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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으면 왜 울 것 같습니까

우리는 안으면 왜 울 것 같습니까

현대시세계 시인선-112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2건 | 판매지수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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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204g | 153*224*8mm
ISBN13 9791165121129
ISBN10 1165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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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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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을지로 입구에 내립니다 도시인들이 발우를 어깨에 메고 기러기 떼같이 버스를 기다립니다 밥줄은 튼튼한지요 있죠 얻으려는 마음 없이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 있나요 외로운 사람은 기를 쓰고 외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손을 잡아요 아니 악수를 조금 길게 했지요 우리는 안으면 왜 눈물이 날 것 같습니까

장미여관 간판에 불이 켜집니다 들어간 곳은 지하식당입니다 다시 나가기엔 우리의 메뉴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지지 않는 조화는 핀 적도 없을 테죠 어쩌면 영원은 무시무시한 교훈이 아닐까요 시든다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외로운 사람과 재미없는 사람 중 누가 먼저 장미여관에 갔을까요 새 한 마리 검은 가지를 물어나르는 을지로 우리는 아무 일 없이 헤어지고요 부러진 나뭇가지를 받아들고 버스를 기다립니다 불이 꺼지는 장미여관 외로움도 만실입니다 누군가는 또 검어질 차례입니다
--- 「우리는 안으면 왜 울 것 같습니까」 중에서

내 등에 새 하나 사는 상상을 하지 너무 아름다워 쉽게 등을 보여주지 않을 거야 지하의 늙은 개는 카나리아가 되고 싶어했지 태어난 적 없는 새가 되어 다시 태어나고 싶어했지 날개 대신 어깻죽지 그 아래 숨겨둔 동굴의 비루를 먹고 살았지 등이란 내 손이 닿지 않는 미로의 판 그래서 나에겐 등이 너무 많아 가려운 곳을 찾아 더듬으면 언제나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복판이 되지 내 말이 너무 짧아, 보이지도 않아, 볼 수가 없어, 거울로도 눈으로도 어떤 성분으로도

내 등에 사는 새 한 마리는 핀 적이 없어 지지도 않아 태어난 적 없어 울지도 않아 한사코 날게 해달라고 할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 날개가 꿈틀거릴 때마다 내 손은 없어지고 말은 짧아지고 밤마다 문을 열고 걸어나오는 지옥의 운율 새에 깃든 창공은 날고 싶었던 게 아니야 난다는 건 비단 날개가 있다고 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늙은 개는 날개를 가져본 적 없는 세계지 아름다운 오류를 먹고 사는 어떤 세계는 등을 가져 본 적도 없을 테지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봐 줄래야 줄 수 없는 내 등을 너에게만 보여줄게
--- 「아름다운 오류」 중에서

나를 따라서 한번 가보겠나, 나처럼 우주복을 갖춰 입을 건 없고 편하게 따라나서면 되네. 신발끈만 잘 묶게나, 조이든지 느슨하게 하든 아침에 눈 떴을 때 몸을 살피고 알아서 하게나, 컴컴하니 뭐 보이는 것이 있겠냐마는 난 늘 이 시간에 길을 나서네. 잠깐 보이다만 달을 보니 그믐인가 보군. 그믐달도 내일이면 삭을 지나 차고 다시 이지러지겠군. 무작정 걷다보면 나도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는 달 같다는 생각이 든다네. 이제 제 무덤에 들어가려고 꾸물거리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않나, 세상을 통틀어 저보다 보기 드문 빛이 또 있을라구, 오늘은 바람이 아주 세차군. 떠내려가지 않게 조심하게. 아마도 끝까지 역방향으로 불어올 작정인가봐, 그렇다고 맞서려고 하지 말게. 가끔은 파도를 타는 구명줄처럼 흐느끼며 걷게나, 그래야 마음이 부러지지 않지. 오르막이 나오면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면 안 되네. 오르막은 마지막까지 찍고 나서야 꺾이지. 중간에 가다가 멈추면 더는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네. 한 걸음도 더는 내딛기 힘들 때는 한 걸음을 더 옮기는 게 넘어서는 길일세. 왜, 내 배낭이 무거워 보이나, 짐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접게나, 짐은 덜어서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네. 오히려 짐을 떠안기는 꼴밖에 안 되는 거야, 내가 무거우면 내가 버리면 돼. 내가 무거운 걸 남에게까지 짊어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길에서 바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방편이었다네. 그렇다고 저 답답한 문제를 계속 떠안고 가느냐, 웬걸, 언젠가는 불태워야겠지. 그게 다 가지는 방법이니. 어때, 걸을 만한가, 신발끈은 좀 더 안 조여도 되겠나, 조금만 힘을 내. 나무 그늘 없는 12㎞ 밀밭을 걸어가야 하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투덜대지 말게. 저 밀밭을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라 생각하며 걷게. 그래야 사이와 사이를 이해할 수 있다네. 조금만 더 가면 모래로 뒤덮인 마을이 나올 거네, 그때부터 내리막이네. 이제 다 와 간다네.
--- 「Hontanas camino」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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