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왕 길을 떠나는 김에 인문여행을 하자고 제안한다. 중국에서는 흔히 여행을 ‘무자 지서(無字之書)’에 비유한다. 곧 ‘글 없는 책’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할 수 있었던 토대는 20살 때 천하를 누비던 긴 여행이었다. 여행을 통해 우임금이 죽어서 들어간 동굴을 탐험하고, 공자가 남긴 풍속을 살피고, 지역 사람들에게 옛이야기를 묻고 다녔다. 당시 그가 했던 여행이 바로 인문여행이었다. ‘글 없는 책’을 통해 ‘만대에 전해질 명저’를 완성한 것이다. 이제 우리도 사마천의 심정이 되어 조선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그 가이드로 세 명의 선조를 초대했다.
---「프롤로그」중에서
1791년 서른 살이던 어느 여름날, 벗들과 함께 놀고 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우레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다산은 슬슬 분위기를 잡았다. 우선 그럴싸한 밑밥부터 깔았다. “세검정의 제1경은 소나기 쏟아질 때의 폭포인데도, 세검정과 가까운 성중에 사는 사대부 가운데 이 아름다움을 만끽한 사람은 드물다”고 한탄하고는, 그 이유로 비가 쏟아질 때는 사람들이 비에 젖어가면서까지 나서질 않고, 비가 개인 후 나서봤자 이미 물도 그 기세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옷이 젖더라도 ‘지금 당장!’ 출발해야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는다고 꼬드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산은 술병을 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친구 몇이 따라나섰다. 그렇게 해서 기어코 고래가 물을 뿜는 듯한 폭포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만다.
---「다산의 ‘Right Now!’정신」중에서
“술의 참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하는 자들은 술이 입술이나 혀를 적실 사이도 없이 곧장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버리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지금의 주류회사들이 들으면 환장할 이야기겠지만, 다산은 술을 잘 마시는 체질이었음에도 평소에 술을 멀리하며 학문에 정진한 듯 보인다. 작금의 술 좋아하는 사람들도 다산이 한 말의 의미를 알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경지임에는 틀림없다.
---「다산과 술」중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산 정약용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편집자라고 말하곤 한다. 저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폄하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다산은 문장을 다루는 법을 안다. 편집자의 제1미덕은 맥락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능력이다. 단편적으로 나열된 아이디어나 이야기를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그걸 하나씩 뱉어놓기만 하면 책이 안 된다. 엮어줘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최고의 편집자」중에서
남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주로 관직을 거절하는 상소였지만, 그 내용은 늘 날카로웠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 격의 없이 진지하게 일을 의논해야 세상이 태평스럽다”거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허심탄회하게 무슨 일이든 의논해야 한다”, “군신 간에 서로 믿고 뜻이 통하게 해야 한다” 등 요즘 식으로 하면 소통 리더십 혹은 박항서 감독의 파파 리더십을 임금에게 요구하는가 하면, 임금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며, 임금 스스로 자기 수양이 되어 있지 않으면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길 수 없고, 눈이 없으면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지 알 수가 없어 사람을 등용하고 버리는 일을 잘 못하게 된다는 등 진심어린 충고도 늘 빼놓지 않았다.
---「을묘사직소」중에서
남명은 책을 읽으면 여백에 감상평을 적거나 중요한 내용은 별도로 표시를 하곤 했다. 남명이 책을 어떤 식으로 읽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재밌는 사례가 있다. 남명은 친구가 보내준 『동국사략』을 읽으면서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여 붉은 먹과 검은 먹으로 표시했다. 완전히 착한 사람은 붉은 먹으로, 완전히 나쁜 사람은 검은 먹으로 표시했다. 또한 겉으로는 착한 사람 같으면서 속으로 나쁜 사람의 경우에는 바깥에 붉은 테를 두르고 속에 검은 먹으로 칠하고, 겉으로는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만 속으로 괜찮은 사람인 경우에는 검은 테를 두르고 속에 붉은 칠을 하였다. 이렇듯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설정하여 네 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그러니 남명이 표시해놓은 이 책을 한 번 펼쳐 보면, 역대 인물들의 사람됨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김해에 머물다」중에서
허균은 ‘글 읽기를 지나치게 즐기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스스로를 서음(書淫)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호서장서각기』에 장차 벼슬을 그만두고 “만 권 책 속의 한 마리 좀벌레”가 되어 생을 마치고 싶다고 쓸 정도였다. 10여 년 전에 빌려간 책을 돌려달라며 선배인 한강 정구에게 쓴 편지에도 이 표현이 있는 걸로 봐서, 허균은 정말로 책 속의 좀벌레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날아오르지 못한 이무기」중에서
요즘 강릉을 찾는 사람들은 허난설헌 생가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초당 순두부촌을 찾아 문전성시를 이루곤 하는데, 그 초당 두부의 기원이 바로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으로부터 생겨났다. 허엽은 강릉의 특이한 맛이 나는 샘물로 두부를 만들어 먹었는데 (혹자는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 두부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이를 맛본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다. 그 두부의 맛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이다.
---「초당의 순두부」중에서
그러면서도 허균은 불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탄핵하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성리학만을 신봉하는 자들이 ‘예절의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자유와 본성을 구속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쥐뿔 니들이나 니들 법에 갇혀 살아라, 나는 내 나름대로의 삶을 내 방식대로 완성하겠다. 니들은 성현의 가르침을 따라 살지만, 나는 그 위에 있는 하늘의 가르침, 즉 천성에 따라 살겠다고 공언한다. 이러한 공언은 허균의 인생 전체에 걸쳐 그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다짐이었다. 그럼으로써 조선 사회의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법을 꿈꾸었다.
---「본능대로 살리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