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행자가 라오스를 숨어 있는 보석이라고 하였을 때, 길동무가 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여행자는 남쪽으로 내려갔고, 나는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는 무더운 아라비아 해변의 열기를 견뎌내며 걸었고, 나는 히말라야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그가 라오스 승려들의 탁발행렬을 따라가며 합장하였을 때, 나 또한 티베트 승려들의 행렬을 따라가며 합장하였다. 그가 보내온 소식에서 라오스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들릴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Prologue」중에서
힌두교는 애초에 브라흐마를 믿는 브라만교에서 비롯됐다. 또 브라흐마를 모시는 사제를 브라만 계급이라 하여 신과 인간 사이에서 가교할 수 있는 위치이며, 사회적으로 매우 높은 계급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브라흐마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나 신도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창조와 보존과 파괴에 대한 역할에서 창조를 담당한 브라흐마는 세상이 이미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제 더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세상을 지켜달라고 비슈누에게 빌고, 세상이 파괴되지 않도록 시바를 숭배한다.
---「너를 만들었다 해도 너는 내 것이 아니다」중에서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일본 불교는 우리나라와 달리 장례 의식을 무척 중요시했다. 우리나라도 납골을 절에 모시기도 하지만, 대중을 위해 법회 등도 열면서 포교와 수양의 장소이기도 하다. 반면, 일본의 사찰은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고 제사를 하는 장소 성격이 강하다. 이런 일본의 불교문화는 토착 신앙인 일본 신도와 결합하여 장례문화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신도는 조상과 자연을 모시며 숭배하는 일본 민족 신앙으로 주로 제사 중심의 종교적 특징이 있다. 특히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사에서 참배를 드리기도 한다.
---「카미사마, 호토케사마」중에서
한스는 유일신을 믿는 다른 교인들과 달리 다른 종교를 바라보는 사고가 유연했다. 아마도 힌두교 국가에서 살아가는 소수 종교인으로서의 한계를 체감하고 그 사회 속에서 생존하는 방편이리라. “힌두교나 기독교 모두 사람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고, 절대자 신을 믿지. 두 종교 모두 신에게 가까워지려고 노력해. 힌두교는 명상을 통해서, 기독교는 기도를 통해서 신께 다가서려고 하지.”
---「믿음과 소망, 사랑. 그중 제일은 사랑」중에서
문학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 여자는 그저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모든 인간은 신으로부터 사람을 받는다고 말하는 힌두교의 구루도 여자는 끼어들지 못했다. 자이나교조차 여자는 수행자를 유혹하는 존재로 여겨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독교도 예수님 품 안에서 모두 하나라고 하지만, 정작 여성 사제는 없다. 결국,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사회문화적인 젠더 차별이었다.
---「신은 남자를 먼저 만들었을까?」중에서
보트를 탔던 강가에는 여행객과 순례자와 사두들로 가득 메웠지만, 반대편은 모래벌판 황무지였다. 바람에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오두막은 고사하고 풀 한 포기 나지 않았다. 강물을 사이로 한쪽은 사람과 건물로 빼곡하게 밀집되어 있지만, 강 건너편에는 모래밭과 황무지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이승과 저승을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도 이승과 저승을 갈라놓은 황천 강이 있어서 그 강을 건너면 저승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갠지스강이 바로 돌아올 수 없는 강, 황천 강이 아닌가 싶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중에서
사람들은 쇠기둥을 등지고 서서 뒤로 팔을 깍지 끼려고 노력했다. 어떤 사람은 억지로 노력해도 안 되자 주변 사람 도움을 요청했다. 한 남자가 그의 어깨를 꺾자 팔이 꺾이는 고통으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뒤에서 구경하던 나도 사람들이 등을 떠밀며 해보라고 하여 얼떨결에 쇠기둥까지 다가갔다. 그들이 하는 대로 팔을 뒤로 돌려 깍지 껴서 쇠기둥을 안았다. 손쉽게 되자 사람들이 손뼉 치며 웃었다. 그중 한 중년 남자가 말했다. “쇠기둥을 뒤로하여 안을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인도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던데 당신은 꼭 인도로 다시 올 거다.”
---「감출 수 없는 눈물, 사라 나무 꽃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