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다,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읽으며
이 책에서 유장하게 그려내는 깨달음의 이미지들은 나를 설레게도 했고 두렵게도 했다. ‘나’라는 울타리가 다 무너져 커다란 지혜나 자비와 합일됨으로써 세상 모든 것에나 자신을 내어줄 수 있으리라는 비전은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 몸이 움직이는 삶의 습관에 길들여진 초심자로서, 가슴이 열려 저절로 움직이는 방식을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것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상황으로 나를 이끌지는 않을지, 그러다 반쯤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변하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그 불안이 우습게 여겨지지만 말이다. ---p.85
류시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읽으며
우리의 삶이 강이라면 더는 그대로 살 수 없게 된 막다른 지점이 사막이다. 거기에서 멈추든지 아니면 새로운 지점으로 흘러가기 위해 다른 존재로 전환해야 한다. 소리 지르던 습관을 버려야 하고, 마음속에 일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의 분별을 멈춰야 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먹고 놀던 습관도 바꿔야 하고 남들을 먼저 섬기는 행동을 익혀야 한다. …… 성장해야 함을 알면서, 완전히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망설여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혼을 흔드는 이 시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것이다. ---pp.300-301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읽으며
‘저건 못마땅해’, ‘좋아, 그렇게 하고 싶다’ 따위의 감정들에 일관성이 있으며, 이런 생각과 감정을 이어 나가는 독립된 마음의 주인이 내 육신 안에 있다는 믿음은 가짜이고 허구라는 말이다. 허구일 뿐 아니라 매우 골치 아픈 것이 에고이다. 톨레는 에고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늘어놓는 독백이나 대화의 내용들은 대체로 자신을 공격하거나 처벌하는 ‘고문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중단될 줄 모르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일종의 ‘중독’ 혹은 ‘질병’으로 여긴다. 물론 마음은 잘 사용하면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하는 생각들은 80~90퍼센트가 반복적이고 부질없는 잡념이거나 부정적인 성질을 띠고 있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다. ---pp.74-75
데이비드 갓맨, 『있는 그대로』를 읽으며
마음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무한하고 순수한 참자아임을 아는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명상할 때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앉는다. 내가 닦는다.’고 생각하며 앉았다가, ‘이제 50분이 지났다. 나는 다리가 아프다.’고 생각하며 일어난다. 마하르쉬의 말대로 ‘나’라는 육신과 에고의 제한을 받아들인 채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을 떠나지 않고 수행을 하니, 한 시간을 수행하든 일 년을 수행하든 에고의 제한된 의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마하르쉬는 사람들의 이런 착각이나 제한된 관점을 “마치 도둑이 경찰관을 가장한 채 도둑을 잡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p.347
조 바이텔·이하레아키라 휴 렌,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을 읽으며
세상 모든 일이 내 책임이라는 말은 세상이 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이 세상의 공동 창조자임을 의미한다. 우리 존재의 본바탕, 본래 모습은 신성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결점이나 사건도 없다. 내가 보는 현실, 내가 보는 사건은 내가 신성에 깨어 있지 못해서 그런 양상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안의 신성에게 나의 기억을 정화하며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 마땅하다. 그 신성이 페테르 에르베가 말한 ‘신 나(God-SELF)’이고,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한 ‘내면의 순수 의식’인데, 이는 기독교의 영적 전통이 말해 온 참된 사랑과 다르지 않다. ---p.274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을 읽으며
나는 아름다운 숲 묘사가 반가워 『월든』을 읽기 시작했다가 이내 소로의 구도자 같은 고독과 검박함에 이끌렸다. 삶의 본질을 마주하려면, 삶의 깊이를 찾고자 한다면 단순해져야 하고 홀로 있어야 한다. …… 소로는 자신이 사는 곳이 대초원만큼이나 적적하지만 거기서 외로움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가장 감미롭고 다정한 벗은 자연물 가운데서 찾을 수 있노라고,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린다고 한다. 그가 홀로 빗소리를 듣다가 문득 우주가 품은 친화감을 느꼈다고 하는 대목은 구도의 여정에서 한 길목을 넘어서는 모습으로 읽힌다.---p.64
마이클 탤보트, 『홀로그램 우주』를 읽으며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홀로그램 이론은 무척 어려웠다. 그렇지만 외부 세계가 고체여서가 아니라 고체로 인식하게 되어 있는 사람의 지각 방식 때문에 딱딱하게 보인다는 점은 수긍이 갔다. 그렇다면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우주를 보는 다양한 시각적 버전 가운데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은 거대한 실체이고 나 자신은 거기에 맞서는 미미한 개인이라고 여기던 이원적 대립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와 세상이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환영이고 모든 것은 파동 치는 가운데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게 되니, 주관성에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다. ---p.134
파커 파머,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을 읽으며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의 핵심 주제는 신뢰서클 만들기로 수렴된다. …… “우리는 신뢰서클을 통해 ‘고독의 커뮤니티’로서 서로에게 현존하는 ‘함께 홀로되기’라는 역설을 실천한다. 우리는 홀로됨과 커뮤니티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탓에 이런 구절들을 모순으로 여긴다. 그러나 홀로됨과 커뮤니티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둘 다를 함께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더 큰 세상에서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아는 참자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홀로됨에서 생기는 내적인 친밀성과 커뮤니티에서 생기는 다름에 대한 인식이 모두 필요하다.” ---p.219
에크하르트 톨레, 『NOW : 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를 읽으며
삶을 지금으로 받아들이고,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대로 자각하며 순수한 내면 공간에 닿아 있으면 그것이 현존이다. 방안을 걷든 차를 끓이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지금 하는 일, 지금 존재하는 곳을 삶의 목적으로 대할 때, 우리는 지금을 살게 된다. 그런 사람은 참된 의식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된다고 톨레는 말한다. 현재에 존재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존재할 때, 그 일들은 영적 힘으로 채워진다. 무슨 일을 하든 내면의 목적이 일차적이 되면 본성의 참된 의식이 그 일에 흘러들어 우리의 외부적인 목적과 내면적인 목적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pp.315-316
틱낫한, 『삶에서 깨어나기』를 읽으며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삶의 일들에 우선순위를 매겨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구분하며, 중요한 일은 주의를 기울여 하고 나머지는 가볍게 하는 게 효율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청소하고 밥상을 차리는 일 같은 일상생활이나, 늘 만나는 가족, 직장 동료, 지인과 같은 사람들은 새롭지도 않고 특별함도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틱낫한이 말하듯, 설거지든 늘 하는 업무든 지금 하는 일을 수단으로 대하면 “단 한순간도 제대로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반대로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하는 일은 자녀와의 사소한 대화나 장보기일지라도 존재의 온전한 경험이고 참다운 삶의 경험이 될 수 있다. ---p.335
파드마삼바바,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으며
현재의 내 마음이 진리에 가까울수록 사후의 영혼도 밝고 투명한 진리의 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지금의 삶이 탐욕, 악의, 시기심 등으로 얼룩져 있다면 사후에 아무리 평안하고자 하여도 영혼은 괴롭고 두려운 세계를 헤맬 것이다. “전생이 궁금하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라. 내생이 궁금하면 지금 자신의 행동을 보라.”는 단순한 말처럼, 결국 현생도 죽음 이후도 지금의 나 자신이 어떠한가에 달렸다. ---p.361
어느 순간이든 그것이 환영임을 알아차리고 진리에 마음을 모으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 경전은 거듭거듭 강조한다. “한순간 속에서 중요한 차이가 생겨난다. 한순간 속에서 완전한 깨달음이 얻어진다.”라고 말이다. 이는 지금 인간으로 살아가는 영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언제나 지금 한순간이다. 그리고 우리의 본질은 깨달음이다. 죽음 이후를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한 마음을 돌이키면 바로 그 자리다. ---p.363
정태혁, 『붓다의 호흡과 명상 I』을 읽으며
공사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도 ‘시끄러운 소리’와 ‘저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짜증스러운 반응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그러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구나. 저 소리를 피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쪽으로 담담하게 전환할 수 있다. 감각 작용을 이렇게 알아차리듯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도 알아차릴 수 있고, 그다음으로는 세상 만물의 움직임과 이치를 지켜보고 관찰할 수 있다. ---p.98
틱낫한, 『화』를 읽으며
어떻게 화라는 쓰레기가 꽃밭을 가꿀 좋은 거름이 될까? 바로 자각(mindfulness)의 힘이다. 꽃들이 햇빛을 받으면 활짝 피어나듯이 우리의 화는 자각에 의해 변화한다. 틱낫한은 “화를 자각한다는 것은 그것의 실체를 인정하고 맞이하고 접촉하고 끌어안는 것’’이라고 말한다. …… 화와 같은 감정의 폭풍은 자각의 요람에 안길 때 누그러지고 풀린다. 이러한 마법은 자각 속에 있는 집중과 이해와 연민의 에너지로 인해 일어난다. 자각으로 화라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신과 화 사이에 틈새가 벌어지면서 화가 잦아들게 된다. ---p.287
존 카밧진,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를 읽으며
마음챙김은 이처럼 파도에 요동치는 작은 배 같은 우리 마음에 깊은 안정을 가져다주는 닻이다. 온 마음을 모아 내적 중심에 집중하면서, 생각이 떠올랐다 스러지고 감정이 솟구쳤다 사라지는 것을 그저 지켜보는 것,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조자 혹은 초월자의 자리에서 담담히 지켜보는 것이 마음챙김이다. 그러면 고통도 결코 오래가지 않으며, 쾌감도 내 것으로 붙들 수 없게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깊은 곳에서 예전에는 몰랐던 평온함과 따사로운 느낌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온다.
---p.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