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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부 평등의 얼굴 1장 잃어버린 꿈이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유물론자들의 실패한 유령 자유주의의 사생아, 부르주아의 반항아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나 자본주의의 무채색들 자본주의의 골격, 사회주의의 영혼 2장 운명의 신을 탄핵하다: 존 롤스, 『정의론』 운명의 신을 탄핵하다 초기화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미지의 세계의 보수적 결정 쾌락의 왕국과 정의의 민주공화국 정의와 자존, 최소한의 사랑 3장 땅이 훔친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어디로 떨어졌나 맬서스 일당의 음모 지대가 너희를 가난하게 하리라 일등칸의 미납요금 욕망의 피라미드를 넘어서 4장 죽음의 평등이 멸종할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벌거숭이들이 일으킨 역사의 이변 종교적 존재로 거듭나기까지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 배부른 소크라테스는 행복할까? 어쩌면 마지막으로 평등했던 사피엔스 2부 권력의 온도 5장 무엇이 진보를 가로막는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유전적 평등함과 지리적 불평등 가끔은 환경이 너무나 많은 것을 결정한다 거인국과 소인국의 첫 만남 권력이라는 정치적 절벽 6장 밥보다 솔직한 이념은 없다: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벼랑 끝의 평화 공화군의 오욕, 국민군의 야욕 밥의 정직함과 이념의 비루함 바르셀로나의 비극 인간은 혁명의 도구도, 자본의 소모품도 아니다 7장 분노가 논리적이면 분노가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악마의 신앙고백록 순혈과 잡종의 변증법 하등 종족이 건넨 아편 주먹으로 하는 사랑의 배신 만년설이 녹아내릴 때 8장 정치를 너무 미워하지 말지어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불의 발견, 권력의 재발견 ‘울타리 없는 지옥’과 ‘울타리 있는 감옥’ 싸움만 일삼는 자들의 속사정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 운동장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물을 갈아준다는 것의 의미 3부 혐오와 맞서며 9장 사랑이 깃들 곳에 혐오할 자유란 없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카드를 거부한 남자의 뒤숭숭한 죽음 이중인격자의 생활기록부 자유의 교과서, 지성의 프리즘 자유의 사용설명서 논쟁의 교전수칙 관용의 그림자 10장 말초적 불평등이란 그런 것이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아이언 맨과 한풀이 굿 알파메일과 공모자들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 거울이 본뜬 세상, 이갈리아 킹 목사와 맬컴 X 이것은 번역에 불과하다 11장 내 영혼을 지배하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한병철, 『피로사회』 카페인 권하는 사회 자기착취의 시대 어느 비만인들의 초상 호모에코노미쿠스의 자아분열 홀로된 자의 피곤한 우울 사람은 무엇으로 죽는가 12장 오늘도 광대는 꿈을 꾼다: 신현준, 『레논 평전』 자비 없는 정의와 허약한 악 왼쪽 심장의 각성 혁명가가 된 슈퍼스타 정치 대통령과 문화 대통령의 대결 감히 세상을 요약하려거든 나가는 말 | 참고문헌 |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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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혁명은 사실 내면의 보수며 진실의 사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정성과 헌신이 뒷받침되지 않는 ‘진보’, ‘정의’, ‘혁명’ 따위의 구호는 과시용 멋 부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부패할 기회를 갖지 못해서 청렴할 뿐이고, ‘갑질’할 특권이 없어서 평등을 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대 쥐어 박아줄 힘이 없어 마지못해 평화를 애호하는 것이거나 악당을 두려워하면서도 내심은 악당을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가 이념과 철학과 관계없이 괴물이 될 수 있다고. 거짓이 진실을 이기고 권력이 우정을 짓밟았던 모난 역사의 지층에서, 밥 한 그릇에 온 하루와 욕심을 다 바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구한 역사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한다. 당신의 빗장은 안녕하신지요. 시작은 자기 자신부터 솔직해지는 데 있다.
--- p.168 민주주의라는 높은 산의 봉우리에는 지식의 만년설이 가득하지만, 산자락에는 묵음 처리된 이들의 울분과 한탄이 쌓이고 만다. 할 말을 못 다한 사람에 대한 외면 혹은 무시에서부터 나치즘과 같은 극단의 망상이 자라고 음모론이 곰팡이처럼 피어나기 쉽다. 여기서 배우지 못해 허튼소리를 한다는 식자층의 차가운 지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분노를 논리적으로 표출하면 분노가 아니기 때문이다. 억울함은 하소연이 되기도 하지만, 극단적 증오가 되기도 한다. 후자가 히틀러의 길이었다. --- p.192~193 권력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권력 없이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정의에는 반드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소중한 사람과 귀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횡포를 보기 좋게 맞받아칠 수 있다. 힘을 멀리하는 자는 착한 사람은 될 수 있어도 의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착한 사람은 세상의 불한당과 싸워주지 못하며, 음지의 불우한 이들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의 세계에서만큼은 외려 성자가 정의롭지 못한 법이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혼자만 착한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역사의 진보에는 홀로 남는 착한 이보다 함께 가는 의인이 필요하다. --- p.200 정치적 중립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중립은 강자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오직 힘 있는 자의 중립만이 존중받는다. 강자의 중립은 ‘명예로운 고립’으로 대접받지만, 약자의 중립은 ‘겁에 질린 고립’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래서 평범한 이들의 중립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의도와 상관없이 방관자가 된다. 중재도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냉혹한 힘의 세계는 그런 계산을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에게 중립은 매력적인 오답에 불과하다. 중립의 가장 큰 문제는 약자들에게 착시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약자일수록 부족한 힘을 합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중립은 약자들을 분열시킨다. 역설적으로 약자를 위한 보호막을 깨부수는 것은 바깥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이탈이며, 그 시발점이 바로 중립인 것이다. --- p.220 불의를 외면하기에는 피가 너무 뜨겁다. 침묵하고 살기에는 해야 할 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세상은 어렵고 정치는 더럽고 우리는 외롭다.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중립과 불신을 넘어 뜻을 굽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마주하기 싫은 당혹스러운 결과 앞에 도망치지 않고, 쓸개즙을 곱씹으며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까? 덜컥 겁부터 난다. --- p.225 관용의 그림자는 불관용이다. 관용은 자유를 지키지만, 불관용은 자유의 터전을 지킨다. 관용이란 보통은 ‘너그러운 얼굴’이지만 혐오발언 앞에서는 그 악담을 파묻어버릴 ‘용감한 관’으로 변신한다. “관용에는 관용으로, 불관용에는 불관용으로!” 나는 이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관용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조건 없는 관용은 자유라는 공동의 재산에 해를 입힌다. 자유는 관용이라는 큰 바퀴와 불관용이라는 보조바퀴에 동력을 싣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관용의 범위와 불관용의 최소한도의 용례를 정하는 것은 반론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합의에는 앞으로의 개정을 위한 빈 공간이 넉넉히 있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자유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히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자유를 자유답게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 p.252~253 꿈은 요약보다 풍부하다. 유머는 힘이 세고 문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혁명은 잔잔히 시작된다. 인생은 시와 같고 세상은 노래와 같다.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은 상상력이다. 평화는 당연한 가치다.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이념이다. 온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은 느낀다. 포기하지 않고 덤비다 보면, 즐겁게 현실에 저항하다 보면, 유머를 섞으며 끝까지 걸어가다 보면, 꿈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반겨줄지 모른다고. 그래서 오늘도 광대는 꿈을 꾼다. Imagine! --- p.335~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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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로 생각하고 쓰기’의 훌륭한 교과서
이 20대 젊은이를 사로잡은 주요 문제의식은 무엇일까? 그는 세상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크게 ‘평등’, ‘권력’, ‘혐오’로 나누고 이 대주제에 맞춤한 열두 권을 선별해 오랜 시간 곱씹은 뒤 자신만의 경험을 얹어 울림 있는 문장으로 풀어냈다. 단단한 글쓰기 솜씨, 논리정연하면서도 읽기 좋은 호흡의 문체, 20대의 견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설득력 있고 깊은 사유, 세상과 이웃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헤쳐 온 청년다운 패기와 솔직담백함, 청춘의 열정과 희망이 배어나는 구체적인 에피소드 등이 잘 어우러진 이 책에 대해 지은이는 겸손하게 “변방의 어느 설익은 청춘이 온갖 망설임의 껍데기에서 나와 치열하고 해학적인 책읽기로 여러분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한껏 청춘의 봄을 누리고 있는 청년세대든 청춘의 뜨거운 불꽃을 마음에만 간직하고 사는 기성세대든 아무 편견 없이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오랜 세월 숱한 이들에게 읽혀온 여러 고전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기성세대 상당수가 청년 시절에 함께 호흡했던 마르크스에 대해 지은이는 이렇게 평가한다. 마르크스는 거친 붓으로 세상을 굵직하게 그려냈다. 그의 수채화는 세상 대부분을 그렸지만, 전부를 담아내지는 못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많은 이가 노동자 계급에 가담하는 대신 소시민으로 살고자 했다. 무산 계급은 단결하지 못했다. 단결한 노동자들마저도 보수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가 잦았다. 삶이 어려운 민중은 공산주의의 붉은색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무채색이 되고자 했다. 분명 마르크스는 사람에 관한 무엇인가를 놓친 게 틀림없다. 나는 그의 큰 붓이 역사의 큰 그림을 디자인하는 데는 능했어도 가난한 대중의 복잡다단한 심리구조를 소묘하는 데는 너무 서툴렀다고 생각한다. 빈민과 서민, 노동자와 실업자, 이들은 뭉쳐야 할 때 제대로 뭉치지 못했고, ‘바닥을 향한 경쟁’을 벌이며 서로를 질투했다. 계급투쟁이 진보의 동력이었다면 바닥을 향한 경쟁은 후진의 원흉이었다. (28~29쪽) 자본주의의 장의사 마르크스. 그가 불치병이라고 진단한 빈사 직전의 자본주의는 관 뚜껑을 열고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기사회생한 자본주의 탓에 오히려 사상의 무덤에 파묻힌 것은 그가 남긴 복음들이었다. 그는 사람을 너무 믿었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운동방식에 너무나 고무된 나머지 인간의 작동방식을 오판했다. 그가 허위의식으로 치부해버린 인간의 원초적 감정들이 못사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말았다. 그는 구조가 사람을 만들지만, 단결된 사람들이 구조를 깨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는 위대한 선택을 일궈내면서도 종종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는 그것을 간과했다. 이기심을 사회적으로 박멸하려고 했던 그의 시도 역시 위대하면서도 바보 같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32~33쪽) 또한 평등과 정의에 대한 지은이만의 확고한 가치관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결심한다. 우리는 운명의 신을 탄핵할 것이다. 몹시 변덕스럽고 그만큼이나 편파적인 운명의 신을 몰아내고, 그 대신 평등하고 공평한 조건의 합리적 개인들이 정의의 계약을 맺음으로써 신의 빈자리에 새로이 정의를 세울 것이다. 사회정의란 운명의 신이 휘두르는 우연의 채찍이 불평등의 상처를 후벼 파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적 폭정이든 경제적 궁핍이든 자연의 심판이 닥치든, 정의사회는 그것에 한 인생이 무력하게 스러지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어떻게 태어났든 최소한 허덕이지 않는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 나아가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원칙에 따라 경쟁하고 협력하고 공평하게 나눠 갖도록 공정한 체계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기계적으로 같을 수는 없어도 인격적으로 대등할 수는 있다. 아니 적어도 살아온 만큼 합당하게 대접받아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다. 사회정의는 공공의 이름으로 벼락같은 행운과 원치 않은 재난 모두를 나누어 짊어질 것이다. (46쪽) 이 밖에도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와중에 불거진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서는 이런 견해를 내놓는다. 여성혐오는 언제나 있었다. 우리가 가부장제로 수천 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최근에 이것이 격화되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른바 ‘강남역 사건’은 사라예보의 총탄 같은 역할을 했을 뿐이다. 1차 세계대전은 예견된 전쟁이었고, 여성혐오 논쟁은 언제고 일어났을 논쟁이었다. 왜 지금 여성혐오 논란이 불거졌는지를 말하자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가부장제 때문이다. 다른 하나 역시 가부장제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 전자는 여전히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럼에도 예전보다는 가부장제의 힘이 달리기 때문이다. (267쪽) 지은이의 견해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 치열한 책읽기와 냉철한 현실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전염성 있는” 젊은 사유의 박동을 전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각별하다. 모쪼록 ‘2020-20’의 도전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독자들의 따스한 성원이 줄을 잇기를 희망한다. 오래된 지혜와 젊은 생각의 우발적 접촉사고를 통해 빚어진 고민의 결과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존 롤스의 『정의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 한병철의 『피로사회』, 신현준의 『레논 평전』, 젊은 생각이 만난 오래된 지혜의 목록이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는 이들이라면 매우 익숙한 저자와 제목들일 것이다. 내로라하는 저명인사들의 비평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 책들인 만큼 무언가 자신의 의견을 보탠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법하다. 그럼에도 압도적인 영상 우위의 시대에 여전히 “활자로 쓰인 책과 거기에 담긴 문장의 힘을 믿는다”는 지은이는 이들 오래된 지혜에 자신만의 젊은 생각을 접속해보고자 시도했고, 2년여의 각고 끝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필독 고전’의 숲을 거닐며 그동안 깊은 문제의식을 느낀 주제에 맞춰 신중하게 한 권 한 권 선별한 뒤 자신이 마주한 세계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줄 한 줄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일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임을 깨닫고 성실하게 실천한 결과다. 모든 이의 유전자가 다르듯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자의 개성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권력과 혁명, 이념과 사상, 역사의 진보를 사랑”하는 성장 가능성 ‘만렙’인 한 젊은이의 범상치 않은 사유의 첫 번째 열매다. 이 땅의 한 청년이 용감하게 내놓은 이 프리즘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민에 기꺼이 동참해보시기를 권한다. 청년층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중장년층에게는 젊은이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가치 있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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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글이 머금는 공기에는 희망과 정열이 스며들어 있다. 책상의 지식이라는 쇳물을 책상 밖의 지혜라는 망치로 잘 두드려냈다. 몸과 가슴으로 담금질하면서 쌓은 저자의 지적 경험, 그 결정판인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와 마주하는 것은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저자가 엮어낸 생각의 이음새를 통해 세상과 관계, 자신의 좌표를 묶어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솔직한 매력이다. 열두 권의 책을 ‘평등’, ‘권력’, ‘혐오’로 재구성한 그의 창의성과 시공을 넘나드는 꿈과 상상은 편식증에 사로잡힌 현대의 청춘에게 자유를 던져주고 있다. 누구나 귀중히 보존하고 있는 젊은 마음에 또 한 번 불을 지펴줄 것이다. - 정용하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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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권의 고전을 오롯이 자신의 언어로 읽어낸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의 초고를 대했을 때 문득 『오래된 지혜, 젊은 생각을 만나다』가 더 나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젊은 작가의 책을 중년 세대, 노년 세대가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단지 젊다는 것을 넘어 우리와 세상이 그어놓은 ‘경계 밖에 서 있는’ 한 젊은이가 자신이 읽은 고전을 통해 세상에 보내는 절실한 메시지다. 그가 보내는 신호에 여러분이 기꺼이 응답하길 바란다. - 김만권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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