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세상을 너의 시선으로 바라볼게”
책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부터 시작해 열두 곳의 도시와 마을을 열심히 걸으며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담고 있다. 다섯 살 아이와의 여행은 시작부터 달랐다. 오랜만에 만난 이국의 태양과 냄새와 바람을 서둘러 만끽하고 싶은 엄마의 들뜬 마음과는 달리,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 다니는 아이는 유난히 키가 큰 크로아티아 어른들 허리께에 끼어서 숨쉬기도 힘들다. 자그레브의 상징이라는 네오고딕풍의 아름다운 성당부터 봐야 하는데,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동물원이다. 아이가 귀엽다며 빵을 건네주는 아저씨의 친절은 고마우나 담배 피우던 손으로 건네주는 것이 못내 꺼림칙한 엄마와는 달리, 모르는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은 것이 온 마음으로 기쁘기만 한 아이. 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여행하겠다고 다짐하고 떠난 여행이지만,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정말로 여행이 다이나믹해지고 즐거워지는 순간은 기존의 나를 버리는 순간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어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니 자꾸 엄마의 시선,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고 있었다."--- p.42
“믿어주는 만큼 쑥쑥 크는 아이”
아드리아해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크로아티아는 버스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다. 덕택에 웬만한 곳은 다 버스로 연결되지만, 아이와 함께 움직이자니 버스 기다리고 갈아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 결혼 전에 배낭 하나만 지고 낯선 나라를 제집처럼 쏘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엄마는 매사에 의심과 걱정이 앞선다. 의도한 자유일정은 엄마의 ‘준비 부족’으로 연결되고, 아이를 위해 불편을 최소화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사소한 이유로 아이와도 티격태격, 그러나 아이는 이쯤에서 우리 헤어져서 각자 길을 가자고 말 할 수도 없는 상대. 아이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것을 알아 가는지, 엄마가 콜록거리면 제 작은 점퍼를 벗어 주고 엄마가 숙소를 못 구해 동동 거리면 엄마의 손을 꼬옥 잡아 주며 기운을 북돋아 준다. 누가 다섯 살 아이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뜨악한 표정을 지었을까?
“그 작은 아이를 데리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 수 있겠냐고, 길 위에서 내내 징징거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잘 따라와 줄 거라는 믿음, 함께 좋은 시간을 만들어갈 거라는 믿음 속에 아이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쑥쑥 커간다. 믿는 만큼 세상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믿는 만큼 아이는 커간다.--- p.77
“비로소 아이와 나란히 걷게 되다”
아드리아해의 투명한 블루, 끝없이 이어지는 로비니의 골목길, 안개에 갇힌 천공의 섬 모토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두브로브니크가 아이에게 다 무슨 소용이랴. 다섯 살 아이에게 여행은 놀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처음 만나는 새로운 놀이다. 아이는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가지고 게임을 만들고 게임을 즐기고 그 게임을 공유한다. 아이가 만들어내는 놀이의 무궁무진함이 놀랍다. 저자는 그런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혹시나 지금까지 아이에게 너무 많은 장난감을 사준 과한 부모는 아니었는지 반성한다. 익숙한 것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진정한 여행이란 속도와 반비례 한다는 것도, 아이와의 여행에서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비로소 아이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와 같은 보폭으로 천천히 한 발 한 발. 그랬더니 모든 것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p.260
“나도 매일매일 기뻤어”
33일간의 크로아티아 여행을 아이는 어떻게 기억할까? 아이의 긴 인생에서 다섯 살의 크로아티아는 어쩌면 꿈속의 한 순간으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꿈속에서 아이는 성당의 멋진 스테인드글라스와, 아드리아해로 지는 저녁노을과 골목길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와 제 빵을 나눠 줬던 물고기들과 아쉽게 헤어진 친구들을 볼 것이다. 엄마의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나라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만 먹으면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고 모르는 사람과도 선물은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며 낯선 이들과의 짧은 인사도 즐겁다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서 인지하게 된다면, 크로아티아에서의 33일은 엄마와 아이에게 더 바랄 것이 없는 시간이었으리라.
“자라면서 아이는 세상의 무수한 일들과 마주치겠지요. 그때마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와 배짱과 여행 중에 제가 엄마에게 장난처럼 했던 말, “안 해보고 어떻게 알아~ 일단 해봐야
지 엄마.” 그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