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사람이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묻고, 강영안 교수는 지치지 않고 대답하는 형식이다. 마치 고전에서 종종 보듯, 묻는 자가 있고 그의 질문을 통해 답하는 이의 사상 체계가 드러나는 책이 되었다. 이 기획은 출판사에서 제안한 것인데, 강영안 교수와 2박 3일간 함께 지내면서 주제에 제한 없이 마음껏 대화를 나누고 이를 책으로 엮자는 것이었다. 나는 두말없이 기쁘게 그 기회를 붙잡았다.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동안 답을 얻지 못했던 무수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지며 파상 공세를 펴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계통도 없고, 높이도 고르지 않은 질문들을 한없이 던지다 보면, 그것이 나름대로 꼴을 갖추고, 자리를 찾아서 말이 되고 글이 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 그것으로 충분했다. 2008년 9월 4일에서 6일까지 2박 3일간, 경기도 양평의 모새골에 우리 둘은 남겨졌고, 먹고, 자고, 걷고, 웃고 울면서 13시간 분량의 녹음을 남겼다. 나는 집요하게 질문을 바꾸어 가며 파고들었고, 강영안 교수는 검토해야 할 문제의 핵심을 즉각 분별해 내고, 그 논의에 필요한 동서양 고전과 사상가를 바로바로 인용하면서 대답했다. 그것은 백과사전과도 같은 지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을 눈앞에서 만나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나는 2005년 이래 청어람아카데미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강영안 교수와 여러 번 강좌를 열었다. 그의 강좌는 철학, 신학, 역사 등 인문학 전반을 오가면서 진행되었고, 대략 10여 개 언어가 종횡으로 사용되는 지식의 향연이었다. --- p.9~10, ‘들어가며’에서
양희송 ‘삶 전체가 예배다’라는 측면은 잘 살펴보았는데, 이제 반대로 소위 ‘공예배’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수준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평신도’가 설교를 하는 것이 가능하냐, 바람직하냐는 논란도 있었지요.
강영안 중요한 질문입니다. 목회와 일상의 관계를 내가 설명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평신도 사역자가 말씀으로 섬기는 일, 특히 전문적인 이슈를 가지고 설교하거나, 성경공부를 하거나, 교육을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목사님들은 그리스도의 성품이 어떠하며, 하나님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임하고,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포괄적 내용만 다루어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좀더 세부적인 영역, 그러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세부 영역은 평신도 사역자가 섬길 수 있게 목회자들이 그들에게 섬길 공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평신도 사역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잘 못하고 있어요. 물론 일부 그런 전문가들이 있기는 하죠. 경제나 정치, 통일 문제에 충분한 지식을 갖춘, 그야말로 전문가적인 동시에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목회 영역에 들어와야 해요. 목회 영역에 들어와서 일반 성도들을 함께 훈련해야 합니다.--- p.88~89, ‘종교’에서
강영안 (중략) 지금까지 교회는 지적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았지요. 흔히들 신학생들은 석사, 박사 과정을 공부할 수 있게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예술이나 철학, 사회학이나 정치학과 같은 전문분야의 그리스도인 일꾼을 키우고 지원하는 데는 인색했어요. 지금이라도 교회가 신학뿐만 아니라 그 밖의 전문 분야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성의 여러 분야로부터 기독교가 참담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기독교가 비기독교 지성인들을 담론의 영역, 토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지적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히 신뢰할 만한 신앙임을 보여 주는 기독 지성인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론적 무신론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 기독교가 두려워해야 할 무신론은 기독교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실제적 무신론’이지요.
양희송 ‘실제적 무신론’이란 어떤 것인가요?
강영안 ‘실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m’ 또는 ‘실천적 무신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입으로는 인정하고 종교행위에 참여하면서도 생각과 삶으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무신론이지요. 이런 무신론이 두려워해야 할 무신론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실제적 무신론이 우리한테 있다는 것을 모르거든요.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사실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고백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실천과 사고방식과 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삶을 살지 않나 해요.
--- p. 214~215, ‘의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