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3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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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0쪽 | 522g | 142*202*25mm |
ISBN13 | 9788936477936 |
ISBN10 | 8936477935 |
발행일 | 2020년 03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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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0쪽 | 522g | 142*202*25mm |
ISBN13 | 9788936477936 |
ISBN10 | 8936477935 |
MD 한마디
[선대 여성들의 사랑과 연대가 전하는 깊은 울림] 일제 강점기의 하와이, 이민 1세대 재외동포와 혼인하고 생활을 꾸려가는 강인하고 개성 강한 여성들의 삶이 펼쳐진다. 우리 근현대사의 숨은 이야기, 낯선 이국에서 서로에게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주며 인생의 파도를 넘는 세 여성의 모습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소설MD 박형욱
1917년, 어진말 거울 속 여자, 사진 속 남자 알로하, 포와 5월의 신부들 삶의 터전 떠나온 사람들 에와 묘지 소식 1919년 호놀룰루의 바람 떠도는 삶 윗동네, 아랫동네 와히아와의 무지개 판도라 상자 나의 엄마들 작가의 말 참고 자료 |
대한제국 정부가 인정한 최초의 미국 이민자들은 1903년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눌룰루 항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102명이 갔는데 신체검사를 받고 통과한 86명만 내릴 수 있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이민선에 오른 그들의 삶이 참혹했으리란 것은 역사적 흔적을 찾을 때 우리가 흔히 인지할 수 있는 내용이다. 사탕수수 밭에서 노역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그들의 삶은 차라리 노예의 삶이었다. 일본의 제지로 이민 금지령이 내려진 1905년까지 7,200명이 이민을 갔다고 한다. 이 글은 그들의 삶을 소재로 상상력을 동원한 글이다.
대다수 독신 남성 노동자였던 이민자들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사진결혼을 택했다. 조국으로 자신의 사진을 보내 배우자를 구한 것이다. 1910년부터 ‘동양인 배척 법안’이 통과된 1924년까지 이 일은 이어졌다고 한다. 일제하에서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여인들은 환상을 품고 사진결혼에 임했으리라 생각도 된다. 이 글 속의 주인공들인 버들, 홍주, 송화 등도 그런 여성들이다. 이 과정에서 신랑들은 자신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내거나, 직업. 재산 등을 속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꿈을 꾸면서 하와이에 도착한 여인들이 남편이 될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 참람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곳에 어찌하든 버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이 글에선 전개된다. 아마 죽지 못해 살아간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그런 와중에 자기를 이기며, 서로를 챙기며 갈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버들은 몰락한 양반 가문의 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의병으로 생활하다 죽고 오빠는 일본인에게 저항하다 죽는다. 그녀의 가정은 엄마가 그녀와 동생들을 돌보고 꾸역꾸역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방물장수에게 사진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재산이 많은 남편이라는 말에 그녀는 가고자 결심한다. 친구 홍주는 부잣집 딸이다. 양반도 돈을 주고 산 집안이다. 홍주는 먼저 결혼을 한다. 하지만 남편이 2개월 만에 죽고 친정에서 그녀를 집으로 빼돌린다. 홍주네 집은 버들의 집을 물질적으로 돌봐 주고 있다. 버들이 사진결혼으로 하와이에 간다고 할 때, 홍주 집에서는 홍주도 보내고자 한다. 그래서 둘은 중매인 방물장수가 있는 곳으로 간다. 중매인의 집에서 그들은 기생의 딸인 송화를 만난다. 이 땅에서는 상대도 하지 않을 신분(기생의 딸)이지만 같이 하와이로 가는 마당에 신분 같은 것은 관계가 없어지고, 서로 친구가 된다. 그들은 같이 하와이행 배에 오르게 된다.
하와이에 도착한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사실은 그들이 들었던 내용과 너무나 판이하다. 홍주도, 송화도 나이를 속인 신랑을 만나게 되었고, 버들만 사진 속의 인물이 그대로 있다. 하지만 버들의 신랑이 되는 사람은 버들에게 관심이 없다. 이런 어려움 속에 모두를 낙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 남편을 따라 그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곳 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하고 신랑을 따라서 각자 흩어진다. 홍주와는 헤어지게 되고 송화와 버들은 비슷한 공간으로 간다. 송화의 신랑 되는 이는 그곳에서 알아주는 한량이고 할아버지다. 이야기는 버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나간다. 버들의 남편 태완은 버들보다 7-8세 정도 많게 그려진다. 버들은 태완을 따라 사상수수 농장이 있는 캠프로 간다. 그곳에서 태완과 같이 사는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다시 결혼식을 한다. 그리고 시아버지를 만난다. 시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데, 이번 혼인의 모든 일을 계획했음을 알게 된다. 태완의 마음속에 다른 여인이 있었는데, 그것을 잊게 만들기 위해 계획한 일이었다. 태완은 자신의 결혼에 관한 것을 3일 전에 알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요구였기에 어쩔 수 없이 수용은 했지만 마음 문이 열리지 않아서 결혼 절차 내내 퉁명스러웠다는 것을 나중에 안다.
버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남편의 사랑을 구한다. 하지만 남편은 과거의 여자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지주라는 소개를 받고 왔는데, 남편이 지주가 아니고 소작인이라는 것을 안다. 또 자신이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함을 안다. 그런 가운데 적응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다른 여인들과 더불어 빨래와 집안 일 등을 하면서 남편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런 가운데 태완의 동생, 어머니 등의 묘소를 찾는 과정 속에 남편의 마음속에 있는 여인이 누군가를 알게 된다. 같이 이민을 온 2살 많은 여인이었고 그녀는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태완이 생각하는 것을 안다. 버들은 직접적인 공격으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아내의 입장을 태완에게 인식시킨다. 그러면서 태완의 마음이 열리게 하고 아기를 가지게 된다. 한 가정을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다.
태완은 하와이에서 민족 운동에 마음을 둔다. 자신이 일해서 번 돈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기부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버들은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자신은 일을 해야 했고 그것으로도 자신이 목적한 바를 잘 이룰 수가 없다. 동생들이 있는 집에도 돈을 보내주고 싶고, 자신도 좀 잘 살고 싶다. 그래서 남편의 생활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버들은 더욱 많은 일을 하게 되고, 피로감도 쌓인다. 점점 더 힘들어져 간다. 그렇게 살아가다 홍주의 편지를 받게 되고, 홍주가 아기를 가지게 되었음을 안다. 그러면서 가까이 있는 송화를 찾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을 대동하고 송화를 찾으니 송화는 불안 증세를 겪고 있다. 그래서 송화의 몸을 들춰 보니 온몸에 멍이 들어 있다. 버들은 송화의 남편을 찾아 남편과 같이 송화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송화의 남편은 일거리를 주고 송화는 같이 보호하면서 산다. 송화가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버들도 아기를 가지게 된다. 버들과 송화는 서로 도와주는 관계로 삶이 이루어지고 버들은 남아를 놓는다. 이름을 데이비드(정호)로 하고 키운다. 그런 가운데 남편이 농장 일을 그만두고 독립 운동을 전적으로 하겠다고 한다. 그곳 사무실에서 돈이 조금씩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송화 가족은 농장에 그대로 두고 버들 가족은 이사를 하게 된다. 그 도시에서 버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힘들게 되어 간다. 남편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조금의 돈은 다시 기부금으로 내어 버리고, 버들이 바느질, 빨래 등을 해서 입에 풀질하는 삶이 이루어 진다. 그런 가운데 태완은 중국으로 가버리고 버들은 혼자 아기를 키우게 된다. 그때 배 속에 아이가 한 명 더 들어 있다. 나중에 딸이 태어난다. 이름이 펄(진주)이다. 버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데, 홍주가 아기를 남편에게 뺏기고 합류한다. 둘은 자신들이 세탁과 수선의 일을 인계 받아 운영한다.
조선이 친정이라는 줄리 엄마 말이 버들의 마음에 와 박혔다. 홍주가 어디서나 제 성질대로 거침없이 사는 것은 과부가 된 딸도 시댁에서 빼내 왔을 만큼 든든한 친정 덕분일지 몰랐다. 어머니가 조선 생각은 하지 말고 재미나게 살라고 했지만 떠나왔다고 해서,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친정을 잊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조국도 마찬가지였다.(204) |
버들이 조국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당시 이민자들이 조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 어찌되었던 조국이 조금이라도 낫게 되어야 자신들도 기를 펼 수 있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것이 독립운동의 정신의 기반이 된다.
하와이에서 독립운동 노선이 2가지가 있고, 서로 편이 갈린다. 하나는 이승만 계열로 외교독립 노선이고 하나는 박용만 계열로 무장 투쟁 노선이다. 교회도 2개로 갈려 서로 으르렁거린다. 버들은 어느 쪽도 아니나 남편은 박용만 계열이다. 그런데 이승만 계열이 많고 버들이 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버들의 남편이 중국으로 가게된 것도 이 다툼과 무관하지 않다. 버들을 제외한 같이 온 사진결혼 사람들이 거의 이승만 계열에 속했다. 홍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속에서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버들의 삶이 이루어진다. 그런 가운데 남편이 죽은 송화가 그 세탁소에 합류한다. 3명은 다시 모여 살아가게 된 것이다. 송화가 세탁소에 합류할 때 그녀의 뱃속에는 아이가 들어 있다. 셋은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 후에는 펄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간도 펄이 18세가 되어으니 18년이 흐른 게다. 펄은 임대업을 하는 이모 홍주의 집에서 공부를 한다. 오빠 데이비드(정호)도 그 집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빠가 중국에서 다쳐 돌아오고, 버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꽃(카네이션)을 키우기 위해 농장을 구입해 들어간다. 또 그들은 아이들을 더 가진다. 아들 3명이 더 태어난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란다. 한편 홍주는 미국인 남편을 얻어 같이 임대업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남편이 먼저 죽는다.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송화는 신이 내린 기운을 어쩔 수 없어 한국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얘기들이 펄을 중심으로 얘기되고 있다. 오빠와 자신의 학교생활이 시골에서 안 되니까 이모인 홍주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반전이 있다. 펄이 누군가? 펄은 홍주 이모의 물건을 만지다가 그 속에서 사진을 몇 장 발견한다. 그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는다. 이모와 엄마, 그리고 송화가 같이 찍은 사진을 살펴보면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외모와 닮은 사람이 엄마가 아니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럼 버들 엄마의 딸 펄은 어떻게 되었는가? 홍주 이모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 것을 깨워 묻는다. 홍주이모는 잠결에 대답을 해준다.
한편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일어난다. 그 후 데이비드(정호)는 군에 입대하겠다고 강하게 얘기한다. 아무도 말릴 수 없도록 그 기세는 강하다. 소식을 들은 홍주 이모와 펄도 집으로 간다. 가서 이모도 펄도 정호에게 얘기해 보지만 씨가 먹히지 않는다. 정호는 자신의 위치를 위해서 군대에 입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잘 살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나라가 약한 마당에 자신이 스스로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늘 비겁하게 살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펄은 자신의 입장 때문에 강하게 얘기도 못한다. 홍주 이모도 그 정도로 얘기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후 그렇게 춤추고 싶어 하는 펄의 진로를 엄마가 허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의 마음이 열리고 있는,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런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커네이션)의 집과 나의 엄마들이 있으니까.(p396) |
이민 2세 펄이 각오를 다지는 내용이다. 이민자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말해 주는 내용이다. 알로하는 하와이에서 안녕하세요? 정도의 인사말이다. 이 글에서 제목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민자들의 상황이 잘 부각되어서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곳에 던져진 이민 1세들, 이 말을 부르짖으며 얼마나 애타게 소통을 원했겠는가? 얼마나 간절하게 뜻을 전하는 삶을 원했겠는가? 그 아픔이 이 말 속에 전해져 온다. 펄이 만지는 <나의 엄마들>이란 말 속에 알로하는 생명처럼 다가드는 말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팔려간 신부가 되다
버들의 아버지, 강 훈장은 과거에 급제해 몰락한 집안을 일으키고 썩은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초시(初試)에 합격한 후 과거제도가 폐지되었다. 양반이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과거가 폐지되자 그는 갑자기 먹고 살길이 없어졌다. 운 좋게도 소 장사로 돈을 벌어 양반 신분을 산 어진말의 안 부자가 훈장으로 초빙해서 비로소 강 훈장은 곤궁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주천에 보통학교가 생기자 강 훈장은 맏아들과 버들을 보내 신학문을 익히게 했다. 하지만 버들네 가족이 누릴 짧은 행복은 강 훈장이 일제에 대항해 의병 활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고, 이어 맏아들도 길에서 행인들을 괴롭히는 순사에게 대들었다가 말발굽에 채여 세상을 떠나면서 사라졌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여자라는 이유로 버들은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고, 이후 남동생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보며 부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년에 한 두 차례 버들네 집을 방문하던 방물장수 부산 아지매가 사진결혼을 권한다. 먼 나라, 미국의 포와(布?, Hawaii)라는 동네에 사는 9살 연상의 서태완이라는 사내였다. 버들에게는 다행스럽게 단짝친구였던 홍주도 사진결혼을 하기로 했다. 남편의 사별 후 산송장처럼 살아야 하는 과부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부산 아지매 집에서 그녀들은 또 한 명의 사진 신부를 만난다. 수리재 무당 금화의 외손녀 송화였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의병의 딸, 과부, 무당의 손녀라는 핸디캡을 가진 그녀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포와로 가는 이민선에 올랐다.
하와이에서 일한 돈을 고향에 보내 주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방물장수의 얘기와는 달리 하와이에서의 삶은 신랄(辛辣)했다. 사진 결혼은 결혼 상대방의 조건은 물론 외모도 사진 속 모습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자유연애 같은 결혼을 꿈꾸는 홍주는 연상의 남자를 선택했지만 막상 남편으로 나온 것은 자기보다 서른한 살이나 더 많은 마흔아홉의 조덕삼이었다. 천대받던 무당 외할머니의 손녀라는 처지에서 벗어나 새 삶을 꿈꾸었던 송화도 허리가 구부정하고 머리카락이 허연, 게다가 게으르고 노름하고 술주정이 심한 박석보가 남편으로 나타난다. 버들은 그나마 사진 속 모습과 똑같은 스물여섯 살 서태완을 만난다.
버들 가족의 정착 과정과 하와이 교민의 삶
하와이는 흔히 외교독립론을 펼친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의 텃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무장투쟁론을 주장한 우성(又醒) 박용만(朴容萬, 1881~1928)가 하와이로 건너가 1913년 1월에 지방자치규정을 제정하여 공포하고, 5월에는 하와이 지방정부로부터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이하 ‘하와이 지방총회’)를 자치기관으로 인정받아 새로운 무장투쟁의 근거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먼저 모든 회원에게 사실상 세금인 국민의무금을 받아 재정을 충실히 하였고, 여기에 파인애플 농장의 도지권(賭地權)을 제공한 박종수 등의 후원을 바탕으로 대조선국민군단(大朝鮮國民軍團)과 군사학교를 창설하였다. 1919년에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에 앞서 하와이에서 사실상의 임시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그러나 1915년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일본의 항의로 특별경찰권이 취소됨으로써 하와이 한인사회의 자치권이 박탈되고 군사훈련이 중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파인애플의 흉작 등으로 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농장주마저 계약을 취소하자 결국 대조선국민군단(大朝鮮國民軍團)은 해체된다. 여기에 그가 하와이 정착을 도와준 의형제 이승만과의 대립은 또 하나의 타격이 되었다. 1915년 하와이 지방총회 총선거에서 박용만계의 김종학이 압도적 표차로 당첨되자, 이승만은 개혁을 명분으로 사실상의 쿠데타를 통해 하와이 지방총회를 장악하여 사조직화하였다. 이로서 무장투쟁을 위해 박용만이 하와이에 마련한 기반은 의형제였던 이승만에게 모두 탈취당했고, 두 사람의 지지자들은 거의 원수가 되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도 박용만 지지자[1919년 3월 이후 독립단]와 이승만 지지자[1921년7월 이후 동지회] 간의 갈등이 여러 차례 묘사되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이미 이승만 지지자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기에 박용만 지지자인 서태완은 이승만 지지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카후쿠(kahuku)에서는 서태완이 관리하던 농장에서 일하던 이승만 지지자들이 이탈하고, 호놀롤루(Honolulu)로 이사한 후에는 서태완이 이승만에게 불리한 기사를 썼다고 해서 이승만 지지자에 의해 테러를 당한다. 끝내 서태완은 박용만을 따라 만주로 가서 통의부(統義府) 의용군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총상으로 다리를 다치고 천식에 걸려 돌아왔다.
버들의 아버지 강 훈장도, 큰 오빠도, 심지어 남편도 독립운동을 위해 스스로의 삶을 던졌다. 이들의 투쟁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을 뒷받침했던 여성들의 희생덕분이었다. 버들의 어머니 윤씨도, 버들도. 그녀들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그녀들에 대한 신뢰가 없었더라면 누가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었을까?
버들은 감히 하올레[=백인]의 일원인 롭슨가의 안마당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그녀가 겪은 수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일본인 재봉소 옆에서 조선 문양의 자수품을 팔았고, 이를 시기한 재봉소의 일본인은 그녀의 아들 정호에게 아들이 대야의 물을 뿌렸다. 갑자기 물벼락을 맞은 아들을 위해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는 그녀를 보면 나라 잃은 백성의 분함과 서러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녀들이 항상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은 아니다. 기혼자라는 사실을 속이고 결혼한 남편을 버린 홍주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버들이 함께 세탁소와 재봉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마치 한겨울에 잠시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것 같아서 미소를 짓게 하는 부분이었다. 누군가에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고 나아가는 삶을 사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아름답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요즘도 결혼 후 스스로의 삶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누군가의 남편, 아내, 아빠, 엄마로 사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제법 많은 이들이 현재의 삶을 희생하고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알고 있다. 하물며 일제 강점기, 아니 1917년에야…….
만약 이야기를 이어갔다면 대하소설이 될 것 같아서였을까? ‘판도라의 상자’ 챕터 이후 작가는 서둘러 화자를 버들에서 펄로 바꾸고 글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버들의 딸로 살아온 펄[=진주]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들이 어떻게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렸는지를 짐작할 수 밖에 없었다. 생략되어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땅에서도 연대를 통해 버티고 뿌리내린 그녀들의 삶에 삼가 경의를 보내게 된다.
요즘 개떡같은 소설들만 읽다가 간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적 갈등을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그닥 돌이켜 보고 싶지 않던 그 시절의 또 다른 삶을 바라보는 일은 나름 의미 있었다.
특히, 이 소설의 가독성이 얼마나 높은지 페이지가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따라 가다보니, 어느덧 막바지에 와 있는 신기한 경험까지. 또, 사진 한 장을 보고 영감을 보고 쓴 것치고는 얼마나 많은 연구와 스터디를 했는지 가의 노고가 글 곳곳에 묻어난 듯하여 읽는 내내 고마움을 느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주 그러지 않는데) 눈물이 핑 돌기도 하였다.
어찌보면...어려운 시절에 정말 제대로된 힘을 보여주는 것이 여성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는 뻔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하와이를 배경으로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없었고, 또 제대로된 고증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소설을 쓸 생각을 하고 써냈다는 것 자체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사진을 보고 이주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은 요즘 동남아 여성들과 결혼하는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다른 것은 그 대상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이고, 같은 점은 가난한 국민일수록 이러한 기가막힌 시츄에이션이 더 많았다는 것. 읽으면서 못내 아쉬웠던 것은... 너무 좋은 소재인데,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같이 그 문화가 더 두드러지게 쓰여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할 줄 알았던 태완과 달이의 사연 또는 송화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다는 것은 살짝 아쉽고.
소위말하는 국뽕(?:나는 사실 이 것의 정확한 의미를 모름)스럽지도 않고...그냥 그 시절을 살아낸 하와이판 '토지'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았고, 살아갔네. 뭐 그런 생각들...그리고 뭉클.
덧붙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요즘 젊은 작가들은 너무 날로 먹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경험이 빈곤하면 공부라도 해야하는데...뭐, 죄다 스타벅스 한구 석에 쳐박혀서 쓴 글들 같으니. 이금이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구력이 조금 된다. 역시~. 천재적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줄창 글만 써온 사람의 내공에 신뢰가 생긴다. 젊은 작가들과 기득권 평론가들이 죄다 망쳐버린 한국문학에 단비가 되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