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랩에는 놀랄 만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몇 가지만 얘기하면 건축가, 컴퓨터 과학자, 전기공학자, 음악가, 뇌과학자, 물리학자, 시각예술가 등)이 모여 있고, 그들은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리면서 오직 자신의 열정에 따라 창조하고 발명한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영감이 생겨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생각만 하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만들어 낸다. 그 모든 것은 학생들이 세계 최대 규모의 회사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왁자지껄한 세미나를 통해서 완전히 공개된다. 연구자들에게 주어진 가이드라인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그들의 발명이 미래에 사람들의 삶을 확실히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연구가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방적이고 뭐든지 가능한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그것은 다시 수정을 거쳐 변이를 일으킨다. 바로 그런 환경 자체가 좋은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이 같은 창조적인 혼돈 속에서 실용적인 것에서부터 괴짜 같은 것까지 1년에 수백 가지의 발명품이 생산된다. 그중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이 살아남아 산업계를 뒤흔드는 전혀 새로운 상품으로 출시되거나 심지어 사회 전체를 바꾸어 놓는 혁신적인 것으로 성장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pp.8∼9
‘미디어랩 연구실에 있으려면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창의성과 발명의 도가니인 미디어랩에서는 분야 혹은 학과간의 경계가 없고 누구도 자신의 전공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 즉 미디어랩의 다학제적 면모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는 컴퓨터 과학자가 디자인과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음악가가 뇌과학을 연구하며, 예술가가 전기공학과 로봇 조립에 능통해지고, 몽상가와 사상가가 실천가와 발명가가 된다. 미디어랩의 다학제적 접근은 그에 속한 25개의 연구팀이 다루는 다양하고 폭넓은 영역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그 연구팀들의 명칭을 보면 그 각각이 다방면에 걸쳐 있으면서도 완전히 독창적인 연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에 몇 개만 들자면 개인용 로봇, 미래 오페라, 평생 유치원, 뉴미디어 의학, 감성 컴퓨팅 , 구술 커뮤니케이션, 인지 기계, 언어+ 유동성, 정보 생태학, 체감형 미디어 등이 있다. ---pp.27∼28
내가 ‘마법사와 제자들’이라고 부르는, 이곳 교수진과 학생들은 어디에서나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낼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미디어랩이라는 환경에 있으면 그들의 열정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창조적 자유를 누리면서, 다른 곳에서라면 꿈도 못 꿨을 대담한 모험을 시도하며 자신의 비전을 추구할 수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전통적인 학문의 경계를 두려움 없이 넘나들면서 놀랍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낡은 문제를 재구성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사람들이 그 발명품들을 실제로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실패가 경험을 통한 배움으로, 새로운 값진 아이디어와 시각을 얻기 위한 디딤돌로 해석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MIT 미디어랩이 사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발명과 혁신을 지향하는 독창적이고도 매우 비정통적인 접근법을 발전시켜 온 덕분이다. ---p.28
모든 모험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동안 미디어랩은 그 어떤 것도 실패로 간주하지 않는다. 모형이 상상했던 것만큼 작동하지 않아도 그것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경험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창조적 자유는 오늘날의 제도권 연구 세계에서는 희귀한 것으로, 오직 미디어랩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딱 한 가지 이유다. 후원 기업들이 미디어랩을 자신들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미디어랩에서 다음 사반세기의 상품이 될 지적재산들을 성급하게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훨씬 중요한 뭔가를 쫓고 있다. 바로 ‘상상의 아이디어와 발명의 소방 호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을 들이켜는’ 기회를 기다린다. 아이디어와 발명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기업들의 핵심 사업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 가운데 일부는 결국 사람과 산업, 사회에 진정으로 막대한 영향을 주는 혁신을 일으킨다. 그것은 곧 수천 가지 모험적 프로젝트의 본원인 미디어랩이 역설적이게도 전혀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25년 동안 기술적 세대교체와 세 차례의 경제 위기를 겪고도 미디어랩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pp.53∼54
오늘날에는 컴퓨터, 스마트폰, GPS 장치, 내장된 마이크로프로세서, 센서 등 모바일 인터넷과 연결되는 모든 것이 ‘사회적 신경망’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막대한 데이터를 생산한다. 우리는 검색을 하고 트위터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어딘가에 댓글을 달고 휴대폰을 사용하고 온라인에서 쇼핑을 하고 소셜 네트워크의 프로필을 업데이트하고 신용카드를 쓰고 심지어 체육관에 들어설 때도 디지털 발자취를 남긴다. 이는 우리의 생활 방식, 경제 활동, 건강 습관, 사회적 상호작용 등에 대한 귀중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 데이터를 모으면 우리 삶의 모자이크가 점점 완성된다. 그를 통해 개인이나 집단행동에 대한 아주 흥미롭고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펜틀랜드는 이 새로운 통찰력이 오늘날 사회와 경제가 직면한 해묵은 과제와 새로운 과제에 혁명적인 해법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p.69
사람들은 종종 ‘발명’과 ‘혁신’이란 말을 같은 뜻으로 생각하고 번갈아 쓴다. 그러나 그 두 단어의 뜻은 다르다. ‘발명’이 획기적인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고안하고 창조하는 일이라면, ‘혁신’은 그렇게 발명된 생각과 기술을 현실 세계에 쓰이게 만드는 것이다. 즉 로봇 바퀴와 시티카라는 눈부신 발명품은 연구실 밖으로 나와 현실에서 쓰일 수 있어야 혁신적인 물건이 될 수 있다. 또한 발명은 한 개인의 상상력을 통해 태어날 수 있지만 혁신은 개인과 조직들이 대규모로 협력해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오늘날 혁신이 필요한 전 지구적 문제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p.125
미디어랩에서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가 융합되는데, 이런 방식이 오늘날의 세계에서 혁신의 강력한 엔진이 되고 있다. 미디어랩의 연구 방식은 상업적 응용에 대한 압박 없이 연구자가 자신의 호기심에 따라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기초연구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후원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지 알고 개발한 모형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험하며 개량해 나가는 응용연구 방식을 지닌다. 그리고 모든 연구는 다학제적인 접근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식의 독특한 결합이 미디어랩의 공개적이고 투명한 환경에 적용되면서 미디어랩은 ‘혁신 속의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세상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을 후원 기업들이 미디어랩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후원 기업들은 특정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얻기 위해 미디어랩과 파트너십을 맺는 게 아니다. 미래에 막대한 보상을 얻을지도 모를 연구에 장기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pp.170∼171
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직 상당 부분 알려지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합성신경생물학 연구팀의 계획은 아주 모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뇌장애를 다루는 연구들이 상당수 진행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산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보이던은 말한다. “영국의 한 연구팀은 자기 신경 시뮬레이터를 개발하고 있고, 프랑스의 한 연구팀은 전극을 활용한 파킨슨병 치료법을 개발 중이며, 벨 연구소의 한 연구팀은 MRI를 이용해 뇌를 찍으려고 해요. 그러나 문제는 어느 연구팀도 다른 연구팀의 결과를 배우거나 기초로 삼으려는 체계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뇌 장애를 다루는 데 사용되는 과학기술에 대한 통합적인 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일을 하려는 겁니다.” 그는 통합의 힘이 발휘되는 미디어랩에서 그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오픈 소스’화했다. 즉 모든 연구자나 연구실이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아탑의 높은 장벽을 허물고 그 분야의 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딘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개발 중인 기술 일부도 전 세계 350개의 연구실에 배포했다. 그의 연구 분야에 참여하는 연구실은 매주 점점 늘어나고 있다. ---pp.192∼193
과거에는 장애인이 기술의 맨 마지막 사용자였다. 처음에는 장애자를 위해 고안된 혁신적인 기술도 주류 소비자인 비장애인들에게 널리 쓰인 후에야 그 혜택이 장애인들에게 돌아갔다는 말이다. 미디어랩의 휴먼 2.0 연구자들은 그 순서를 뒤집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기술을 개발할 때 일반 사람들은 뒤로 미루고,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먼저 적용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기술 대부분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쓰임새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그중 몇 가지는 그런 쓰임새를 발견할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페이퍼트 교수가 모든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갖고 있다고 말해 주었던 그날, 그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원칙도 천명한 것이었다. 즉 기존의 장애인 개념을 크게 넓혀 그 안에 모든 사람을 포함시킨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랩 연구자들은 우리 개개인 모두가 사회 전체에 혜택을 줄 수 있는 급진적인 기술의 얼리어답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p.206∼207
의료 시스템의 미래를 엿보려면 뉴미디어 의학 연구팀에 있는 의학박사이자 박사과정생인 존 무어의 연구실을 방문하면 된다. 그러면 그는 커피 테이블 위에 있는 홈시어터 리모컨을 집어 들고 몇 개의 버튼을 누른 다음, 방 한쪽 끝에 있는 평면 TV를 켠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린다입니다. 저는 당신이 무어 박사님을 만나기 전에, 당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하얀색 의사 가운을 입고 뿔테 안경을 쓴 화면 속 여성 린다는 진짜 사람이 아니라 아바타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사람 모습의 대화 대리인’으로, 마치 당신 가정에 상주하는 의사 조수처럼 당신과 의사 간의 연락책 역할을 한다. 린다는 전문적이고 친절하고 편안하게 당신에게 질문하고, 당신이 답하고 묻는 것을 인내심 있게 잘 들어 준다. 뿐만 아니라 진찰실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을 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본적인 병력을 묻고 의료 기록을 갱신하며 다음번 진찰을 위해 일정을 짜고 대비하는 등, 진단을 빼고 모든 것을 한다. 린다는 그 모든 일을 당신의 집이나 사무실 등 어디서나 할 수 있다. ---pp.245∼246
디지털 시대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IBM이 현대식 메인 프레임을 처음으로 내놓았던 1960년대 초에서 인텔이 현대식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처음으로 출시했던 1970년대 초 사이라고 보고 있다. 그때는 아폴로 달 탐사 프로젝트와 겹치는 시기로, 당시 인간은 어떤 도전이든 이뤄 낼 수 있다는 믿음에 충만해 있었다. 바로 그것이 그 시절의 인간이 가진 정체성이었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그때보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 교육, 환경 등 우리를 둘러싼 큰 과제들은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슬프게도 이런 느낌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새로운 정체성이다. 그러나 뇌성마비 환자에서 전자음악계의 저명한 작곡가이자 연주자로 탈바꿈한 댄 엘시의 사연은 미래에 대한 청신호가 되고 있다. 과학기술은 엘시가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에 있는 창의적 천재성을 온전하게 발산하게 해주었다. 2045년이 되면 지구에는 자신만의 능력과 장애를 가진 90억 명의 인구가 살아갈 것이다. 이 책에 언급된 미래 기술이 모든 이들의 창의적 천재성을 분출하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 사람들을 음악가나 공학자, 프로그래머나 의사, 요리사나 과학자로 될 수 있게 해준다면? 그런 기술이 구현되는 사회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할까? 나는 그때의 우리의 정체성은 댄 엘시의 정체성처럼 심화되고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pp.307∼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