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인가, 나의 영광인가 : 책 제목이 너무 과격하다 못해 무척 당황스럽다. 선교사이든 목회자이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이 가장 최고로 여기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았다”라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제목이라 생각해서 얼른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매일 매일 살아도 부족한데 말이다. 이러한 책 제목이 나오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2016년 10월 말에 우리 가족은 6년간의 이스라엘 선교사역을 잠시 마무리하고, 한국에 안식년 차 나오게 되었다. 그 시점에 2017년 종교 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있었는데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며 예배하는 모임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좌충우돌하며 지내온 많은 시간 속에 한 번도 나 자신을 정직하게 말씀으로 비추어보지 못하고 분주함으로 달려온 나는 그날도 여전히 별 감흥 없이 중간 정도 되는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를 인도하는 어느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익숙한 예배 분위기, 사람들의 외침, 기도 소리, 악기의 울림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다만, 목이 곧은 패역한 죄인 중 한 사람이 아무 감동 없이 그저 앉아만 있던 어느 순간이었다. 가슴을 때리는 깊은 그분의 음성이 나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말씀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그분의 말씀에 아연실색하며 엎어지고 말았다.
“너는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한 그분의 음성이었다. 내가 그분의 영광을 짓밟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그분의 판결이었다.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수많은 훈련을 받고 세미나, 캠프, 집회에 참여하였으며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 사역을 해온 21년의 시간, 그리고 선교지에서 사역한 6년까지 27년 동안 드린 헌신에 대한 주님의 판결은 “너는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라는 단 한마디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말씀이 임한 그 순간은 마치 영원에 잇댄 듯한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이었다.
‘내가 어떻게 주님의 영광을 짓밟았다는 말인가?’ ‘내가 어떻게 주님의 영광을 짓밟은 선교사로 선교지에 가 있었단 말인가?’ ‘내가 지금까지 헌신하고, 훈련받고, 선교지에 나가서 이렇게 살아온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는데 어떻게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오면서, 어찌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의 충돌로 눈물이 쏟아지고 회한과 절규가 내 속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짐승이 울부짖는 절규에 가까웠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내가 어떻게 했길래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았다고 그러시는가?”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안위하고, 변명하고,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그것은 거추장스러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고,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아담의 본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결국 ‘나’(Myself)라는 자아를 끊임없이 부추기며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철저히 나 중심적으로, 옛 자아의 반응으로 살아온 삶과 사역에 대해 하나님은 ‘사형 선고’를 하신 것이다. 그 사람이 목회자이든 선교사이든 사역자이든 상관없이.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은 자임을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셨다.
… 이 책은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은 선교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은 선교사의 이야기’이다. 주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거나 매일 주 안에 머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하며 가르쳐주셨듯이 나의 삶 속에서도 동일한 원리로 가르쳐주고 계신다. 나의 가슴 아픈 실패와 경험담들이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선교 지망생들과 훈련생들에게 작은 도움과 길잡이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또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수많은 선교사님들 가운데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매일 괴로워하고 쓰러지고 힘겨운 싸움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나눔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용납’과 ‘회복’의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프롤로그」중에서
이어진 하나님의 세 번째 질문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교를 함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 아느냐?” 선교에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가! …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애물은 다름 아닌 ‘선교사 자신’이라는 것이다.
--- p.31
나는 지금도 버스 안에서 주님의 책망을 들었던 그때의 음성과 사건을 기억한다. “내가 너를 왜 이 땅 이스라엘로 불렀는지 알고 있느냐? 너는 유대인들을 변화시키겠다고 선교사로 왔지만, 그것은 선교가 아니다! 나 여호와가 원하는 선교 대상자 1순위는 바로 너 자신이다. 나는 너부터 먼저 바꾸고 싶다!”
--- p.39
“주의 음성 듣지 않고, 주의 일을 하는 것!” 순간 나의 영혼이 움찔했다. 나 또한 주의 음성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주의 일을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바쁘게 주의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주의 일이 맞는지, 주님이 원하시는 건지, 혹시 주의 이름을 빙자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분 앞에 말씀의 조명을 받고 인도함을 구하는 것이다.
--- p.62
신학도 필요하고 설교학도 필요하고 학위도 필요하고 사역 경험도 필요하고, 사역자로서 갖출 것을 갖추어야 사람의 인정을 받는 시대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설교할 때, 찬양 인도할 때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사람,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부흥’을 가져오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p.92
더욱이 그 광야 길을 걸으면서 소스라치게 놀란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광야 길을 걷기 시작한 지 몇 분도 안 되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기 시작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지!
--- p.101
비자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한 말은 “Yes”와 “God bless you!” 단 두 마디였다.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내 입에서 말이 많아지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실 때는 내 입에서 해야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오직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아멘.
--- p.112
그분들의 반응에 우리가 오히려 놀랐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정말 우리를 당황스럽게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선교는 내가 준비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오래 참음’과 ‘사랑’임을 다시금 주님으로부터 배우게 된다.
--- p.122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집 밖에 나가 하늘을 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지?’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뭐지?’ 세상에 버려진 고아와 같은 고독감이 휘몰아쳤고, 이렇게 태어나도록 한 부모에 대한 원망과 저주에 가슴을 쳤다. 내 삶에 대한 지독한 좌절을 경험한 것이다.
--- p.156
수많은 선교사와 그 가정이 매년 여름 혹은 겨울 방학을 맞아,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고국을 방문한다. 여유가 되거나 머물 숙소가 있는 분들은 별걱정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한국에 오더라도 ‘낯선 고향’과도 같은 한국 사회의 삶을 보면서 늘 ‘이방인’과 같은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오늘 우리는 어디서 자야 할까?”
--- p.174~175
어쩌면 교회 안에서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을 안고 울고 있는 ‘미전도 지역’이 있다면 ‘목회자 자녀들’이 아닐까? … 나는 나의 자녀들이 목회자나 선교사 자녀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로서 충분하다고 믿는다!
--- p.189
누군가 “선교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선교는 ‘나 자신이 바뀌는 과정’이라고. 그리고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며 매일 주와 동행하는 것’이라고.
--- p.213
“이스라엘에서 무슨 사역을 하세요?”라고 묻는 분들에게 “매일 두렵고 떨림으로 저의 구원을 이루며 사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실례가 될까?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늘의 두려움이 매일의 일상에 임함으로 나의 ‘구원’을 이루며 사는 삶이다.
--- p.229
또한, 사역자로서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삶의 선교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이다. 우리는 바로 나 자신이 복음을 가로막고 선교를 방해하는 장애물인 것을 알고 주 품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