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와 제자도 사이의 혼동은 제쳐 두고, 전도에 돌입했다.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도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제자가 될 것을 권유했다. 이런 움직임은 한껏 고조되었다. 더 나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고, 상황 또한 좋아 보였다. 도중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제자훈련을 받지 않아서’라고 무언의 결론을 내렸다. 혹 누군가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와 그렇게도 싸운 까닭이 여섯 살 때는 단지 회심자였으나, 스무 살 때는 마침내 제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죄의 결박이 은혜의 능력보다 강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은혜가 아니라 행위에 눈을 돌렸다. 실패할 때마다 더 열심히 일했고, 더욱 깊이 책임감을 느꼈다. 어쩌면 더 강한 제자꾼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자도는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알지 못했다. 사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용서와 참된 인정을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적으로 믿어야 했다. 즉 나에게는 제자훈련이 아닌 예수가 더 필요했다.”
---「1장 배가인가 성숙인가」 중에서
“우리는 동료 고백자가 이맛살을 찡그린 그 순간만을 잠시 두려워했고, 이내 죄책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헤어졌다. 공동체는 값싼 은혜만을 구하는 모임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이 모임을 통해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 값싼 은혜를 얻었다. 고백은 회개와 분리되고, 거룩은 반쪽짜리 도덕으로 전락했다. 책임은 인간이 만든 줏대 없는 고백과 값싼 은혜의 짬뽕이 되어 버렸다. 제자도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속빈 강정일 뿐이다. 여기에는 믿음의 싸움이 요구하는 긴급함도,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더없이 중요한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
---「 3장 뒤틀린 동기」 중에서
“성령이 없이는 복음적 거룩도 없다. 도덕이라는, 기독교의 껍데기에는 이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복음적 거룩에는 이르지 못한다. 진정한 기쁨이 당신을 외면할 것이다. 성령의 능력이 빠진 제자도는 절대 제자도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로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임재와 제자도에 동기를 부여하는 성령의 능력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 5장 복음의 그 깊은 근원, 성령」 중에서
"복음은 나를 ‘구원한’ 단 한 번의 사건에 불과하지 않다. 나는 배웠고,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나에게는 매일, 매순간 복음이 필요하다. 복음은 남편, 아버지, 친구, 직원, 관리자로서 살아가는 내 삶의 전 영역을 바꿔 놓는다... 매일,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내게는 이것이 불을 켜는 순간과도 같다. 더 나아가, 나는 이 공동체에서 복음을 보았다. 이 공동체는 불완전하지만 복음에 진실하다."
---「 6장 공동체적 제자도」 중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현재 모습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습대로 받아들이셨다면, 싸워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우리는 새로운 신분으로 싸워야 한다. 진실은 죄를 되풀이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완벽한 삶이 아니라) 변화된 삶을 산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삶의 전 영역에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하고, 부유하며, 깊고, 더 큰 만족을 주시는 분으로 알기 위해 싸울 것이다. 제자는 자신의 구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와 싸운다."
“대학 시절, 나의 제자도는 경건이 중심이었다. 사실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긴 ‘경건’은 그리스도인인 내가 저지른 도덕적 실패를 소리 없이 속죄하는 한 방편에 불과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금식하며,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갈망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종교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다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이렇듯 종교적 행위가 당신의 목적이 되면 위험하다. 당신이 죄에서 돌이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으면, 자신의 도덕성에 근거해 부도덕한 반항에 빠지게 된다. 구원자는 예수님이다.”
---「7장 실천적 제자도」 중에서
“많은 교회가 전체적인 사역에서 복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파이트 클럽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파이트 클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해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사역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파이트 클럽을 제자도를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긴다면 역효과가 난다. 제자들 사이에 퍼진 율법주의와 방종을 고치는 유일한 치료약은 파이트 클럽이 아니라 바로 복음이다. 무엇을 하든, 반드시 복음을 해답으로 삼으라. 더불어 복음이 어떻게 해서 해답인지를 서로에게 꼭 보여 주라.”
---「 8장 복음 중심의 문화, 성숙하며 배가하는 제자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