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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도 모르는 영화 속 종교 이야기

감독도 모르는 영화 속 종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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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90g | 140*210*30mm
ISBN13 9788997472253
ISBN10 899747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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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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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교가 되었건 간에 경전의 기본 정신은 죽임이 아니라 살림이며, 이성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다. 조직신학자 다니엘 밀리오리는“성서 해석의 필수적인 맥락은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이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믿음, 사랑, 소망의 삶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중에 제일은‘사랑’이다. 알랭 바디우는‘쓰인 법’(율법)에는 구원이 없다는 바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랑은 율법(모든 쓰인 것)의 완성이기에(로마서 13:10), 읽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로마서 10:8).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으므로, 다시 말해 읽는 눈에 있었으므로(신명기 30:14) 구원은 철저하게 탈문자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바디우의 주장이다. --- p.37

대한민국에서는 욕망의 죄를 대신 지기라도 하듯 소와 돼지들이 집단으로 살처분된다. 그런데 정작 인간은 거라사 광인처럼 괴로워하지 않는다. 차라리 욕망과 죄 때문에 괴로워하기라도 하면 치유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서 여전히 욕망으로 자신들을 채우고 예수를 따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사람들이 컴퓨터, TV, 스마트폰 등을 통해 재앙의 이미지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 줬다.“ 테크놀로지는 타인의 고통은 경험해 보지도 않고 그 참상에 정통하게 만들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는 수잔 손택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기야 누가 요즘 세상에 힘든 방법으로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며 진리를 따르겠는가! 종교 기관에서 화려하게 제공되는 여러 가지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으면 진리를 따르는 일이 쉽게 되는데 말이다. --- p.65

여주인공 희수는 모방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이다.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깨진 남자 대신 1년 전 돈을 꾼 뒤 홀연히 사라진 옛 남자친구를 찾아 경마장으로 간다. 남편감은 능력이 있어야 하며 능력이 없으면 남편감으로서의 지위는 상실된다. 틀에 박힌 결혼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모방하려는 그녀에게 경제적 무능력은 견딜 수 없다. 결혼 무산의 이유가 그것이다. 지질한 젊은 여성이 되지 않기 위해 자가용도 소유하고 있다. 그녀는 모방의 세계를 즐긴다. 병운과 함께 만나는 병운의 여자들은 그녀에게 경쟁과 모방 대상인 짝패가 아니다. 젊은 남자에게 묘한 눈빛을 보내는 돈 많은 중년 여인, 호스티스, 우연히 마주친 개념 없는 부잣집 아들 같은 인간군들은 희수에게 있어서 짝패가 아니라 찌꺼기(leftover person)이다. --- p.103

은혜가 욕망에 사용되었을 때 은혜는 파멸로 나타난다. 신앙과 기도를 자기들의 물적 토대를 확보하는 것에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그렇다. 부조리한 아버지를 떠난 레이스는 도그빌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아버지보다 추악한 폭력성을 발견하고 은혜로운 판단을
멈춘다. 탐은 그레이스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자신의 생명은 보장받을 줄 알았으나 착각이었다. 찢기고 상처받은 그레이스는 도그빌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다. 그레이스에게 정의는 용서도 관용도 아니다. 그녀에게 정의는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음이다. 레이스(은혜)는 기독교에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며(용서) 죄인인 인간을 원위치로 되돌려 놓는 선물이다. ‘거
저’와‘되돌려 놓음’사이에 간극이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다. --- p.146

서구 영화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자주 발견되듯이 인도 영화에는 인도적 세계관이 발견된다. 자아라는 개별자(아트만)는 우주의 중심이다. 그것에 진흙이 묻어 있어도 진흙 그대로를 받아 들인다. 어차피 인생은 무지이고 거짓 세계의 전개인 것, 마술사 이튼에게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 또는 불가능한 것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마술쇼를 보듯이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속아주는 것뿐이었다. --- p.183

종교는 비극을 세상의 끝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죄로 만연된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를 숙명론으로 옭아매기 위한 비극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세상이 아직 남아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영화에서 미자 역시 돈으로 모든 것이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 p.224

다른 이의 죄를 발견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조그만 실수도 용납 않는다. 모든 것의 가치 기준은 그들의 손 안에 있다. 종교만 죄를 선포하는 데 재미 붙인 것이 아니다. 이성과 상식의 기준으로도, 심지어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죄를 선언한다. 그렉도 죄를 구별하는 감별사 같은 사람이었지만 자신 또한 속죄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반면 그렉의 앞뒤 꽉 막힌 것을 비판하던 장례식의 조문객들은 죄를 감별하던 이전의 그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장례식을 엄숙하게 이끌려던 그렉의 종교성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자유로움을 자랑했지만 그렉의 죄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에게 죄를 선포하는 사람이 미운 이유는 그가 교리에 갇힌 근본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자신이 죄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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