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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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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2월 1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442g | 128*188*30mm
ISBN13 9788954619790
ISBN10 8954619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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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야말로 이 사건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 p.49

결국 우리 모두는 평생 사랑에 빠지길 기다리면서 사는 게 아닐까. 하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그 표현은 좀 우스꽝스럽지 않니? 사랑에 빠진다니! 마치 구멍이나 함정 같은 거, 좀 심하게 말하면 감옥 같은 구렁텅이로 빠지는 거 같잖아. --- p.74

남자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어째서 이 남자는 이토록 자신만만한데 나는 그렇지 못할까? 분한 마음이 든 로베나는 남자에게 당신의 그 자신만만함은 어디에서 오는 거냐고, 나를 완전히 손아귀에 넣었다고 믿는 데서 오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로베나는 자신에게 그럴 배짱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로베나는 늘 불안해했고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 p.104

둘 사이 사랑의 시간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오해나 비극은 대부분 이 같은 종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은 얼마든지 구별할 수 있지만, 사랑의 시간에 직면해서는 장님이나 다름없다. 보이지 않으니 때를 놓치는 것이다. --- p.135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 위해 지옥에 내려간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해. 가령, 죽은 건 에우리디케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식의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되찾아오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어딘가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너무 서두른 나머지 결국 사랑을 잃고 말지. --- p.136

베스포르 스스로도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명쾌한 첫번째 로베나인지, 석고 가면을 쓰고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두번째 로베나인지. 로베나가 그와 다시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예전처럼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는 그녀를 되찾은 기쁨과 함께 로베나가 쓰고 있던 석고 가면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하면 저세상에서 온 듯한 감각, 미지의 세계, 무한한 세계의 발로인 듯한 그 느낌을 로베나에게서 되살릴 수 있을까? 이따금은 모든 것이 지극히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그 역시 시들어가는 욕망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이 땅의 수백만 남자들이 겪는 고뇌를 겪고 있을 뿐이었다. --- pp.160-161

인간의 두뇌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벽에 틈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문득 명백해지는 듯했다. 결국 인간의 뇌도 우주의 다른 부분과 똑같은 물질로 만들어졌다. 모든 것을 자신의 영역 속에 가두는 압도적인 물질. 온 우주가 이 하나의 물질로 만들어졌다면,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모든 일탈이 결국 성생활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이유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긴 곳, 아주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 이질적인 지대, 가령 블랙홀 같은 곳이 존재하지 않는 한. --- p.163

들판엔 눈이 희끗희끗 덮여 있었다. 덕분에 어느 나라를 지나고 있는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거듭 생각했다. 유럽연합은 위대한 지도자들에 의해 구상되기 전에 이미 흰 눈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기차 소리가 단조로워졌다. 로베나와 벌인 게임, 역사 이래 수십억 번이나 반복되었을 평범한 그 게임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었다. --- p.192

어쩌면 이 세상을 불신하고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오래전부터 다른 세상, 다른 현실을 추구해왔던 건 아닐까? 그리하여,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광기를 로베나에게 전염시킨 것일지도. --- p.289

베스포르는 언젠가, 복잡한 사람들이 늘 그렇듯, 자기 역시 하늘 아래 혼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찾게 된 것도 이런 감정과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예전의 사랑, 혈연적이고 태곳적부터 전해내려온 사랑에서처럼 부정不貞개념이 배제되는 사랑. 동시에 이별도 배제되는 사랑. 누구나 다 알듯이 독재자란 어느 것 하나도 잃지 않으려는 자이다. --- p.301

우리가 안다고 믿는 진실 외에도 여러 가지 진실이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알지 못합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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