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으로만 보면 난 분명 꼴등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 인생 전체에서 그저 웃긴 추억이 될 수 있는 한 조각일 뿐이다. 한 가지를 꼴등했다고 해서 절대 다른 데서도 꼴등하지 않는다. 이런 자신감은 어려서부터 지켜온 나에 대한 가치관이다. 그래서 난 성공한 사람들이 꼭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남에게 거짓말 안 하고 자신의 삶에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모두 대단하다.
푸드트럭 한 대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우리를 보고 사람들은 성공만 이룬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것이 더 많다. 그 과정 속에 잃었던 것들이 아깝지 않은 이유는 실패들을 통해 찾은 답들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보다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 p. 6~7
“6개월 있어 보고, 안 되면 그냥 오면 되지.” 처음 미국으로 향할 때 난 커다란 다짐이나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게 없었다. 20대 중반에 어학연수차 미국으로 향하던 내 손에는 6개월 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왕복 비행기 티켓이 들려 있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편한 마음이었다.
그런 내가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다섯 아이를 두고 사업을 하고 있다. 한때 한 달에 5만 원을 겨우 벌던 때도 있었고 일주일 내내 수입 한 푼 없던 때도 있었다. 다른 집 아이가 전동칫솔을 사용하는 걸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보는 내 아이를 보면서 “돈 벌어서 전동칫솔 꼭 사주겠다”고 다짐하던 때도 있었다. --- p. 18
“컵밥! 싸고, 맛있고, 빠르고! 이거야!” 기존의 한식당에서 나오는 한국 음식은 다양한 반찬이 곁들여 나오는 한상차림이었다. 한국 음식의 다채로운 면모를 미국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좁은 푸드트럭에서 여러 음식을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컵밥이라면 기존의 한식당에서 나오는 한상차림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아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간단한 한 끼 식사로 친근하고 쉽게 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간편하게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미국 사람들 정서에 딱 맞는 메뉴였다. --- p. 44
사업은 계획했지만 돈이 없었다. 아무리 긁어모아도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해봐야 1만 5,000달러(한화 약 1,700만 원)가 전부였다. 그래도 함께 시작하는 사람이 3명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 세 사람은 총 4만 5,000달러(한화 약 5,000만 원)를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투자 금액을 정할 때도 절대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았다. 누구보다 절실했지만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부딪혔다. 사업 초기에 하던 일을 유지한 것도, 그리고 소자본 투자를 한 것도, 이 사업 하나에 모든 걸 걸었다가 잘되지 않으면 감당해야 할 식구들이 너무 많이 딸려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위험요소를 줄여야 했다. --- p. 58
음식을 사면 꼭 정량만 주는 미국에서 우리는 고정관념을 깼다. 얹어주기 서비스, 일명 ‘덤’을 시작했다. 음식을 추가로 듬뿍 얹어 건네주는데도 연신 싱글벙글하는 우리를 보며 미국 사람들은 좋아하면서도 놀란다. 돈은 추가로 한 푼도 내지 않았는데 음식을 공짜로 더 얹어주는 특이한 서비스가 마음에 든 손님은 지인을 데리고 또 다시 방문한다. --- p. 82
미국 사람들의 창의적이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성향을 살린 ‘선택의 자유’는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서브웨이나 피자 프랜차이즈 파파머피 같은 음식점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성공한 그들의 ‘선택 방식’을 적극 적용했다. 컵밥 위에 끼얹는 소스를 고객이 각자의 입맛에 맞도록 선택할 수 있게 했고 반응도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소스의 색깔이 고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냈고, 호기심과 흥미를 이끌어 냈다. --- p. 92
“몇 마디 단어로 백 마디 문장보다 유용한 효과를 줄 수 없을까?” 말보다 빠른 건 뭘까? 바로, 눈이다. 말을 건네기 전에 한눈에 짧은 문구로 우리를 표현하고 싶었다. 휘황찬란하게 쓰인 영어로 슬로건을 쓰면 사람들은 우리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할게 뻔했다. 영어를 못하는 우리니까 영어를 못하는 그 ‘장점’이 한눈에 드러나는 슬로건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각인시킬 중요한 문구였기 때문에 며칠 동안 날이면 날마다 닥치는 대로 문구들을 만들었다. --- p. 100
트럭 한 대에서 시작해 이제는 지점을 내고 해외 진출도 했다. 하지만 3년 전보다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수익이 그만큼 비례해서 늘어난 것은 아니다. 보다 폭넓은 관리를 위한 인건비, 노동법에 따른 보험비 등 지출하는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선 앞으로의 발전도 없다.
난 우리 회사가 트럭으로 머물길 원하지 않는다. 모든 건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의 인기는 언젠가 시들해질지 모른다. 이윤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지금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펼쳐보며 우리가 가진 아이디어들이 과연 성공을 가져올 만한 것들인지 끊임없이 테스트해보고 싶다. 이런 다짐이 실패를 할 때 더 주저하고 망설이게 하기보단 다음번엔 꼭 성공하고자 하는 원동력이 된다. --- p. 141
지금 돌아보면 무식한 성장 속에서 아찔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신없는 두 해를 보내면서 밖에선 고객들의 커지는 불만을, 안에선 직원들의 커지는 불만을 끊임없이 해결해야 했다. 마음 같지 않은 더딘 해결의 과정들은 우릴 더 조바심 나게 했고, 준비되지 않은 성장은 때론 사람도 잃고, 고객도 잃게 만들었다. 알고 있던 것들도 어떻게 다시 해야 될지 참 막막한 그 시간동안 내게는 평생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경험했다. 정신력 하나는 자신 있던 난데 이런 내 모습에 스스로도 너무나 당황하고 놀랐다. 그렇다고 해서 피하는 건 또 나와 맞지 않았다. 두려워서 상황을 회피하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난 위기의식이 느껴지면 오기가 생긴다.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면 꼭 더 해봐야 성에 차는 청개구리여서 그런지 뭔가 뜻대로 잘 되지 않으니 더 되게 만들고 싶은 오기가 올라왔다. --- p. 172
외국인이 미국인과 소통을 잘하려면 ‘영어문장을 얼마나 완벽하게 잘 구사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던지는 센스 있는 멘트, 상대방에게 유쾌함과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유머가 대화의 분위기를 바꾼다. 똑똑함이나 지식이 아니라 재치와 유머야말로 상대의 호감을 사는 비결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건 대화하는 상대가 날 보며 ‘얘 도대체 뭐지?’ 라고 느끼도록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 p. 191
삼진글로벌넷의 지원을 시작으로 다른 한국 업체들에서도 관심을 기울여준 덕에 2017년도 9월엔 2년 만에 두 번째 밥심 이벤트가 열렸다. 첫 번째보다 더욱 커진 이벤트에는 특별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의 지원으로 몇 개의 한국 업체가 참여했다. 롯데, 동아제약 등 각 업체에서 지원된 물건을 가지고 샘플 등을 선보였다. 사물놀이, 탈춤, 비보잉, 한국 전통의상 체험, 한국 전통 놀이와 같은 문화 공연 및 체험으로 이뤄진 행사에 초대되어 온 사람들은 이런 문화 이벤트는 처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p. 226
다들 트럭 한 대에서 나는 수익으로 셋이 나누면 어떻게 먹고사냐고 했지만 우린 그만큼 더 많이 벌면 된다는 믿음으로 사업을 지금까지 키워냈다. 일이 얼마나 많고 적냐, 얼마나 어렵고 쉽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해내는 사람의 성향과 의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 처음부터 많이 부족했던 우리는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잘하면 잘하는 만큼 서로 채찍질하고 티격태격 맞춰가며 콩 한 쪽 같던 트럭 한 대에서 지금까지 왔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 일이 무엇이냐보다 누구와 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참 많이 달라진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일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 p.238
자꾸 스스로를 의심하고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면 자신감만 상실한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감 하나는 지키고 가자. 뭔가는 해보고 싶은데 안 가느니만 못한 길이 될까 봐 시작조차 하지 못하겠다면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조그만 변화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큰 변화만 시작이 아니니까 말이다. 작은 변화도 충분한 시작이고 과정이다. 우리가 작은 트럭 하나로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일단 뭔가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강철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차가운 곳과 뜨거운 곳을 번갈아 다니다 보면 더 강인한 내가 만들어진다.
--- 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