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가 고발하고자 하는 조국과 동포들의 범죄는 내게도, 세월에도, 역사에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파괴와 죽음에 대해 강인하고 철학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고, 실로 그러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게 인류가 등장한 이래 대부분의 인간이 능숙하게 해온 일이니까(단, 대부분의 인간이 모든 인간은 아니라는 걸 기억하렴). 그러나 파괴를 일삼은 장본인들이 무지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허락할 수는 없다. 그들의 무지가 곧 범죄다.
--- p.23, 「나의 감옥이 흔들렸다」중에서
이 순진한 나라가 너를 게토에 가둔 건, 실은 널 소멸시키기 위해서였다. 내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지금부터 낱낱이 알려 주마.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자 나와 조국 사이에 생긴 분쟁의 뿌리니까.
--- p.25, 「나의 감옥이 흔들렸다」중에서
흑인들이 원하는 건 단지 이 세상에 머무는 짧은 생애의 매 순간 백인들에게 머리를 얻어맞지 않는 것뿐이다. 이 나라의 백인들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을 한참 더 배워야 한다. 그걸 배우고 나면 ─ 그런 날이 당장 내일은커녕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 흑인 문제는 더는 필요하지 않을 테고 따라서 사라질 것이다.
--- p.44, 「십자가 아래에서」중에서
그들에게는 판사와 배심원, 기관총과 법이 ─ 한마디로 권력이 ─ 있었지만 그것은 형사상의 권력으로서 두려움의 대상이되 존경의 대상은 되지 못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허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백인들이 설교하되 행하지 않는 미덕들은 단지 니그로를 복종시키기 위한 또 다른 수단일 뿐이었다.
--- p.46, 「십자가 아래에서」중에서
감각의 각성이 이렇듯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판단으로 이어진다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 p.48, 「십자가 아래에서」중에서
나는 유대인들이 처한 운명과 세상의 무관심에 심한 공포를 느꼈다. 미국이 니그로를 지금까지 한 것처럼 조금씩 마구잡이로 죽이는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말살하기로 결정한다면 이 비통한 시대에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인간적 무관심이 내가 받게 될 몫이라는 걸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독일의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일이 미국의 니그로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을 거라는 확언을 권위자에게 들었지만, 독일의 유대인들도 비슷한 확언을 믿었을 거라는 음산한 생각이 일었다. 미국의 백인들은 서로를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흑인을 대하지 않는다.
--- p.82, 「십자가 아래에서」중에서
매번 〈당신은 대기하라〉는 말을 듣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라. 20세기 중반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자유로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미묘하나 치명적인 마음의 변화는 문명을 파괴하는 주체가 반드시 사악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사악하지 않더라도 주관이 없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p.84, 「십자가 아래에서」중에서
비폭력이 니그로의 미덕으로 간주되는 진짜 이유는 ─ 그 인종적 가치는 별개의 문제이니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 백인들이 자신의 생명과 자아상과 재산이 위협받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 p.89, 「십자가 아래에서」중에서
미합중국은 니그로에게 자유를 줄 만큼 충분히 성숙한 적이 없었다. (...) 어쨌든 미국의 선(善)이란 엉성하고 공허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만일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건 선이 아닌 필요에 의해서다. 그리고 정치적 용어로 필요란 우위를 지키기 위한 양보를 뜻한다.
--- p.122~123, 「십자가 아래에서」중에서
이제 모든 게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할 권리는 없다. 만약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우리가 ─ 여기서 〈우리〉는 한 쌍의 연인처럼 다른 이들의 의식을 깨우거나 그들에게 의식을 가지라고 요구할 의무를 지닌, 상대적으로 의식 있는 백인들과 흑인들을 가리킨다 ─ 머뭇거리지 않고 의무를 이행한다면 인종 문제의 악몽을 끝내고, 우리의 나라를 세우고, 세계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도전하지 않는다면 한 흑인 노예가 성경 구절에서 따온 노래 가사의 예언이 이루어질지어다. 〈신이 노아에게 증표로 무지개를 보이며 가라사대, 지난번은 물이었지만 다음번엔 불이리라!〉
--- p.145, 「십자가 아래에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