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예언 그리고 예언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예언자들의 일차적 주된 임무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부여받은 임무의 본래의 목적은 아니었다. 흔히들 예언자 혹은 예언자란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장래의 일들을 미리 말해주는 점쟁이와 같은 사람으로 연상하곤 한다.5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언자란 “대언자”((代言者), “대변인”(代辯人), “메신저”(傳令者), “사자”(使者) 혹은 “특사”(特使)라 할 수 있다.
--- 「1. 예언서 이해: 에세이」 중에서
궁정 출신의 이사야라든가, 제사장 출신의 예레미야나 에스겔과는 달리 아모스는 양을 치는 목자 출신이었다. 요즈음 말로 하자면, 그는 목축업을 하는 사업가 혹은 비즈니스맨이다. 그렇다면 그는 존경받는 직업과 좋은 수입을 가졌던, 상당히 부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원적인 환경에서 생활한 아모스의 목가적 배경은 그의 글에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농업적 언급들이 그렇다. 그러나 아모스서에 사용되고 있는 고도의 수사법과 탁월한 문체 사용 및 세계정세와 역사에 관한 그의 광범위한 지식 등은 그가 결코 무식한 농부나 평범한 목자가 아니었음을 반증한다.
--- 「1강 예언자 아모스, 그는 누구인가?」 중에서
아모스 1:2은 아모스서의 “주제 선언”을 담고 있다. 아모스서의 전반적 기조를 놓는 선언이라는 말이다. 아모스서 안에서 아모스의 첫 번째 말씀에 해당하는 이 구절은 분노하고 있는 야웨를 묘사한다. 예언자 아모스를 심판의 예언자, 재앙 선언의 예언자라 특징 지우는 이유도 이러한 아모스서의 주제 선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모스서의 초두부터 매우 음산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해야 한다. 먹이를 움킨 이후 사자의 포효는 이제 먹이를 산산조각 내려는 서주라고 할 수 있다.
--- 「2강 야웨, 부르짖는 사자」 중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아모스의 비난을 종합해보면 이스라엘의 범죄가 얼마나 중대하고 심각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 죄악으로 멍들고 병든 사회였다. 이전의 이방 민족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범죄는 매우 다양하고 실제적이며 교묘하고 치졸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하나님의 심판 신탁을 들어야만 했던 이방 민족들의 죄들은 대부분 전쟁 범죄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범죄들은 다른 민족을 향한 전쟁 범죄가 아니라 자기 동족을 향한 저열한 행위들이었다. 경제적 착취부터 물리적 협박, 정신적 압제부터 성적 착취, 종교적 위선부터 비인간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이었다.
--- 「6강 열국 심판 신탁들(IV)」 중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안녕과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종교적 장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선택 신앙, 출애굽 신앙, 성전, 종교 지도자들, 각종 제의 등이 그것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기관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확신하고 살아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 가운데 계시므로 결코 불행이나 적군의 침입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러한 대중적 신념과 신학에 대해 정면으로 항거하고 도전한다.
--- 「7강 들으라, 이스라엘이여!」 중에서
아모스 4:12에서 이스라엘이 만나기를 기대해야만 했던 “하나님의 오심”은 곧 이스라엘의 죽음을 의미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그러나 자신의 창조를 뒤집어엎듯이 아침을 어둠으로 변하게 하는 무서운 하나님의 오심(신의 현현)은 이스라엘에게는 곧 파멸을 의미한다. 그분이 오시는 날은 “야웨의 날”이다. 그날은 대중적 신학이 주장하고, 직업적인 예언자들이 전파했던 그런 행운의 날이 아니다(암 5:18ff.). 하나님이 심판주로서 파멸과 재앙을 가지고 오시는 소리를 들었던 예언자 아모스는 이제 애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말을 들으라. 아니 너에 대해 곡하는 이 “애곡 소리”를 들어보라”(암 5:1).
--- 「10강 이스라엘을 위한 애가」 중에서
아모스가 후대에 아모스서라 불리는 글을 쓰고 있었을 때 그는 이미 북이스라엘의 벧엘에서 추방된 후(참조. 암 7:10-17) 남유다로 돌아와 있었을 때였다.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글로 남기려고 한 목적은 단순히 북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남유다를 포함한 “온 이스라엘”, 좀 더 확대해서 말하자면, 앞으로 올 모든 이스라엘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그것을 기록했다.
--- 「12강 은밀한 미소를 짓는 안일한 자들이여!」 중에서
벧엘 성소를 책임지고 있는 제사장 아마샤는 자신의 주인이 여로보암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는 훈련 대신에 지상적인 임금의 명이나 눈치를 보는 위인으로 묘사된다. 그는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소명감을 상실한 채 이제는 생존과 안전을 위한 방편으로 성직을 수행하고 있는 자처럼 보인다. 그의 눈은 모든 제사장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율법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아마샤는 사마리아의 궁궐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처럼 지상의 임금을 두려워했으며, 보이지 않는 진정한 왕은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 「18강 두 왕국 간의 충돌」 중에서
지금까지 아모스는 이스라엘 사회 안의 불법과 불의, 뇌물 관행과 약한 자에 대한 착취, 가진 자들의 오만과 약한 자들에 대한 성적 농락 등을 매우 중대한 범죄로 취급했었다. 한마디로 그는 이스라엘 사회의 정의 실천 수준이 얼마나 최저였는가를 폭로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없이 단순히 세속적인 문제로만 치부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신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 정의가 파괴되는 것이나 약자들의 부르짖음이 외면받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분이심을 알기를 원하셨다.
--- 「20강 탐욕스런 종교 위선자들이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