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불교는 핍박과 비관용으로 점철되는 유학자 관료 집단의 신유가(新儒家) 이데올로기적 태도에 의하여 개인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는가 하면, 제도적으로 승단의 감축 및 통폐합 등으로 승가 집단 전체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위축을 강요당하였다. 따라서 불승들의 사회적 지위가 격하되어 사회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져 산속에 스스로 은거하거나 피동적으로 격리되는 가운데 흔히 산사(山寺)에 거하는 산승(山僧)이라 불리면서 종내에는 반상(班常)이라는 전통적 신분의 구분에도 끼지 못하는 최하층 팔천(八賤)의 하나로 전락하고, 도성에도 출입하지 못하는 등 수모를 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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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己和, 1376-1433)의 속성은 유(劉)씨이고 본향은 중원(中原)이다. 1376년(고려 우왕 2년)에 태어나서 성균관 유생으로 지내다가 1396년(조선 태조 4년)에 출가하였으며, 1433년(세종 15년)에 죽으니 세수 58세, 법랍 38세이다. 처음 출가해서는 법명을 수이(守伊), 법호를 무준(無準)이라 하였지만 1420년 법명을 기화(己和), 법호를 득통(得通)으로 바꾸었다. 함허(涵虛)는 당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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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인 신유한이 유정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분충서란록』의 발문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토로한 그의 불교관이다. 그는 유정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불교가 세상과 유리된 종교가 아니며 부처의 가르침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의 이론을 지나치게 유가적인 입장에서 견강부회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불교가 유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나마 세상과의 의사소통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만은 의미 있게 받아들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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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경사스러운 예는 가볍게 하더라도 흉한 예는 더욱 중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어찌 정을 잊어버리고 그 예를 끊을 것인가? 비록 우리 불가에서는 고요함[寂滅]을 즐거움으로 삼아 왔지만, 태어나고 죽는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각 지역의 계율을 따른 이후에야 그 타당함에 부합하였다. 그런데 불가에서 상례의 경우에 우리나라에는 그 뿌리가 없어서 큰 스승이 열반에 들면 예에 많은 잘못됨이 있어서, 죽은 스승을 모시는 무덤이 일반 무덤과 같고 슬퍼하는 것도 세속의 경우와 같아서 좋은 선업을 낳는 바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옛 도와 관례를 따르지도 않으니 진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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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형체를 지닌 사물은 이름은 있되 그 실체가 없는 있는가 하면, 실체는 있되 그 이름이 없는 것이 있다. 이름과 실체가 서로 균형을 이룬 이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전해져야 터무니없는 허망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면하게 된다. 훗날 이 누각에 올라 [‘청류’라는] 이름을 좇아 그 실체를 요구하는 자는 단지 맑은 물이 흐르는 누각으로써만 볼 일이 아니라 돌이켜 제 마음의 청류를 구하면 누각의 맑음이 마음의 맑음이요 마음의 흐름이 누각의 흐름이리니, 누각과 나 사이에 어찌 간극이 있겠는가? 이른바 “하늘과 땅이 손가락 하나이고 만물이 한 필의 말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 이로써 누각을 깨끗이 하는 것이 내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만 못하고 누각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이 내 마음에 흐르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겠다. 나의 마음이 맑아진 이후에야 누각의 맑음이 나에게 있으니, 내가 또한 누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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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가에서는 이기(理氣)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에 대해서만 말한다. 대개 ‘마음’이란 모두가 공유하는 물건이라 나 혼자서 사사롭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마음은 둥글고 가득 차고 깨끗하여 태허의 텅 빈 모습과 닮았고, 물결이 치는 바다와도 닮았다. 본성이 곧 일체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일체의 모습이 될 수 있다. … 한마디로 말하면, 따오기가 흰 것도 마음이며 까마귀가 검은 것도 마음이다. 한마음이 이미 밝아지면 모든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돈오(頓悟)’라는 말이 있게 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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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예로써 인의를 세우니 이것이 없으면 무너지고, 불교는 계율로써 정혜(定慧)를 유지하니 이것을 버리면 곧 불교는 망한다. 그러므로 인의에서 예를 버린 사람과는 더불어 유교에 대하여 얘기할 수 없고, 정혜에서 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와는 더불어 불교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리를 깨달아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잠시도 계율에서 어긋날 수 없다. 그런데 계율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재가신도에 해당되는 것과 막 출가한 사미에게 해당되는 것, 그리고 비구니에게 해당되는 것과 비구에게 해당되는 것, 그리고 보살에게 해당되는 계율 등이 있는데, 여러 종류의 계율을 총괄하여 삼학(三學)이라는 강령으로 삼고 나누어서 대승의 계율과 소승의 계율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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