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를 다독여가며 일하다 보니 어느덧 입사 6년차가 되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루 열여덟 시간짜리 스케줄을 짤 만큼 일에 ‘올인’했다. 어떤 해는 설과 추석, 단 이틀만 쉰 적도 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좋은 피드백도 종종 있었다. 시청자 반응도 꽤 괜찮은 편이었고, 훌륭한 선배를 만나 상도 과분하게 탔다.
그러나 대가가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몸이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어깨와 목이 돌덩이처럼 굳어가고 두통의 주기도 짧아졌다. 특히 숨이 차고 속이 울렁거리는 건 참기 힘들었다. 심장이 보내는 적신호였다. 하루를 건너뛰는 징검다리 퇴근으로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린 데다, 잦은 야식으로 몸이 비대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그렇게 몸이 망가져가자 어떤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 PD, 프로그램 잘 만들었던데?” 하는 주위의 격려도 약발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최정상에 섰을 때 하는 것이라고 믿던 나였다. 아직 만족하려면, 그래서 행복을 누리려면 멀었다고 늘 채찍질하던 나였다. 그러나 몸이 마음에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이것이 행복한 삶이냐’고.
(……)
내 30대 중반의 전환점은 딱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비교하는 삶을 버렸다. 그리고 싫은 일에서 탈피했다. 쉽게 말해 마음을 바꿨고, 업무를 바꿨다. 그러자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만족감은 물론이고 애사심도 높아졌다. 물론 지금도 진행형이다. 어쨌든 그 이후 누가 “회사 다닐 만해?”라고 물으면 “그런대로 괜찮다”고 대답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정도면 괜찮게 방향을 튼 셈 아닐까.
--- 「1장 ‘평생 그 일만 할 자신 있는가?’〈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왔을까〉」 중에서
공자는 서른을 이립이라 하였다. 열다섯에 세운 목표(지학)를 발전시켜 기반을 닦는 나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한물간 경구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30대 중반의 모습을 차분히 살펴보면, 벌써 숨고르기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가속 페달은커녕 브레이크에 슬슬 발을 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오십 대가 보면‘벌써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고,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지만, 경쟁에 지쳐 마음의 엔진이 이미 식어가고 있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서른다섯 무렵이면 찾아오는 열패감의 원인이 무엇일까.’ 이것이 내가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기가 ‘지금’ 원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이 없으면 인생이 재미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수많은 고전 속 격언은 변하는 세상에 대한 감을 놓친 노년의 무책임한 충고가 아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시대, 그만큼 ‘평생의 업’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그 업은 내가 좋아하는 일, 그래서 내 인생에 부끄럽지 않게, 나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이끄는 것은 자존감이라는 강력한 심리 구조에 있다.
---「1장 ‘평생 그 일만 할 자신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 내 평생을 걸고 책임질 수 있는 일〉」 중에서
나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은 서른 중반 무렵 자존감을 이해하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난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마음이 가벼워졌고, 누구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어졌다. 게다가 좋아 보이는 것과 진짜로 좋은 것 사이에서 무엇이 더 실속 있는지를 알게 됐고,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안목도 높아졌다. 이 모두가 비교하기를 버리고 자존감을 챙긴 결과였다.
지금부터라도 마인드 세팅을 새로 시작하자. 그 방향은 자존감을 갖춘 진로모색이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루기는 힘들겠지만 간단한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바로 ‘솔직해지는 것’이다. 다른 말로 아는 척, 잘난 척하지 않는 것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친구에게 혹은 선배에게 자신을 그대로 보여줘라.
이런 마인드 훈련을 하다 보면 주변으로부터 솔직한 조언은 물론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조하리의 창이 커지기 때문에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남과의 비교 혹은 평가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남들이 스펙 쌓기에 열중한다고 한들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자기 목표에 집중하면서 본인의 강점과 약점도 생각하는 성찰의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실패는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실패가 남에게 규정되어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실패를
나의 발전을 위한 소중한 경험이라고 마인드를 바꾸면 문제될 것이 없다. 실패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어 나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이 모든 선순환은 바로 자존감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다.
---「3장 ‘내 안에는 어떤 자아가 숨 쉬고 있는가?’ 〈실패도 사랑할 이유가 충분하다〉」 중에서
재능은 자기가 가진 여러 가지 소질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라고 정의된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적성’이라고 부른다.
적성과 자존감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마음이 끌리는 것처럼 강력한 동기는 없다. 그런 점에서 적성은 동기로 이어지고, 동기는 자존감을 끌고 간다. 적성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보다 직장생활에서 신나는 일이 있을까. 일터를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가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결과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불러온다. 적성과 유능감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톱니바퀴와 같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되어 있다. 잘하면 또 좋은 피드백을 받는다. 그것이 나를 더욱 기분 좋게 만들고 성공 경험을 만들어낸다.
나는 줄곧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하고 싶은 마음’이 움트는 바탕이 바로 적성이다. 내가 늘 잘했기 때문에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것이다. 지금 먼저 취업한 선배들이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직장생활이 재미가 없다’, ‘미래가 불안하다’, ‘잘할 자신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직업 선택의 불행한 결과다.
---「3장 ‘내 안에는 어떤 자아가 숨 쉬고 있는가?’ 〈자존감을 꽃피우는 내 안의 씨앗〉」 중에서
만화가 강풀은 청춘을 주제로 한 어느 특강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로 만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억지로라도 이겨냈습니다. 그렇게 인내의 시절을 거쳐 진짜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게 꿈이 아니라, 직업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화가가 아닐 때는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만화가가 되고 나서는 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는 요즘 대학원에서 다시 만화를 공부하면서 자신이 쓴 만화책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꿈이 있어야 비로소 일을 모색할 수 있다. 일은 꿈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가령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면, 적성을 개발해 상담사가 되거나 혹은 소설가, 가수가 되는 것이 순리에 맞다. 그래야 직업의 목적에 대해 정확히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나의 믿음을 의심할 차례다. 순수했던 나를 스펙의 노예로 만든 시작은 나 자신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라고 지독한 회의감에 빠질 때, 어쩌면 우리는 부모님을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프레임으로 세상을, 취업시장을,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면 된다. 프레임을 행복에 맞추는 일은 어차피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일이다. 인생은 끝없는 도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4장 ‘내가 정말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꿈과 직업, 둘은 같은 게 아니다〉」 중에서
취업을 하는 데 있어 현업인만큼 생생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구직자들이 이 과정을 생략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던 무렵, 주변에 기자로 입사하는 선배들이 몇몇 생기기 시작했다. 종종 만나던 선배는 “일이 힘들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물론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갈 길 바쁜 나에게 입사 이후의 삶이란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
나처럼 후회하기 전에 현업인을 만나라. ‘최소한의 성실함’과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그 효과는 수고의 몇십 배로 돌아온다.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 일과만 들어도 나의 적성과 맞추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 직업의 단점도 미리 살펴볼 수 있다. 직장 내부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된다. 이건 오로지 현재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고급 콘텐츠다. CEO의 마인드는 어떤지, 직장 문화는 어떤지는 때론 월급이나 복지에 대한 정보보다 훨씬 중요하다.
---「5장 ‘지금 사회에 뛰어들 몸과 마음, 머리의 준비가 됐는가?’〈현업인을 만나 직업의 맨살을 만져보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