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정말 할 수 있을까? 갈수록 암울해지는 날들의 연속이다. 모아놓은 돈도 떨어져가고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도 없다. 경기 대침체 때문에 웬만해선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던 아빠 말이 맞았던 걸까? 2011년 가을, 지금은 무급 인턴 자리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 물론
무급이라면 사양할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샬럿과 나는 아침마다 주방 식탁에 앉아 꾸역꾸역 노트북 컴퓨터를 켠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과연 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감이 줄어든다.
내 자신감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샘이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을 보내준다. ‘인생의 경험이라는 점들이 어떻게 연결돼 그림이 완성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나중에 되돌아봐야만 알 수 있다. 그러니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것임을 믿어야 한다.’ 나는 이 말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종이에 파란색 크레용으로 적어 냉장고 문에 붙여놓는다.
--- 「인생의 점들은 나중에 연결된다」 중에서
첫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 일찍 페기에게서 이메일이 온다. ‘우리 사무실은 EEOB 5층입니다. 백악관 서쪽에 있는 큰 건물이에요. 아직 정식 직원증이 없으니 방문객용 출입구로 들어와야 합니다. 신분증 꼭 지참하세요. 제 오늘 스케줄에서 당신을 위한 시간을 이미 빼놓았습니다.’ 백악관으로 출근한다는 생각에 너무 들뜬 나머지 마지막 줄을 못 보고 화면을 닫을 뻔한다. ‘한식구가 된 걸 환영합니다.’ 소름 끼치게 기분 좋다.
--- 「1막 한식구가 된 걸 환영합니다」 중에서
러닝머신을 완전히 멈추고 숨을 고르는데, 곁눈질로 흘긋 보니 오른쪽 러닝머신에 누군가 올라선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거보단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텐데요.” 그 사람이 말한다. 나는 농담을 건네는 남자가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려본다. 대통령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죠?”
대통령이 주변에 있는 보좌관들을 향해 묻는다. 내 빨간 얼굴이 더 새빨개진다. 다들 웃고 대통령도 웃는다. 나도 따라 웃어야 하는데 웃음이 안 나온다. 너무 놀라 얼이 빠져서.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잖아요.”
대통령이 윙크를 하며 내게 말한다. 대통령은 검정 캉골(Kangol) 야구모자에 검정 바지, 검정 티셔츠 차림이다. 운동할 때 늘 입는 복장이다. 모자챙 밑에서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껌을 씹으며 대통령이 거듭 말을 걸어오는데도 나는 꿀 먹은 벙어리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눈앞에서 맞닥뜨린 기분이다.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이 당최 떠오르지 않는다. 짐 쌀 때 깜빡하고 디오더런트를 안 챙긴 게 퍼뜩 생각난다. 지금 내게서 풍기는 땀 냄새가 장난 아닐 텐데! 대통령은 지독한 냄새 나는 벙어리 아가씨와 정감 어린 농담을 나누는 일은 애초에 포기하고 〈스포츠센터(SportsCenter)〉 프로그램을 찾으려고 TV 채널을 휙휙 넘기고 있다.
--- 「떠들썩한 정장 군단 」 중에서
나는 남자 좀 그만 밝히라고 리사를 놀린다. 그리고 이런저런 요긴한 정보를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 콜은 나보다 겨우 한 살 더 많다고 한다. 20대 중반인데 벌써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인사가 되었다니. 그리고 나는…, 그냥 속기사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포터스의 말대로 큰 꿈을 꾸는 것, 그게 중요하다.
--- 「큰 꿈을 꾸어라」 중에서
“꿈꾸던 삶을 살고 있어요? ‘꿈꾸던 삶을 산다’는 말은 백악관 세계의 생활을 표현하는 우리만의 은어 같은 것이다. 놀랍고, 스트레스 넘치고, 피곤하고, 낙담할 때도 많지만 내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떠올리는 순간 그 모든 게 감내할 만한 것이 되는 그런 생활. 그리고 ‘꿈꾸던 삶을 살고 있어’라는 말은 친구나 가족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지금 당장 누군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5분이라도 쉬지 못하면, 지금 당장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일주일 동안 휴가를 떠나지 못하면 조만간 누구 한 명 죽일지도 몰라’라고 쓰고 싶을 때 대신 쓰는 말이기도 하다.
--- 「위를 올려다보라」 중에서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 나는 연설 원고를 전송하고 나서 어두운 사무실에 홀로 앉아 눈을 감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아주 오랜만에, 이토록 절망하고 슬펐던 적은 없으므로, 나는 기도를 드린다. 고개를 숙이고 26명의 희생자에게 약속한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 「지독한 슬픔의 물결」 중에서
“당신은 백악관 직원이에요. 중요한 일을 하는.”
나는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로렌스가 그렇게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저 내가 이곳 백악관에서 가장 중요도가 낮은 하찮은 직원이라고, 원숭이나 기계를 시켜도 할 수 있는 원초적이고 쉬운 일을 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로렌스와 나는 중앙관저로 향하는 긴 콜로네이드를 따라 걸어간다. 우리는 말없이 걸으며 로즈 가든을 눈에 담는다. 1월인데도 로즈 가든은 여전히 아름답다.
---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중에서
아무도 모르지만 사실 이 비행기 안의 누군가는 어제 입었던 속옷을 그대로 입고 있고, 또 누군가는 실수로 새벽 5시가 아니라 오후 5시로 알람을 맞춰놓는 바람에 오늘 아침 대통령 자동차 행렬의 출발을 놓칠 뻔했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만 시간을 착각해도, 조금만 정보 업데이트에 차질이 생겨도, 약간의 문자메시지 실수만 발생해도 개인적으로나 팀 전체에 엄청난 낭패를 초래할지 모를 긴장감 속에서 산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각자의 직급을 잠시 잊은 채 ‘나’라는 개인이 되어 있다. 각자의 출신 배경과 미래, 옛 애인이나 전 배우자나 몸이 아픈 반려동물, 속 썩이는 부모님과 상처받은 가슴과 커다란 꿈을 가진 개인들. 어떤 이들은 방문했던 국가에서 겪은 재밌는 일화를 들려주는 대통령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모두 똑같이 정신이 어질할 만큼 지독한 피로감 속을 헤엄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놀랍게도, 꿈속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서 에어포스원을 타고 지구를 반 바퀴쯤 돌아 날고 있다는 것. 우리는 행운아다. 진짜 더럽게 운 좋은 행운아다.
--- 「해를 뒤쫓아 날아가며」 중에서
이 사람들을 정예 군단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존경과 감탄의 눈으로 쳐다보는 동안에도, 우리가 지상에서 수천 미터 떨어진 상공의 보잉 747기 안에 있음에도 정예 군단이 아닌 또 다른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떠올린다. 대통령의 출장이 무사히 진행되도록 만드는 그 수많은 사람들은 정예 군단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들의 노력은 촘촘한 거미줄과 나뭇가지처럼 뭐라 설명하기 힘든 방식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혹시라도 에어포스원이 공격을 당하면 기체를 재빨리 틀 수 있는 조종사부터 대통령 방문지의 교통을 통제하는 현지 경찰관들, 기내 승무원들, 대사관 직원들, 주차 관리자들, 자원봉사자들, 의료진, 카펫 관리자들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고 시끄러운 집회장에서는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없다. 무대의 조명이 환하게 들어오고 음악이 켜지는 순간 모든 일벌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무한하게 연결된 그들의 노고와 보이지 않는 희생이야말로 무엇보다 값지고 감사한 것이다.
--- 「해를 뒤쫓아 날아가며」 중에서
“샘과 관계가 회복돼서 다시 만나게 되면 말이야, 이걸 꼭 기억해. 샘이 그의 꿈을 좇는 것처럼 벡도 자신의 꿈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 포트 헌터(Port Hunter)에서 같이 저녁을 먹으며 아멜리아가 말한다.
--- 「NG 모음」 중에서
마서스비니어드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저녁에 제이슨이 내 방을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내게 부족한 남자 같다고, 브룩과 다시 잘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당신은요?”
“이제부터 좋은 사람이 되려고. 그래서 브룩에게 돌아가는 거고.”
그가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제이슨은 마지막으로 내 입술과 머리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뗀다. 그가 방을 나간다. 내 눈에서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린다. 어린애가 된 기분이다. 진정하라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일수록 더 서럽게 눈물이 쏟아진다. 제이슨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관계에 대해서도, 나머지 모든 것도 전부 다.
--- 「NG 모음」 중에서
1월이 끝나갈 무렵,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2014년을 행동하는 해로 만들자고 강조한다. 의회 앞에서 대통령은 “제게는 펜도 있고 폰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행정명령에 서명할 수 있는 펜과 기업가들 및 정계 외부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를 동원할 수 있는 폰을 이용해 목표하는 바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말-옮긴이). 나는 늦은 저녁 속기사 사무실에 앉아 대통령의 말을 타이핑하면서 깨닫는다. 나도 역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 「발바닥 파열」 중에서
“나의 대통령 임기는 이제 4쿼터에 접어듭니다. 흥미진진한 장면은 4쿼터에 나오기 마련입니다.”
마지막 쿼터에서는 나태하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나는 부지런히 외곽슛을 쏘고, 리바운드를 잡고, 공을 가로채고, 블로킹을 하고, 반칙을 당해 자유투를 얻고, 종료 버저가 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해 뛸 준비가 돼 있다. 언젠가 마이클 조던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원하는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고, 어떤 사람들은 간절히 소망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든다.”
자, 이제 시작이다.
--- 「리더, 외로움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 중에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는 자유란 “매일매일 수도 없이 보잘것없고 사소하며 대단치 않은 방식으로 진심으로 타인을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나는 비록 샘과 아멜리아를 배신하고 가짜 우상에 속아 넘어갔을지라도 여전히 타인을 걱정하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껏 오빠와 여동생을 진심으로 도와준 적이 얼마나 많던가?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기꺼이 도와주지 않았던가? 나는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민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사소하고 대단치 않은 방식으로 희생할 줄 안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왜고니어가 집 앞 진입로로 들어설 때 생각한다. 그래, 나는 ‘마음을 다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야. 지금까지는 찌질이, 멍청이였지만 얼마든지 더 나아질 수 있어. 더 나은 인간이 될 거야. 지금 당장은 모든 게 혼란스럽고 엉망이지만 그래도 난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호프 말이 맞다. 난 최고를 누릴 자격이 있다. 그리고 스태플 싱어즈의 말도 맞다.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길 원한다면 먼저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 「우리는 테러의 공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중에서
“벡은 글을 써요. 글 쓰는 재능이 있어요.”
“와, 진짜 글을 쓰시는구나.”
“뭐, 조금요.”
모두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간신히 대꾸한다. 레일라가 말한다.
“있잖아요, 전 하루 종일 망할 남자 자식들이 우글대는 상어 탱크에서 일해요. 만일 당신이 남자라면 자신이 작가라고, 미래의 위대한 미국 소설을 쓰고 있다고 대답할걸요. 당신이 글을 쓴다면 당신은 작가예요. 그리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돼요.”
--- 「우리에게 남은 소중한 시간」 중에서
속기사실에서 일하다 꿈을 좇아 떠난 옛 동료 루카스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는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 루카스는 내가 자랑스럽단다. 4년 전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야무지고 강해 보인다고. 눈빛이 더 또랑또랑해졌다고.
“장래성도 없는 그 일 언제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할 거예요?”
루카스가 묻는다. 그는 날마다 꿈을 향해 달릴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나도 그럴 거라고 말할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침대로 들어간다. 루카스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나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언제 나아갈 것인가?
--- 「화려한 파티복 뒤에는」 중에서
“벡, 나는 제일 친한 친구가 죽는 걸 지켜봤어.”
노아는 작년 10월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료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직원이었다.
“엉뚱한 일로 상처받으며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 너를 울리는 사람들에게 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 그들에게선 네가 바라는 걸 얻을 수 없어. 그러는 사이에 즐겁고 소중한 시간만 놓치게 돼. 내가 하고 싶은 얘긴 그거야.”
--- 「30대에 입성한 걸 환영해
“그래, 맞네. 둘 다 진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지. 항상 책임감 있게 어른다운 결정을 내려야 하고.” 나는 이렇게 대꾸하며 두 사람과 차례로 맥주병을 부딪친다. 노아가 유리로 된 커피 테이블에 맥주를 내려놓고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천천히 힘을 주어 말한다.
“어른다운 결정이라니까 하는 말인데, 언제 이딴 일 그만두고 글쓰기 시작할 거야?”
보잘것없는 내 글쓰기 얘기가 나오니 내밀한 뭔가를 들킨 기분이다.
꼭 노아가 내 방 서랍장의 제일 위 칸을 열어본 것 같다.
“그래, 꼬맹이 아가씨.”
테디가 하이프맨(hype man, 힙합 공연에서 메인 래퍼를 옆에서 보조해주는 역할-옮긴이)처럼 옆에서 거든다.
--- 「이딴 일 그만두라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