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유머 정신이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표현이라는 사실은, 최초의 소설 『페터 카멘친트』에서부터 분명하게 태동된다. 독일 소설의 전통적인 양식인 교양소설, 혹은 성장소설의 테두리를 훌륭하게 계승하고 있는 이 소설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숭배하며, 또 거기서 힘을 얻는 카멘친트가 어떻게 통합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커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우선 가정과 부모라는 사회적인 둥지를 떠나, 보다 총체적인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한 험한 길을 나선다. 친구의 죽음,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서 그는 고뇌와 절망을 맛보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면서 통합적·총체적인 인간상에 가까이 다가간다. 물론 그는 자살의 유혹을 받는 흔들림을 겪기도 하지만 이러한 체험의 넓이와 깊이가 그를 키우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회상하며,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시시 여행에서 알게 된 중세의 기독교 성자 성 프란체스코에 대한 감동을 통해 진한 인간애를 맛보면서 그는 삶의 경건성을 회복하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게 된다. 지식이 많고, 부유하며, 총명한 자의 삶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고통받는, 때로는 지극히 못나 보이는 자의 삶 역시 귀중하다는 인식에 카멘친트는 도달한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앙생활에서 떠났지만, 여기에는 보다 살아 있는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죽어가는 목공의 딸을 간호하는 모습이나, 불구자 보피와의 다정한 교통의 장면 등은 총체적 인간상을 향한 카멘친트의 성숙을 실현하는 아름다운 대목이다. 그 성숙은 모든 종류의 삶,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까지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페터,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죽는 일만큼 어렵지는 않아.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그걸 지나가지 않을 수는 없지”라는 카멘친트의 지도자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헤세의 모든 작품 세계는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작품 해설」
처음에 신화가 있었다. 위대한 신은, 인도인이나 그리스인, 게르만인의 영혼 안에 신화를 창조하고 뜻을 표현하려고 애썼듯이, 모든 어린아이의 영혼에도 매일 또다시 신화를 창조한다.
내 고향의 호수와 산과 시내의 이름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작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푸르고 잔잔한 호수, 풍성한 꽃에 둘러싸여 햇빛 속에 누워 있는 가파른 산, 그 높은 봉우리 사이로 빛나는 눈 덮인 골짜기, 과일나무와 오두막과 회색빛 알프스 젖소들이 있는 산발치의 경사진 밝은 목장을 보아왔다. 내 여리고 작은 영혼은 깨끗하고 고요했으며 기다림 속에 있었으므로, 호수와 산의 정령들은 그들의 아름답고 대담한 행적을 내 영혼 속에 새길 수 있었다. 가파른 절벽과 암벽들은, 그들의 아버지였던 시절,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 시절에 대해 자랑스럽고 경건하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갈라지고 뒤틀리고, 몸부림치던 땅덩이로부터 산봉우리와 산등성이가 솟아나던 때를 이야기하였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울부짖으며 으르렁거리며 솟아올라서 무턱대고 봉우리를 이루며 무너져 꺾였다. 쌍둥이 산들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치열한 싸움은, 한 봉우리가 형제 봉우리를 옆으로 밀어 던지고 부숴버릴 때까지 계속됐다. 높은 곳의 골짜기에는 당시 그곳에서 꺾여져 내린 봉우리며 밀려나고 부서진 바위들이 아직 매달려 있어서, 해마다 눈이 녹을 때면 급류가 집채만 한 바위들을 굴려 내려 마치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내거나, 부드러운 풀밭 속으로 사정없이 쏟아부었다.
이 암벽 산들은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 산들의 가파른 절벽과 꺾이고, 휘어지고, 부서지고, 긁힌 상처투성이의 협곡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불굴의 투사와도 같이, 자랑스럽고 당당하고 준엄하게 말했다.
그렇다, 투사. 나는 이른 봄의 무시무시한 밤, 잔인한 푄 바람이 그들의 늙은 피부를 할퀴고 지나갈 때, 불어난 계곡물이 그들 옆구리의 싱싱한 새 살을 찢어낼 때, 그들이 급류와 폭풍을 맞아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런 밤이면 그들은 어두운 얼굴로 숨죽이고 찌푸린 채, 폭풍 속의 그 작렬하는 번개와 비바람에 맞서, 완강하게 버티고 선 뿌리로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고개를 숙이고는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상처 입을 때마다 분노와 고통으로 무시무시한 소리를 질러, 먼 곳까지 퍼져가는 격류에 싣고 그들의 끔찍한 신음 소리를 울리게 만들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