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모든 생명은 최선을 다해 잘해 보려는 마음이 있어요. 실수를 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잘해 보려는 마음’이 ‘진짜’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의 역할은 아마 그 생명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도와주고 살피는 데 있지 않을까요? 포장지는 거칠어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을 안다면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조금 더 잘 볼 수 있게 되겠지요. 아이들의 행동을 긍정하고, 그 의지를 수용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돕는 것,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 다그치지 말고 부드러운 눈으로 다정하게요. 저도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p.30
아이들은 언제나 온몸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싸워도 봐야 하고, 다쳐도 봐야 하고, 때론 위험과 불편함에도 직면해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어른들의 눈으로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그 자체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깨치고 성장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텐데 말이죠. 제가 아이들과 부대끼며 하루하루 선생으로 깨쳐 나가며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 p.38
사실 저는 ‘유능한 교사’를 경계하려고 노력해요. 유능한 교사는 무능한 교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것은 비교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요. 가까이 만나면 누구에게든 교사로서의 장점이 있고, 그것은 아이들과 만나 각기 다른 빛깔을 만들어 내지요. 각 교사가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우위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영역의 문제인 것이고, 각자가 그리는 그림은 다 다를 거예요. --- p.44
선생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왜 공립학교 교사로 살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생각해 보면 저는 기본적으로 학교라는 제도를 참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교대에 들어가서도 처음엔 절망감이랄까요? 그런 느낌으로 한참 힘들었어요. 교사를 길러 낸다는 교대에 정작 교육 본래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 p.52
제가 교실 안에서 선생이란 이름을 달고 하는 일 속에는 그런 힘의 냄새를 풍기는 일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교실과 학교 안의 다양한 권력관계가 아이들의 삶 속에 심어 주는 감수성들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삶의 작은 부분에서의 감수성과 민감성을 심어 주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아무리 외쳐 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 p.109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마음, 보아 넘기는 여유, 행동에 담긴 우주를 발견하는 눈 같은 거요. 나의 힘으로 해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바람과 햇살이 우리 사이에서 춤추도록, 아이들이 타고난 모습을 잘 가꾸어 가도록, 기다리고 응원하는 것! --- p.146
꼭 우리 학교가 아니더라도 교사들이 서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는 가운데 함께 성장하고 또 새로운 뜻을 세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만큼이나 그런 일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p.159
“인간의 몸은 척추동물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갑각류와 비슷하지 않을까”라고요. 무슨 말인고 하니, 갑각류는 뼈가 없고 밖의 껍질이 단단하지요? 그럼 어떻게 성장할까요? 네, 허물을 벗어요. 즉, 탈피를 통해 성장하는데 아무리 힘이 센 왕가재나 게라도 자기 허물을 벗고 나오는 순간은 말랑말랑해서 천적이 아니더라도 잡아먹히고 상처받기가 쉽대요. 갑각류가 성장하는 순간은 가장 약해져 있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단단한 껍질도 좋지만 죽을 것 같고, 잡아먹힐 것 같고, 상처받는 바로 그 순간에 성장한다는 거예요. --- p.198
오늘의 이 이야기가 저만의 것은 아니겠지요. 이 땅에 선생이란 이름을 달고 가르치는 일을 통해 희망을 일궈 가려고 애쓰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에리카와 심슨이란 이름으로 우리가 한 해 동안 나눈 여러 이야기들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더 많은 에리카와 심슨이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테니 말이죠. 한 해 동안 우리가 함께 나눈 이 편지들이 이 땅의 모든 에리카와 심슨에게 따뜻한 응원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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