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있지, 난 ‘스트로베리 로봇’이 좋다고 그랬거든. 그랬더니 가쓰오가 ‘러시아워’가 좋다는 거야. 그래서 합쳐버리자, 이렇게 된 거지. 왜 밴드 이름 같은 것도 그런 것 있잖아?”
쓰바키 메구미가 쿠앵트로를 핥듯이 마시면서 말했다. 처음 접하는 타입의 여자였다. 겐지는 혀 짧은 말투와 화려한 화장만 빼면 제법 자기 취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트로베리 로봇 러시아워’라는 이름이 됐거든. 그랬더니 요이치가 ‘그럼 스트로보 러시다!’라고…… 사실 뭐든 줄인다고 좋은 게 아니잖아, 그치. 이름이란 거 중요하지 않아?”
“맞아요. 내가 말한 러시아워의 아워는 어디로 갔냐고요.”
니트 모자를 쓴 가쓰오라는 사내는 네모나고 길쭉한 갈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요이치와 쓰바키에게 존댓말을 썼다. 빈 잔을 보고는 추가 주문을 했다.
“됐어, 그런 거. 정식 명칭 따위 상관없잖아. 스트로보의 빛이 러시하는 거라는 의미로 됐어. 번쩍번쩍하고 빛의 홍수에 싸여 있는 느낌도 들고. 나도 그런 체험 해보고 싶기도 하고.”
요이치는 양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펼치며 스트로보의 빛을 표현했다. --- pp.22-23
“이건 로큰롤 미싱이라고 하는 거야. 바지 옆 재봉선 같은 것 뒤집어보면 이거하고 비슷하지?”
요이치는 옆에서 일하는 걸 보고 있는 겐지에게 재봉틀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그 재봉틀로 처리된 천의 테두리를 보니, 트레이너나 티셔츠를 뒤집어보면 시접이 똑같이 되어 있던 게 생각났다. 이 재봉틀을 돌리면 천이 풀어지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왜 로큰롤이야?”
“잘 들어봐. 재봉틀 소리의 리듬이 8비트잖아. 페달을 세게 밟으면 16비트도 돼.”
그 말을 듣고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리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 pp.62-63
“있잖아, 너희들은 왜 옷을 만들기로 한 거야?”
“엉?”
“아니, 저기, 뭐랄까,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겠지만, 그 이유랄까 계기랄까…….”
세 사람은 멈춰 서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는 느낌이었다. 요이치가 말했다.
“뻔하잖아, 패션으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지.”
“……응?”
“세계 정복!”
쓰바키와 가쓰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물었더니, 두 사람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했다. --- pp.71-72
“먼저 내 속에 어떤 정보가 들어가서 그것이 무의식중에 나오는 거라고. 정보가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정말로 독창적인 것이란 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난 평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 나는 내 속에 고여 있는 뭔가부터 꺼내고 싶어. 처음부터 베끼는 건 싫어. 나로서는 기존에 있는 것들을 일단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어.”
“아냐, 너는 긍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봐.”
“전부가 아니라 참고하는 정도로 아이디어를 얻으면 되잖아. 내일부터라도 자료를 모으는 게 어때? 나도 학교에서 학생 작품 중 괜찮은 것 있으면 사진을 찍어 올 테니까.”
“학생 작품?”
“그런 건 됐어. 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으니까.”
“그렇지만 말이야, 만들려면 새로운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새로운 게 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무언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너무 과하면 안 돼요.”
“난 유행에는 관심 없어.”
“뭐 어쨌든 강렬함이라든가 임팩트가 없으면 안 돼. 오직 우리밖에 만들 수 없는 걸 생각하자.”
“우리밖에 만들 수 없는 거라…… 뭘까? 가쓰오도 생각해봐.”
“예에…….”
“내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만든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거나 멋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아?”
“응. 난 그렇게 생각해. 작위적인 것은 싫어. 애초에 우리의 방향성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판다, 그것뿐이었는걸.” --- pp.81-82
“난 앞으로도 줄곧 패션을 하고 있을 거란 예감만은 있어.”
“결심이 아니라?”
“응, 예감이야.”
“그러니까 너는 죽을 때까지 ‘스트로보 러시’를 계속할 거라는 거야?”
요이치는 아무 대답도 없이 빙그레 웃었다. 축구공이 발밑으로 굴러왔다. 겐지는 멀리서 달려온 소년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단 한 순간이어도 좋으니까 빛이 나는 듯한 옷을 만들어보고 싶어. 그야말로 스트로보의 빛처럼 사람들이 눈부셔 하는 옷.”
요이치는 전에 몽키 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양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 p.91
겐지는 옷 만들기가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한다. 또 의외로 많은 재료가 사용되고, 각각의 부분이 잘 결합해서 하나의 형태가 된다. 기술과 상상력과 솜씨가 필요하다. --- pp.99-100
네 명 다 말이 없는 가운데 방에는 재봉틀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그 공간에는 패션 특유의 화려함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가쓰오는 아무리 바쁠 때여도 옷은 챙겨 입고 있지만, 요이치는 같은 옷으로 이삼 일 지낼 때도 있고, 쓰바키는 수업이 없는 날은 화장도 하지 않고 왔다. 바닥에는 바늘과 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고 테이블 위에는 빈 깡통과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그리고 그들은 묵묵히 일을 해나갔다. --- pp.103-104
“글쎄, 그런가? 그보다 지카다 씨는 왜 전시회를 기대하게 된 거야?”
“뭐랄까, 분출하는 모두의 땀에 감동받은 것 같아요.”
“오호, 그랬어.”
“쓰바키 씨는 ‘스트로보 러시’의 어떤 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진실 따위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
“무슨 뜻?”
“난 패션학교에 있지만, 양재밖에 못하는 여자야. 디자인이나 창작은 젬병이지. 요이치는 그 반대지만.”
“오, 그래요?”
“학교는 기초를 가르치는 곳에 지나지 않으니까, 항상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주입하게 돼. 그렇지만 옷본이 이상해도 소재가 나빠도 재봉질을 못해도 멋있는 옷은 멋있어. 그런 정신이 어딘가에 있어서, 음, 뭐랄까, 틀에서 삐져나오는 것 같다고 할까. 나 자신이 말이야. 무턱대고 한다고 해도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지만, 형태가 되면 그것이 이미 진실이야. 그러니 진실 따위 없지? 알겠어?”
“어렴풋이…….”
“그런 점이 재미있고 즐거워.”
--- pp.105-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