적 가치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p.237~8
도시에 되살아나는 텃밭들은 새로운 자연 활용법을 보여준다. 정원이란 자연을 만나고 이용하던 곳이었는데 현대의 그것은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식으로 말하면 ‘세컨드 네이처’(second nature)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곳이 되었다. 이것은 감상만을 위한 정원 소유가 바뀌는 계기이며, 도시 커뮤니티 형성의 매개체 기능까지 포함한다.
도시농사는 랜드스케이프의 감상적 측면에 대하여 생산성이라는 새로운 측면을 지적해준다. 이것은 조경의 대상물인 경관이 측정할 수 없는 감상적 가치가 아니라 직접적인 산물과 행동으로 재접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관의 역동성이 되살아나는 것으로,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의 경관에서 더 나아가 형용사(감탄사)로서의 경관이 되어감을 의미한다. -p.266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