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병폐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대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거나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쟁점을 너무도 부각시켜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이런 전략은 틀림없이 실패하게 마련이다. 영향력이 크고 깊게 뿌리 박혀 있는 습성에 관한 것일수록 정보 제공의 효과는 줄어든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공포스럽게 하는 메시지에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색다른 방법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색다른 방법은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 즉 또래 집단의 존중을 얻도록 도와주어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는 데 기초한다. --- pp.16-17
어떤 사람도 또래압력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유전적 특징과 함께 또래압력은 우리의 정체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또래 집단이 우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또래 친구가 중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이토록 중대한 사실을 우리들 대부분이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또래압력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고 말하면, 누구도 예외 없이 내가 부정적인 행동에 대해 쓰고 있다고 추정할 것이다. 또래압력이라는 용어는 통상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이 책의 목적은 또래압력이 좋은 목적으로 활용되어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 pp.18-19
이런 공동체들이 우리를 우리이게 한다. 인간의 개인적인 정체성은 부분적으로 한 집단에 대한 동질감과 다른 집단들과의 괴리감에 의해 규정된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프레더릭 브루넬은 주장했다. “공동체는 구성원 상호 간의 고유한 유대 관계를 의식합니다. 같은 가치와 원칙을 공유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독립체라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는 우리 아닌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우리vs 그들’이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한데 엮여 있다는 인식을 공유합니다.” --- pp.74-75
사람들은, 특히 그들이 속한 문화가 그렇게 하라고 하면, 생명줄을 놓아 버린다. ‘접근하는’ 것과 ‘접근되는’ 것은 매우 다른 것이다. 남아공이 보여 주듯 사람들에겐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복용을 두려워할 많은 이유가 있다. 대대손손 민간요법을 선호해 왔고,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약을 복용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정부조차 그 약이 쓸모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새로운 생명줄을 잡을 확신이 필요했다. 남아공이 네비라핀을 일하는 여성들에게 나눠 주겠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폴린 몰로시는 그 약의 효과는 여성들의 입에 들어가 봐야 알게 된다고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 준다. --- p.92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와의 관계이며 그것은 변화를 지휘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관계의 힘은 강력할 뿐 아니라 재주도 많다. 우리를 고독한 삶이나 건강한 삶으로 이끌 수 있고, 우리를 범죄자로 만들거나 건전한 시민이 되게 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 파묻혀 살게 할 수 있고, 깨어 있는 사고를 갖게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치유책은 제대로 작동하면, 행동의 문제와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문제까지 해결한다. --- p.161
사회적 자본이 존재하는 이유는, 혼자보다 함께 일할 때 부유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든 예에 따르면, 각각 따로 경작한 옥수수를 두 농부가 함께 추수할 때 축적되는 가치가 바로 사회적 자본이다. 도시의 가정들이 제설기를 공유함으로써 절약되는 돈은 사회적 자본이다. 도심 지역이 동네 감시 위원회를 조직하여 함께 절도를 막음으로써 얻게 되는 자원 절약, 부모들이 함께 초등학교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 얻게 되는 자녀들의 학업 개선, 노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 맥도날드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얻게 되는 건강 개선, 이 모두가 사회적 자본의 전형이다. --- p.229
적용하기 어렵게 보여도, 사회적 치유책은 판에 박힌 듯 변화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색다른 방법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현대적 삶에 대한 불만이 고립감에 기인한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공동체의 기원으로부터 멀어진 국가에서, 특히 젊은 미국인들이 공동체, 연대감, 진실성을 다시 한 번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어쩌면 고립된 삶을 사는 미국 중산층이, 부담스러운 모임과 줄어드는 사적 시간을 감수하면서도 개인적인 문제 해결의 방편으로 사회적 치유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은, 바로 지금인지 모른다. 이런 움직임은 벌써 시작되고 있다.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말이다. --- p.242
프레이지에게 소모임이 효과를 보는 방법 ? 정확히 말해 공동체가 개인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방법 ? 을 알려 달라고 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발전적이지 못한 질문이네요.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예요. 개인적 변화는 수단입니다. 소모임의 최종 목표는 관계, 공동체 자체예요.” 프레이지에게 공동체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장 높은 가치이다. --- pp.308-309
오트포르는 사회적 치유책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언뜻 보기에 또래압력을 통한 행동 변화는 개인적인 문제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경험은 그와 정반대되는 극적인 결과를 창출했다. 세르비아는 사회적 치유책이 개인적 악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이 시대의 가장 웅장한 드라마에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사회적 치유책은 지역주의, 무관심, 체념, 두려움만 존재하던 세르비아에서 시민운동을 이끌었다. 이 운동은 정부에 대한 시각은 물론 개인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시각을 뒤바꿔 놓았다. 독재 정권을 끌어내리고, 민주주의를 전혀 몰랐던 나라에서 불완전하지만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사회적 치유책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훌륭한 도구이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몰락은, 사회적 치유책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에 대한 작은 암시일 뿐이다. --- p.405
우리 모두는 나쁜 친구들의 꾐에 빠진 착한 어린아이다. 너무나 강력하고 나쁜 힘을 발휘하는 또래압력은, 더 강력한 또래압력만이 제압할 수 있다. 함께 몸무게를 재고, 함께 수학 문제를 풀고, 함께 축구를 하고, 함께 장난 전화를 하고, 함께 체포를 당하고, 각자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게 하는 또래압력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명줄의 형태는 너무도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구명줄의 반대편에 누가 서 있느냐이다.
--- p.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