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든 좋으니 추억담 한 편을 써서 돌아가며 낭독한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문장으로 정리해서 읽는 편이 더 정확히 전달된다.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서로 누구 것이 더 낫나 겨루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지금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차분히 생각하는 것과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게다가 생각할 것은, 언제쯤 풀려날까 하는 미래가 아니다. 자기 안에 간직한 과거, 미래가 어떻게 되든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과거다. 그것을 살며시 꺼내 손바닥으로 보듬어 덥히고 말[言]의 배에 태운다. 그 배가 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익숙한 곳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차가운 돌들에 둘러싸이고 촛불 불빛밖에 없는 폐옥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한다. 범인들조차 그런 자신들을 가로막지는 못하리라. --- p.13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갈까요?”
내가 말해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우산을 펴서 둘 사이에 받쳤다. 어느새 다른 관람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코끼리와 집주인만이 비가 오는 것도 모르고 꼼짝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끼리를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하나 마나 한 말을 문득 했다.
“동생이 좋아했거든. 여기서 곧잘 이렇게 구경하곤 했어.”
철망에 걸친 손가락이 얼어붙고 코트 어깨가 젖어 변색되었다. 베레모 밑으로 보이는 이마의 상처가 주름과 구별되지 않았다. 나는 우산을 좀 더 주인 쪽으로 받쳐 들었다. 어느 우리에선가 한 동물이 떨리는 목소리로 울었다. --- p.57
우연히 길을 안내해준 노인이 어떤 언어를 말하는 유일한 생존자였다는 사실을, 나는 기이한 기분으로 돌이켜 생각했다. 죽은 자를 안심시키고 산 자를 위로하기 위한 기도가, 가본 적도 없는 어느 머나먼 마을의 헐벗은 산속 동굴 안에 울려 퍼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동굴 밖으로 나오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말들은 세계 유일의 안주의 땅인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죽은 이를 떠나보내려 하고 있다. 어둠과 분간되지 않는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로 뒤덮인 그곳은 몹시 선득하고 춥다. 발치에는 차가운 샘물이 흐른다. 팔을 뻗어봐도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고, 희미한 램프 불빛이 비추는 것은 관 속에 누운 죽은 이의 얼굴뿐이다.
어느새 그 얼굴이 지금 말하고 있는 노인으로 보였다. 아아, 그런가. 그가 죽으면 한 언어가 죽는 건가. 그러니 이것은 언어의 죽음에 바치는 기도다. 모두 동굴에 스며든 음향의 잔재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 pp.66-67
한숨을 돌렸을 때 옆자리의 노부인이 우는 것을 깨달았다. 소리는 나지 않았고 표정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얼버무리려야 얼버무릴 수 없는 눈물이 천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바늘은 젖은 천 위를 나아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B담화실에는 고개를 수그린 뒷모습이 여럿 있었다. 모두가 혼자였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뒤 홈질로 돌아갔다. --- p.76
나와 노인의 윤곽이 이음매도 없이 맞붙은 느낌이었다. 등에 업힌,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이 내 일부가 되고 나 또한 그 타인에게 속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난생처음 뭔가를 정말로 안 순간이었다. 외부 세계에서 미리 마련된 결정 사항이 우연히 내 안으로 뛰어든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진실을 낳은 순간이었다. 마지막 계단이 우리 눈 바로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 p.107
어머니도 똑같이 매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지만, 그것과 옆집 따님이 하는 일이 도무지 같은 종류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머니도 제 생일에 삶은 달걀이 들어간 미트 로프와 딸기 데커레이션케이크를 만들어줄 만큼 요리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옆집 따님이 눈앞에서 벌이는 것은 요리라는 말로 분류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더욱 절실하고, 심원하고, 엄숙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온유하고 또 관대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기도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시의 저는 물론 영문도 모르고 그저 황홀한 기분으로 콩소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 p.125
이렇게 맞댄 두 손에서 손가락 사이로 물이 새어나가듯 다들 멀어져가는 것을 나는 그저 잠자코 배웅했다.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면 조그만 공동이 남아 있을 뿐 이제 더는 새어나갈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아무것도 없는 공백을 보고 싶지 않아서 눈앞의 잡무에 전념했다. 타인에게 인정받겠다는, 자신을 향상시키겠다는 바람은 갖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을 무심히 했다. 아무리 정성스럽게 꽃병의 물을 갈고 차를 끓여도 내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회사에서건, 어디에서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굴었다. 남편이 이곳에 없는 것처럼 나도 이곳에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남편이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끼려 했다. 이게 청년을 만났을 때 내 모습이었다. --- p.145
청년의 등은 죽은 이를 애도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죽은 사람이 쓰러진 곳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빈껍데기가 된 영혼을 지면에서 뺀다. 약동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그것을 쥐고 가까이 끌어당겨, 머나먼 우주의 끝으로 가버린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이쪽으로 돌아온다. 청년은 창을 던짐으로써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한다. --- p.151
다만 그날 이후로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가슴속에 창 던지는 청년이 살게 되었다는 걸까. 타인이 보면 단순한 착각이겠지만 내게는 소중한 변화였다. 청년의 창던지기를 본 나는 이제 결코 보지 않은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 빠끔하게 도려내진 타원형 경기장은 언제나 내 안에서 푸른 하늘과 깊은 정적을 담고 있다. 관중석은 나를 위해 편안한 벤치를 비워놓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곳에 앉는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할 수 없이 눈물이 나려 할 때. 청년은 창을 들고 스파이크 슈즈 소리를 내며 나타난다. 그리고 나와 그, 둘만이 있는 경기장의 하늘에 창을 던진다. 창은 마치 남편이 만든 비행기처럼, 또는 남편의 영혼 그 자체처럼 비상한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지점에 착지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청년이 자애 어린 손으로 빼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와 다시 내 가슴까지 갖다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물을 닦는다.
나는 그새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창 던지는 그는 여전히 청년이다. --- p.155
타석에 들어섰을 때도, 투수와 사인을 주고받을 때도, 벤치에서 응원하고 있을 때도 늘 할머니의 기도가 느껴졌다고 청년은 말했습니다. 실제로 까마득히 먼 곳에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은 까만 점이나 다름없었지만, 다른 관객들 틈에 가려진 그 점에 자신의 무사를 한결같이 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었습니다. 더욱이 할머니의 기도는 손자가 안타를 칠 수 있기를, 시합에 이길 수 있기를, 같은 얄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큰 무사를, 시합에 나온 아이도, 후보 선수도, 같은 팀도, 상대 팀도, 감독도, 부모 형제도, 구경하는 관중들도,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무사를 기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곳에 할머니가 있다고 생각만 해도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 p.161
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어쩌면 그렇게 드문 현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저는 제 이런 체험을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평범한 주부에 불과합니다. 이렇다 할 장점도 없고 드라마틱한 체험과도 연이 없습니다. 가슴을 펴고 큰 소리로 주장할 주의, 교훈, 계시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제 인생에서 만에 하나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입니다. --- p.178
“이 사람들은 책을 낭독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자기소개 같은 것이냐고 질문하자 단칼에 부정했다.
“아니, 더 심원한 이야기입니다.” --- p.201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머나먼 어딘가의 말조차 통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보내는, 기도와도 같은 행위였다. 나는 그 기도를 확실히 받았다는 증거로 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p.204
헤드폰에서 인질들의 낭독이 들려왔을 때 내가 떠올린 개울은, 가위개미 행렬이 짓는 푸른 개울이었다. 일본어를 들은 순간 잊고 살았던 세 방문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면서 동시에 가위개미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각각 명백히 자기 몸뚱이보다 큰 것을 들고도 힘겨워하는 기색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아뇨, 괜찮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라고 하듯 나아간다. 한눈을 판다든지, 으스댄다든지, 남을 앞지르려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것이 당연한 역할임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나무들 사이에 갇힌 숲속을 푸른 개울은 소리도 내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간다. 자신이 져야 할 공물을 정해진 지점으로 운반한다.
인질들은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낭독했다.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