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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책에 등장하는 인물 충청도 당진 솔뫼마을에서 경기도 용인 골배마실로 ‘안드레아’로 세례를 받고 신학생이 되다 한성에서 마카오로, 머나먼 희망의 길 일 년 만에 도착한 아버지 편지 조선으로 가기 위한 다섯 번의 탐색 여행과 부제서품을 받다 7년 만에 조선 땅을 밟고, 조선 순교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쓰다 가장 먼저 첫 사제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오다 10년 만에 만난 어머니와 부활절 미사 조선을 유럽에 알린 조선전도를 그린 옥중 생활 새남터에 뿌려진 피 이야기를 마치며 작가의 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연보 |
글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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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신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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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마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 서 태어났어. 어머니가 몸이 약해서 걱정이 많았대. 아기 낳는 진통이 시작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는 천주님께 아기를 위한 기도를 드리느라 눈을 꼭 감고 있었지. 온 가족의 축복 속에 태어난 대건은 어릴 때 이름은 재복(再福)이고, 대건(大健)은 신학생 때 개명한 이름이야. 김해 김씨 안경공파인 김대건은 1814년에 순교한 증조할아버지 김진후와 1816년에 순교한 작은할아버지 김종한이 있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어. --- p.10~11 모방 신부는 재복을 보고 놀랐어. 침착하고 의젓한 데다 키도 훤칠하고 멋지고, 천주교 교리도 잘 알고 있어서 말이야. 재복은 은이공소 마당에 무릎을 꿇었어. 모방 신부가 물었어. “참 영특한 아이로다. 세례명은 생각한 것이 있느냐?” “‘안드레아 ’ 란 세례명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 세례명이 안드레아셨습니다.” 모방 신부는 놀라며, 유진길 역관을 통해 재복에게 물었어. “혹시, 사제가 될 생각이 있느냐?” 모방 신부의 말에 재복과 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서로 마주 보았어. 사제가 되려면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 공부도 해야 하고, 또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뜻이니 말이야. 아버지 김제준은 아들이 사제가 되는 것을 누구보다 바랐지만, 목숨을 바치는 성직자의 길을 환영만 할 수는 없었어. --- p.34 김대건 부제는 며칠 동안 침묵 속에서 온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렸어. “주여, 내 천주여, 나를 도우시는 이여, 어려운 때에 저를 가르쳐주신 이여,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하오리까.” 드디어 사제 서품식이 1845년 8월 17일 주일에 상하이에 있는 김가항(金家巷)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의 집전으로 이루어졌어. 한국인 첫 사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야. “천주님, 감사합니다. 조선에서 첫 사제가 탄생했습니다.” 서품식에 참여한 천주교 교우들은 감사와 찬미의 감동을 눈물로 대신했어. “천주여, 다시는 이 옷을 벗지 않겠습니다.” 대건은 엎드려 울었어. 페레올 주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꼭 안아주었어.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24일 주일에 상하이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만당(萬堂)이라는 소신학교에 있는 성당에서 사제로서 첫 미사를 봉헌했어. 다블뤼 신부의 보좌로 서양인 신부 네 사람, 중국인 신부 한 사람, 조선에서 목선에 탑승한 교우들과 만당 성당 신자들이 함께 어울린 작은 미사였어. 우리나라 사제가 올린 뜻깊은 미사였어. 미사를 드리는 동안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 --- p.104~106 조선 최초의 사제라는 호칭 외에 뛰어난 지식인에다 지도 ‘조선전도’를 만든 유능한 지리학자, 유럽 대학 첫 유학생, 5개 국어 능통자, 최장 거리 도보 여행자 등 김대건 신부를 지칭하는 말은 여러 가지야. 거기다 상대방을 감동하게 하는 말솜씨가 어릴 때부터 뛰어나서 어른들과 대화도 곧잘 통했다고 해. 책을 좋아한 독서광이었고.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로 멋진 조선인을 대표했지. ‘조선전도’는 유럽의 신학문을 처음으로 접했던 김대건 신부가 로마자로 지명을 표기해 조선을 해외에 알리게 된 첫 번째 지도라는 점과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한 것에서 의미가 커.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조선전도를 곧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 「이야기를 마치며」 중에서 |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한국인 최초 가톨릭 사제로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조선전도’ 지도를 제작해 유럽 사회에 조선을 알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부록으로 김대건 신부의 연보와 생가, 라틴어 친필 편지, ‘조선전도’ 지도와 초상화 이미지 수록 * 이 책은 12월 17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교회인가'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서양 문물과 사상을 접한 세계인이자 지식인으로 자신의 신앙과 신념, 앎을 끝까지 실천한 김대건 신부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맨 처음 신학생, 유학생으로 서양 문물을 접하고 배운 종교인이자 지식인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청나라에서 서학(천주학)과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격변기에 접어든 1800년대 천주학(천주교)을 받아들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집안 어른을 통해 어릴 때부터 천주학을 통해 천주교 신앙과 평등정신과 박애주의를 알고 배웁니다. 또한 자연스레 서양 문물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는 16살이 되는 1836년 사제가 되기 위한 신학 공부를 위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납니다. 김대건 신부는 마카오신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비롯해 라틴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서양 학문과 지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베이징, 마카오, 필리핀, 상하이, 훈춘, 랴오둥(요동) 지역 등 2만 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을 하면서 세계사에 남을 역사 순간을 목격하였고, 그 지역의 문화와 특이한 점들을 기록과 편지로 남깁니다. 이처럼 김대건 신부는 다양한 경험을 한 세계인자 여행자,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보좌 신부가 되는 부제서품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잠시 한성에 머물 때, 천연두로 아이들이 죽거나 얼굴에 남은 흉터에 힘들어하자 프랑스 신부에게 천연두 예방과 치료약을 요청해 아이들을 치료하고,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도움을 줍니다. 이는 김대건 신부가 발전한 서양 의학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대건 신부는 지도 ‘조선전도’를 만들어, 조선을 유럽 세계에 알렸습니다. 조선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도 16년 먼저 만들었으며, 외국인들도 알아볼 수 있게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를 그려 넣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지도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어릴 때부터 천주학을 통해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같은 동네 동무들에게 작은 것도 나누어 주려고 했고, 노비나 상민들에게도 하대하지 않고 똑같이 대했습니다. 계급사회와 차별이 심했던 조선 사회에서 ‘평등’이라는 가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는 옥에서 작성한 ‘회유문’ 말머리에 나오는 ‘우리 벗님들!’라는 문구에서 잘 드러납니다. ‘벗’이라는 말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차별과 계급사회인 조선에서 하느님 신앙을 통해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말하며 있으며, 이는 오늘날 평등사상과도 이어집니다. 김대건 신부는 자신이 배운 서양 지식과 천주교 신앙을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놓지 않고 실천하였습니다. 순교한 뒤에 성인으로 시성 되었습니다. 이런 실천적인 삶을 살다간 성 김대건 신부는 오늘 우리 어린이에게, 어른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인물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순교자의 삶과 신념을 실천하고, 앎을 함께 나누려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는 김대건 신부 김대건 선부는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김가항(金家巷)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으로 돌아와 1년 1개월 동안 사목활동을 합니다. 이 시기 조선은 외세 문물을 막고 있었으며, 천주교(천주학)를 박해하고 탄압했던 엄혹한 시기입니다. 김대건 신부가 프랑스 신부들이 조선에 들어오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제작한 지도 ‘조선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6년 앞서 만들었습니다.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하였고, 무엇보다 독도를 ‘Ousan’으로 표기하여 조선의 영토로 표시하였습니다. 조선전도는 프랑스 신부들을 통해 조선이 유럽에 알려지는 계기도 된 지도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어릴 시절을 보낸 은이마을을 중심으로 사목활동을 하다, 인천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1846년 9월 17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를 합니다. 체포되어 옥에서 모진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주변에 천주교를 알리고, 세례를 주며 자신의 신앙심과 신념을 놓지 않고 순교자의 삶과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을 끝까지 실천하였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한국인이자 우리나라 가톨릭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에 맞춰 펴내는 김대건 신부의 삶을 담은 인물 이야기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조선전도’를 제작해 유럽 사회에 조선을 알렸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삶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입말체의 글과 파스텔 느낌의 잔잔한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책 뒤에는 부록으로 김대건 신부의 연보와 생가, 라틴어 친필과 조선전도 사진을 김대건 신부의 삶과 생애를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어른 누구나 함께 보며 이야기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인물 이야기책입니다. |
글이 참 따뜻합니다. 한강 새남터에서 효수형으로 돌아가신 순교자의 이야기인데도 말입니다. 어릴 적 작가님은 공소 마을에서 넉넉한 사랑을 받으며 사셨더군요. 그제야 이유를 알았습니다. 슬픈 순교자의 품이 이렇게 그립고 포근하다고 여겨지는 건 작가님의 상속된 사랑이 글 속에 밴 까닭입니다. 솔뫼성지 신부일 때 소나무 숲에서 뵈었던 작가님의 모습 그대로 따뜻한 김대건 신부님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성태 (요셉 신부, 대전교구 내포교회사연구소장, 전 솔뫼성지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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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솔뫼마을에서 태어난 시골 소년 재복이가 어떻게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되고 또 순교했는지를 마치 영상을 보듯 여실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온갖 박해 속에서도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을 전도하고 평등과 박애를 실현하고자 했던 김대건 신부의 숭고한 지향이 작가 특유의 모성적 문체를 통해 더욱더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 문삼석 모세 (작가,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 아동문학가, 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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