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면역 반응이나 어떤 세균을 죽이는 의약품이 개발되면, 병원체는 그런 공격에 저항력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병원체와 생물 사이에 벌어지는 이러한 진화 전쟁이 수억 년 전부터 계속 이어져오면서 양측의 게놈이 점점 더 발전했다.
세균이 증식할 때 무작위로 일어나는 돌연변이 때문에 그중 일부는 특정 항생제에 저항력을 지닌다. 일단 일부 병원체가 그런 저항력을 지니면, 그것은 무리 사이에서 금방 퍼져나가 결국 그 의약품은 효과가 사라진다. 항생제 남용은 저항력을 가진 병원체의 수를 크게 늘림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조만간 어떤 항생제도 효과가 없는 슈퍼박테리아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질병으로 전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계획하는 테러리스트는 야생에서 이전에 발견된 적이 없는, 그래서 자연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슈퍼박테리아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병원체가 모든 의약품에 저항력이 있는지, 즉 어떤 의약품으로도 그 질병을 막을 수 없는지 확인한 뒤에 그 병원체를 담은 병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이제 질병이 스스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p. 32
외계인이 보내온 신호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지만, 우주생물학자들은 외계인이 어떤 속성을 지녔을지 추측했다. 설사 다양한 촉수와 꼬리와 여분의 머리가 달렸다 하더라도, 〈스타워즈〉에 나오는 휴머노이드 외계인을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태양계 밖에 존재하는 외계 행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구와 조건이 비슷해야 우리와 같은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이유로 ‘지구형’ 행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다. 그런데 외계 생명체가 꼭 우리와 비슷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사람은 산소와 물이 풍부한 행성에서 진화했는데, 지구에서는 탄소를 기반으로 한 DNA 분자가 생명을 복제하는 기구가 되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우리는 적절한 온도와 물과 영양분을 갖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외계인도 반드시 그러란 법은 없다. …… 지구에서는 생물이 물 속과 땅 위에서 살아가지만, 거대 기체 행성에 사는 생물은(만약 존재한다면) 대기권 높은 곳에 살면서 공기 중에서 영양분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다양성을 감안하면, 외계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을지 근거 있는 추측을 하는 게 가능하다. 워릭 대학 수학연구소의 이언 스튜어트는 먼저 모든 생명체에 보편적인 생물학적 특징과 지구에 국한된 생명체의 특징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pp. 119~120
유전자를 조작하려고 한다면, 인간 게놈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작업이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자녀를 단거리 육상 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하자. 그렇다면 거기에 필요한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자, 예컨대 ACTN3 변이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 이 유전자는 폭발적인 스퍼트를 할 때 필요한 빠른 연축 근육에서만 발견되는 단백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류 단거리 육상 선수들을 조사한 결과, 그중 95%가 이 폭발적인 스퍼트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그것을 선택하는 방법만 안다면, 자녀가 훌륭한 단거리 육상 선수가 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조작 방법을 사용한 운동선수를 주위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운동 능력과 같이 복잡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적절한 ACTN3 유전자 버전을 선택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단일 유전자에 좌우되는 낭성섬유증과 달리 운동 능력은 우리 몸이 지방을 저장하는 방식에서부터 산소를 사용하는 효율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제어하는 수많은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다. 훌륭한 운동선수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는 수천 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백 개는 될 것이다. 그마저도 아직 어떤 것들인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게다가 좋은 훈련을 받는 기회와 땀을 흘린 시간도 중요하다. 따라서 정확한 ACTN3 유전자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자녀가 올림픽 선수가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 많은 유전자는 사람에게 한 가지 효과만 내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효과를 나타낸다. 지능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면서 근육에 문제를 일으키는 유전자는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는 천재를 낳을 수 있다. ---pp. 275~276
SF 소설에서는 개성을 지닌 로봇들이 등장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마빈은 편집증에 걸린 로봇이고,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C-3PO는 성급한 로봇이며,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HAL 9000은 살인을 자행하는 로봇이다. 그러나 현실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오늘날의 로봇은 인간 조종자와 관계를 맺을 능력이 전혀 없는 벙어리 자동 기계이다. 지시를 따르기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은 없다.
몇 년 전에 알렉산데르는 인공 시각에 대한 연구를 어린이들에게 설명했다. 그런데 설명을 마치자, 여섯 살짜리 꼬마 아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에요. 그건 나도 하고, 내 동생도 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아주 쉽게 하는 일, 그러니까 얼굴을 인식하거나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일이 기계에서는 재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일로 드러났다.
인공 의식을 만들려면 일종의 ‘뇌’가 필요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모방이다. 뇌를 만들려는 최초의 시도들에서는 전기 회로를 납땜으로 이어 붙여 신경 세포 네트워크를 모방하려고 했다. 현대의 신경망은 훨씬 정교하며, 자신이 많이 하는 일들을 바탕으로 행동을 ‘학습’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작동한다. 만약 이렇게 점점 정교하게 발전하다 보면, 마침내 의식의 조건을 충족시킬 때가 오지 않을까? 알렉산데르는 이러한 생각을 범주 오류라고 말한다.
“그것은 말이 개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같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같지 않다. 의식 문제에서 사람들은 의식을 가진 대상을 만들었을 때 그것이 의식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중요한 질문을 종종 망각한다.”
예를 들어 의식이 있는 로봇이라면, 사람이 자신이 생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처럼 자신이 실리콘 회로가 설치된 금속 덩어리란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한 인공 기계가 자신이 사람처럼 의식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오작동하는 것이라고 알렉산데르는 말한다.
SF 작품에는 지능 로봇과 컴퓨터가 잘못되어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더 심각한 일을 저지르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알렉산데르는 이런 일은 윤리적 딜레마라기보다는 공학 문제라고 말한다.
“의식을 가진 기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여러분의 차를 안전하게 몰 것이다. 그 일을 제대로 했을 때에는 만족을 느낄 것이고, 사고를 일으키면 걱정할 것이다. 만약 기계가 갑자기 승객을 죽이거나 벽으로 돌진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것은 오작동이다. 사람도 그런 방식으로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의 경우에는 그런 일을 다루기 위해 법이 있고, 기계의 경우에는 공학적 절차가 있다.”
---pp. 31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