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12월 19일 |
---|---|
쪽수, 무게, 크기 | 188쪽 | 288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60044 |
ISBN10 | 8954660045 |
발행일 | 2019년 12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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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8쪽 | 288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60044 |
ISBN10 | 8954660045 |
트랙 …… 13 얼굴 …… 28 공사 …… 47 좌표 …… 63 첼로 …… 83 동선 …… 97 루프 …… 131 심사평 …… 167 수상작가 인터뷰 | 강화길(소설가) …… 176 수상 소감 …… 186 |
1956년 ‘엣스허르 데이크스트라’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당시 26살이었던 그는 약혼자와 쇼핑을 마친 후 지친 상태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문제에 대해 숙고했고, 그가 답을 찾는데 걸린 시간은 20분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최적경로를 찾는 ‘데이크스트라 알고리즘’은 이렇게탄생했다. 데이크스트라는 이론물리학, 전산학, 정보학 분야에 많은 연구를 남겼지만 대중들은 그가 남긴 그 어떤 심오한연구들 보다 젊은 시절 그가 잠시 생각해 얻은 최적경로 알고리즘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까지도 네비게이션 시스템이나 구글 지도에 그의 알고리즘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GPS 위성으로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수는 있어도 26세 청년의 그 20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어떤 경로를 선택해야할지 매번고민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최단경로를 추적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그것은 시작점과 도착점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차점 마다 거리 값을 부여하고, 가장 짧은 거리의 경로만을 남겨둠으로서 최단거리를 계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동일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네비게이션들이 다른 경로를 제시하는 이유는 저마다 고유한 알고리즘으로 변경하여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유한 알고리즘에는 실시간 교통정보나 유료도로 사용여부, 교통신호나 과속 단속구간 등이 포함된다. ‘최단경로’의 문제에 직면한 프로그램과 어플리케이션들은 이 같은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그것들의 영향도와 가중치를 부여하면서 저마다의 ‘최적경로’를 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요. 이건 배우지 않아도 아는 거죠. 아이가 엄마한테 뛰어가는 걸 보면 저렇잖아요. 중간에 차도가 있건, 횡단보도가멀리 있건, 신호등이 빨간불이건, 그런 건 다 무시하고 그냥 엄마한테 직진하는거죠. 기계들도 마찬가지예요.” (P. 31)
강희영의 <최단경로>을 읽으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최단경로’에 대해 생각했다. <최단경로>는 소설 자체의 서사 이면에 존재하는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 그렇게 이야기들을 만나며 마치 혜서가 맡고 있는 새벽의 라디오 프로그램 애청자들의 사연을 듣는 것 같았다. 혜서의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하는 사람들은 주로 응급실 당직을 서는 간호사나 물류창고를 나서는 화물 기사, 도심을 파고드는 환경미화원들이었다. 그들의 노동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듯 그렇게 그들은 낮을 사는 사람들이 잠든 시간 속을 헤맸고, 나도 진혁이 남긴 궤적을찾아나서는 ‘혜서’의 뒤를 쫓으며, 또, 그러한 ‘혜서’를 바라보는 ‘민주’에 주목하면서 조용히 소설이 던지는 물음에 몰입할 수 있었다.
라디오 피디인 ‘혜서’는 전임 피디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발견하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왜 쉬운 일을 이렇게 어렵게 풀려고 하는 건지, 왜 생각을 단순하게 하지 못하는 건지 고민한다. 그렇게 떠난 여정에서 ‘혜서‘는 우여곡절 끝에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잃은 ‘애영’을 만나고, 서로에게 또, 상대방의 삶에가닿기 위한 ‘최단경로’에 대해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그의 행적과 삶의 궤적을 따라서 걸어보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삶의 단면들과 불편한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이는 상대방을 이해해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실한 삶에 눈을 뜨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해’란 타인과의 온도를 맞춰가는과정이며 이는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착각과 오해로 지도에는 존재했었지만 실존하지 않는 사라진 섬 ‘샌디섬’과 실존하지만 지도에 반영되지 못한‘지도에 누락된 길’이 등장한다. 이는 상실과 결핍이 누적된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이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 시키기 때문이다. ‘최단경로'가 항상 '최적'일 수 없는 이유는 삶의 ‘상실’과 ‘결핍’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삶 자체에 내재된 모순과 부조리 때문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 중에서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삶 그 자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기 보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적절히 응답하면서 대처해나가는 것에 더 가깝지않을까? 이러한 개별적인 삶들이 모여 이루는 세상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는 걸 가르쳐주는 일. 이걸 잘 할 수 있을까?” (p. 32)
데이크스트라는 ‘최단경로 알고리즘’을 발명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는 인터뷰에서 “가장 단순한 방법을 생각해야만 하는상황이 되면 그렇게 되더라.”라는 간략한 소감을 밝혔다. 종이와 펜이 없는 카페에 있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모든 복잡한조건과 수식을 배제시키고, 놀랄만큼 간결한 형태의 ‘최단경로 알고리즘’을 산출해낸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다미안이낸 숙제를 ‘혜서’의 조언대로 완성한 ‘애영’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애영이의 과제에 대해 다미안은 평가와는 별도로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주었다.
“애영씨 코드대로 경로를 설정하면 낯선 길이라도 좀 마음 편하게 즐기면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순하잖아요. 가까운운하를 찾아서 물길을 쭉 따라간다. 재미있었어요.” (p. 154)
‘애영’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최단경로 알고리즘’은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는 것이라기 보다는 가능한한 ‘효율적’인 ‘우회로’를 찾는 공식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의 방점은 ‘효율’ 보다 ‘우회로’에 찍혀야 한다. 어쩌면 한 인간이다른 인간에게 가 닿기 위한 것도 이러한 형태에 가깝지 않을까? 상대의 마음에 가닿기 위한 ‘최단경로’는 상대의 삶을이해하려는 노력의 기반 위에서 간결하게 진심을 다해 건네는 한 마디 말에서 비롯될 수 있다. 마치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서로를 한참 마주본 후 ‘혜서’가 ‘애영’에게 던지는 한 마디 말처럼 말이다. 어차피 서로를 향하는 최단경로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효율’이라는 잣대는 그 두사람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늘 같아도 늘 새로울 수 있는것은 매번 같은 곳을 다른 경로로 가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진심의 무게를 느끼고 나서야 가능한 것일테니까 말이다.
둘은 그렇게 한참 서로를 마주보았다. “어디 가지 말아요.” (p. 159)
그곳과 이곳의 시차
버스는 삼십 분에 한 대씩 있다.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달린다. 멀어지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꿈까지 꿀 정도이다. 달려갔지만 나만 두고 떠나는 꿈. 휴대전화에 깔아둔 시내버스 앱을 켜면 버스가 어디에 있는지 뜬다. 그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달린다. 매번 버스는 잠시 후에 도착할 예정이다. 버스를 타고 가지 않는 방법도 있다. 택시를 타거나 걷거나. 전자는 돈이 많이 들고 후자는 힘이 많이 든다. 매일 매 순간 일하러 가기까지의 최단 경로란 버스를 타는 방법 밖에는 없다.
딱 한 번 걸어가 본 적이 있다. 사십 분이 걸렸고 문을 열기도 전에 지쳐 버렸다. 힘이 나지 않으니 힘을 낼 수 없었다. 버스가 최선이다. 이 삶에서는. 강희영의 소설 『최단경로』의 주인공 애영은 다미안이 강의하는 첫 수업을 인상적으로 기억해낸다. 다미안은 점과 점을 찍으며 묻는다. '이 점에서 저 점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직선을 그으면 된다. 기계는 그렇게 말하고 실제 점과 점 사이에 직선을 긋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 말은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최단경로』는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직선을 그어가는 소설이다.
너에게로 가기 위한 최단 경로
혜서는 전임 피디 진혁의 노트북에 있는 업무 파일을 읽다가 이상한 느낌에 휩싸인다. 진혁은 메일 계정을 로그아웃하지 않은 상태로 노트북을 넘긴 것이다. 메일함을 열기 전 혜서는 그가 녹음한 방송 파일에서 특정 트랙을 발견했다. 우연히 드러난 소리였다. 몰래 숨겨두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그 소리를 듣게 되면서 혜서의 삶은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최단경로』는 혜서가 진혁이 남겨둔 미스터리한 소리와 맵에서 드러나는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공부를 더 하겠다는 이유로 인기 방송 피디를 그만두고 떠난 진혁이었다. 후임 피디 혜서는 그의 방송을 그대로 이어서 하기만 하면 출세가 보장되었다. 그 소리를 듣기 전까지 말이다. 소설의 시간은 이어질 듯하면서 어긋나다가 마지막에는 하나의 시간으로 맞춰진다. 엇나간 시간을 맞추기 위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불완전한 삶의 진실과 마주한다. 혜서는 진혁의 계정에서 검색되는 거리와 장소를 토대로 그를 만나러 떠난다. 호주로 가겠다는 그는 네덜란드에서 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도 부지런하게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최단경로』는 단순한 서사임에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혜서는 아무런 감정적 교류도 나누지 않은 진혁을 만나러 네덜란드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른 그녀와 만나 연대를 시작한다. 다른 그녀, 애영은 교통사고로 친엄마와 딸을 잃었다. 운전자는 맵에서 횡단보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그대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오류였다. 횡단보도가 있음에도 기계는 지도에서 길을 길로써 인식하지 못했다. 오류는 나중에야 바로잡아졌지만 애영이 사랑한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실제 없던 장소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지도에 들어가기도 한다. 정확한 좌표를 찍어서 가보면 없는데도 말이다. 있어야 할 장소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일도 있다. 기계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오류 때문에 마땅히 있어야 할 점이 없어서 경로를 이탈한 죽음이 밀어 닥친다. 애영은 딸과 엄마에게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프로그램 언어를 배운다. 건물, 강, 호수, 바다, 횡단보도를 끼고서도 가장 빨리 가기 위한 길을 찾는 공부를 한다. 매일 길을 떠나는 자들이 찾아야 할 최단 경로를 익힌다.
같은 기기에 동기화한 계정으로 혜서는 진혁이 아닌 애영과 만난다. 점이 표시해준 위치에 진혁이 아닌 애영이 있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과거의 시간을 접한 혜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경로를 이탈한 채 그대로 떠난다. 『최단경로』는 죽음 이후에 남겨진 자들이 취하는 애도의 태도를 그린다. 애영은 기계 언어를 공부하면서 안락사를 기다린다. 진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인 라디오 방송에 소리를 숨겨두고 사라진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소설은 죽음 이후의 삶은 삶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어디 가지 말아요라고 했지만 어디에도 없는 존재
가장 빠른 길을 찾아 돈을 벌러 가지만 그 길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혜서는 경쟁과 모욕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으로 느껴진다. 맵이 보여주는 점의 행방을 찾고 숨겨진 소리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혜서는 깨닫는다.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라고 여겼지만 하나의 점에 불과한 채 떠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언가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한낱 점으로 부유할 수 있음을 말이다. 우주에서 보면 얼마나 시답잖을까. 저 조그만 별에서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꼴이라니. 빠르게 움직이며 무수한 점을 남겨 놓지만 죽으면 점 하나도 남겨 놓지 못하고 소멸할 거면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기묘한 연대를 시작한다. 『최단경로』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그들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애영, 마이레, 혜서로 연결되는 여성들의 공동체에는 삶을 시기하지 않는 민주 또한 포함될 것이라고. 존재하지 않은 샌더스 섬에서 진혁의 좌표는 사라진다. 그가 사랑해야 했던 마지막 목소리만을 세상에 남겨 놓은 채로. 『최단경로』는 묻는다. 당신은 존재하는가. 죽음은 이토록 선명하고 흔적은 오류투성이로 존재한다. 삶은 오류로써 기억될 뿐임을 『최단경로』는 말한다.
『최단경로』는 사건과 사건을 이어주는 긴밀성을 독자 스스로 찾게 만든다. 상상력 또한 발휘해야 한다. 누군가는 듣겠지만 누군가는 들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쏘아 올리는 미약한 신호 같은 소설. 죽음에의 최단 경로를 찾아가는 이들에게 경로를 무시한 채 꼭 한 번 만나자고 말하는 소설. 죽음은 망해가는 지구에서 이미 망해 버린 우주로 건너오는 단순 노동일뿐 무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는 묵묵한 위로를 『최단경로』는 숨겨 두었다. 내일도 눈을 뜨고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겠지만 점과 점, 그러니까 그 일은 삶에서 죽음으로 직선을 긋는 일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기술이 알려주는 최단경로를 맹신하나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지도를 고이 접어 손에 들고 다녔다. 너무 자주 접었다 폈다 해서 접힌 부분이 하얗게 변해버렸던 지도는 이제 종적을 감추었다. 대신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도앱(Map App)을 실행해서 가고자 하는 장소를 입력만 하면 자동으로 최단경로를 알려준다. 이용자(User)는 앱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초행길이라면 특히 더 고민할 필요 없이 앱이 알려준 경로를 그대로 좇으면 그만이다.
편해진 점이 있다면 반대로 사라지는 것 또한 존재한다. 지도앱이 설정한 알고리즘을 따르는 최단경로가 진정 가장 빠른 길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던가. 익숙하고 길들여지면 뇌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뇌는 편할수록 멈추고 불편할수록 움직이니까. 편함을 추구하면 불편함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창의성과 새로운 감각은 사라진다. 감정 또한 특별해지지 않고 무뎌진다. 그럴수록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Singularity,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가까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편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제는 사물뿐만 아니라 감정의 영역에서도 편함을 추구하려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빨리 잊으려는 회복탄력성, 헤어짐을 쉽게 잊으려는 새로운 만남 등 감정적 영역에서 추구하는 편함은 과연 옳은 일일까?
강희영의 <최단경로>는 최단거리의 이면을 다룬다. 알고리즘으로 설정한 최단거리가 알려주지 않는 감정과 진실, 그 이면의 중심에 서 있는 혜서와 애영, 그리고 진혁. 믿음에서 출발한 최단거리는 의심과 의문을 거쳐 재설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그 여정은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인물 간의 갈등구조로 인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마치 '사람'바둑기사 '이세돌'과 'AI'바둑기사 '알파고'의 대국을 지켜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무엇에 관해서도 충분한 데이터를 얻은 적이 없다. (중략) 그리하여 부패의 과정을 기록하고 그 정도를 검사하고 분석할 수는 있겠으나, 정작 그 냄새를 맡고 그 맛을 보지는 못하는 것이다. 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데이터는 여전히 내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용자가 경험한 것에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162쪽)
최단경로보다는 최애(最愛)경로를 선택하자.
영국의 한 여행사에서 이벤트를 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영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경로를 제출하는 게 문제였고 당첨자에게는 상금과 항공권을 수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자동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한 최단경로를 제출했다. 1등으로 뽑힌 사람의 답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차라리 감정적이었다. "가장 빠른 경로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최단경로가 만능은 아니다. 즐기면서 가는 길이 외려 시간을 절약하는 길일 때가 많다. 이 책은 최단경로를 가장한 최애경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크스트라, 노드, 조건문과 고투문 같은 전문용어의 등장이 읽는 데 방해가 되기보다는 호기심을 증폭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책을 통해 여행하는 길은 때로는 슬픔으로,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추로 다가올 것이다. 다만 당신이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알고리즘은 당신을 최단경로로 이끌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