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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우아한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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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1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504쪽 | 678g | 150*210*35mm
ISBN13 9788956606675
ISBN10 8956606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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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재즈 그리고 내가 사랑한 또 한 명의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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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은행에서 일하는 건 어떠세요?”
그가 디저트를 공격하는 동안 내가 물었다. 그는 우선 자기가 하는 일을 은행 업무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은 중개인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은행은 철강공장에서부터 은광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을 주무르는 개인 기업의 주식을 대량 보유한 부유한 가문들을 위해 일했다. 고객들이 자산의 유동성을 원할 때, 적절한 구매자를 신중하게 찾아주는 것이 팅커의 역할이었다.
“뭐, 내가 보기에는 당신 직업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맞아요.” 팅커가 인정했다. “나쁘진 않죠. 다만…….”
팅커는 창밖의 브로드웨이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마크 트웨인이 어떤 노인에 대해 쓴 글이 기억나요. 바지선을 조종하는 노인이었는데……. 강 한 편에서 다른 편 선착장으로 사람들을 나르는 배 말이에요.”
“《미시시피 강의 생활》 말인가요?”
“모르겠어요. 그건지도 모르죠. 어쨌든…… 트웨인은 그 노인이 30년 동안 강을 하도 자주 오가서 그 거리를 합하면 강을 상류에서 하류까지 스무 번 넘게 다닌 셈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사는 마을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채로 말이에요.”
팅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끔 내 기분이 바로 그래요. 내 고객 중 절반은 알래스카를 향하고, 나머지 절반은 에버글레이즈를 향하고 있는데…… 나는 강둑에서 강둑을 오가고 있는 기분.”
“리필해드릴까요?” 웨이트리스가 커피포트를 손에 들고 물었다.
팅커가 나를 바라보았다.
퀴긴&헤일의 여직원들에게 점심시간은 45분이었고, 나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몇 분 전에 내 타자기 앞에 앉곤 했다. 지금 바로 자리를 뜬다면, 평소 습관대로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팅커에게 점심을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내소 거리를 뛰어 올라가 16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개 시간을 지키는 여직원에게 너그럽게 허용될 수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5분? 10분? 하이힐 굽이 부러졌다는 핑계라도 댄다면 15분?
“좋아요.” 내가 말했다.
웨이트리스는 우리 잔에 커피를 채워주었고, 우리는 둘 다 의자에 등을 기댔다. 칸막이 좌석이 좁아서 우리 무릎이 서로 부딪혔다. 팅커는 자기 잔에 크림을 부은 뒤 계속 둥글게, 둥글게 저었다. 잠시 우리 둘 다 말이 없었다.
“교회예요.” 내가 말했다.
팅커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뭐가요?”
“내가 혼자 있고 싶을 때 가는 곳이요.” --- pp.66-68

“그럼 이제 문제는…… 그런 모든 일들이 있었는데도…… 넌 아직 그 친구한테 빠져 있어?”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서 조금 사랑의 불꽃이 튄 후 태어났을 때부터 알던 사이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 느낌에 과연 조금이라도 알맹이가 있는 걸까? 처음 만나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뒤,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유대가 워낙 특별해서 시간과 관습의 한계를 초월한다고 정말로 확신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누군가는 그 뒤로 이어질 나의 시간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능력 못지않게 온통 뒤엎어버릴 능력 또한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함께 했던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디키는 초자연적으로 보일 만큼 초연한 태도로 물었다. 넌 아직 그 친구한테 빠져 있어?
‘말하지 마, 케이티. 제발 부탁이니까, 인정하지 마. 얼른 일어나서 이 무모한 장난꾸러기한테 키스해. 디키가 다시는 이 말을 꺼내지 않게 확신을 심어줘.’
“응.” 내가 말했다.
응. 이 말은 원래 축복이어야 한다. 줄리엣도 로미오에게 “네”라고 말했고, 엘로이즈도 “네”라고 말했고, 몰리 블룸(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의 등장인물 ? 옮긴이)도 “네, 네, 네”라고 말했다. 긍정의 언명, 달콤한 허락. 하지만 지금의 맥락에서 이 말은 독이었다.
디키의 안에서 뭔가가 죽어가는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은 자신감 있고, 아무 의문도 품지 않고,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사람이라는, 나에 대한 디키의 인상이었다.
“뭐, 그럼.” 디키가 말했다.
내 머리 위에서 검은 날개의 천사들이 사막의 새들처럼 빙빙 돌았다.
내가 상당히 비참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디키가 내 무릎을 토닥거렸다.
“우리가 자신과 완벽히 맞는 사람하고만 사랑에 빠진다면, 애당초 사랑을 둘러싸고 그런 소동이 벌어지지도 않을 거야.” 그가 말했다. --- pp.446-468

나는 거실을 지나 테라스로 나갔다. 공기는 서늘했고, 도시의 불빛들이 은은히 빛났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주위를 돌던 작은 비행기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지만, 그 건물은 여전히 희망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희망했다. 나는 희망하고 있다. 나는 희망할 것이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인 뒤 행운을 빌며 어깨너머로 성냥을 던졌다. ‘뉴욕은 정말 사람을 확 바꿔놓지 않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생을 우리가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두서없는 여행으로 비유하는 것이 조금 진부하기는 하다. 현자들의 말에 따르면, 바퀴의 방향을 아주 조금만 틀어도 그 이후의 사건들에 연쇄적으로 그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운명이 새로운 사람, 정황, 발견 들로 다시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인생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한 줌밖에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기회가 몇 번 주어질 뿐이다. 이 직장이 좋을까, 저 직장이 좋을까? 시카고가 좋을까 뉴욕이 좋을까? 이 친구들을 사귈까, 저 친구들을 사귈까? 오늘 밤에 누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까? 지금 아이를 낳을까? 아니면 나중에? 더욱 더 나중에?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여행보다는 허니문 브리지와 더 가깝다. 20대 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수많은 꿈을 좇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도 시간이 충분할 것처럼 보인다. 게임을 하면서 카드를 하나 뽑으면 그 카드를 그냥 갖고 다음 카드를 버릴 건지, 아니면 먼저 뽑은 카드를 버리고 그다음 카드를 가질 건지 곧바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탁자 위에는 우리가 뽑을 수 있는 카드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방금 내린 결정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 pp.484-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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