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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여행자

[ 양장 ]
리뷰 총점9.4 리뷰 31건 | 판매지수 876
베스트
독일소설 top20 5주
정가
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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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08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16g | 127*193*28mm
ISBN13 9788934991946
ISBN10 89349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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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마르크.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이 정도면 나라를 뜰 수도 있을 거야. 아직 뜰 수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는 떠날 생각이 없었다. 재산을 지키고 싶었다. 이렇게 졸지에 뺏길 순 없어. 암, 안 되지.
다 잘된다면 내일 베커가 8만 마르크를 가지고 올 거야. 그는 희망에 부풀었다. 거기에 더해 집값으로 1만 마르크를 현금으로 받아. 운이 좋으면 손해를 좀 보더라도 저당권을 팔 수 있을 테지. 질버만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여전히 꽤 부자야. 그는 이런 결론을 냈다. 가난한 반유대주의자들은?가난한 반유대주의자들이 정말 아직도 있다면?온갖 단점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유대인이랑 처지를 바꾸려고 할 거야. 이런 상상을 하자 마음이 좀 가벼웠다. 그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해봐야 해. 하지만 그들이 왜 처지를 바꾸겠어? 돈만 빼앗으면 부유한 반유대주의자가 되는데.
--- p.50

객실에 도착해 다급하게 문을 잠그고, 생각에 잠기려 침대에 몸을 던졌다. “유대인이 맞더군요.” 싸늘하게 설명하는 종업원 목소리가 들렸다. “유대인이 맞더군요…….” 종업원에게는 물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유대인 체포란 손님이 주는 팁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다반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유대인이 체포됐다. 유대인이라서.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종업원이 볼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기 묵으면 안 되겠다. 질버만은 이렇게 결심하고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넓은 객실을 둘러봤다. 여기서는 절대 자면 안 돼. 어쩌면 한밤중에 나를 침대에서 끌어낼지도 몰라. 그러는 와중에 소음이 약간 발생하면 투숙객들이 깨서 문을 열고 룸메이드에게 무슨 일인지 물을 테고, 그러면 아마 이런 대답을 들을 것이다.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방금 유대인 한 명이 체포됐어요. 그게 다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아, 그렇군요……. 그런데 체포하면서 이렇게 요란스러워야 하나요?”
--- p.67

“저는 가게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노래 부르며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흐느껴 울고 싶을 때도 가끔 있었어요. 정말입니다. 모두 오래전부터 알던 지인이었어요. 전우 모임, 카드놀이 클럽, 동업조합 등이었죠. 저쪽은 모두 예전 친구인데, 당신은 홀로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과 뭔가 함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신이 그들 중 한 명을 만나면, 그가 모른 척하는 모습을 안 보려고 당신이 먼저 고개를 돌린다고 말이지요. 저는 어디로도 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또 속을 끓일 거라고 늘 생각했지요. 저 아이와는 함께 학교에 다녔고, 또 다른 사람과는 직업교육을 받았거나 단골 술집에서 같이 술을 마셨는데, 지금은? 지금은 당신이 형체도 없는 공기가 된 겁니다. 나쁜 공기요!”
--- p.170

“그래요. 자, 이제 당원증을 보여주시오!”
뚱뚱한 남자의 마지막 말은 날카로운 명령이었다. 노동자는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당원증을 꺼내 상대에게 내밀었다.
뚱뚱한 남자는 당원증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소. 앞으로는 행동 조심하시오! 당신에게도 적용되는 조언이오!”
그는 여자에게도 말한 뒤 서류 가방을 들고 객실을 나갔다.
모두 놀라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마터면, 하마터면. 질버만은 생각에 잠겼다. 심장이 쿵쿵 두방망이질했다. 위험이 가장 적다고 믿기만 하면 언제나…….
--- p.225

“당신, 독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난민이에요. 유대인이라고요. 체포될 위기였습니다. 나를 강제수용소에 가둘 거예요.”
“우린 당신이 여길 통과하게 둘 수 없습니다. 따라와요!”
남자가 질버만의 팔을 잡고 숲으로 데리고 가려 했다.
질버만을 발견한 경찰은 둘이 이야기하게 두고, 질버만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질버만은 큰길에서 멈춰 섰다.
“가지 않을 겁니다! 여기 남겠어요! 당신들은 이럴 권리가 없어요. 이러면 안 됩니다! 지금 나는 자유국가에 있는 겁니다!”
“당신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쫓기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벨기에로 올 수는 없습니다!”
--- p.242

기차에 유대인이 너무 많군. 질버만은 생각에 잠겼다. 이러면 우리 모두 위험해질 텐데. 당신들,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평화롭게 살수 있었을 거라고. 당신들 때문에 내가 불행 공동체에 빠져버렸잖아! 나는 보통 독일 사람과 다른 점이 전혀 없지만, 당신들은 정말 다를지도 몰라.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고. 그래, 당신들이 없었다면 나는 쫓기지도 않을 거야. 평범한 시민으로 살 수 있을 텐데. 당신들 존재 때문에 나는 뿌리 뽑힐 거야. 우리는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데 말이지!
--- p.251

질버만이 일어나서 말했다.
“여기 있지 않을 거야. 떠날 거라고……! 7시에 아헨 행 기차가 떠나……. 8시 10분엔 뉘른베르크 행이……. 9시 20분엔 함부르크 행이……. 10시엔 드레스덴 행이……. 기차가 아주 많지……. 수없이 많아……. 난 떠날 거야!”
“그거 너 속임수지.”
슈바르츠가 확신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와. 같이 소리치자. 유대인 나가라…….”
--- p.369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안네의 일기》보다 먼저 집필된, 유대인 박해의 증언
“세상은 잊었다. 우리가 시민이던 시절을.”


1938년, 나치 돌격대와 지지자들이 유대인 상점을 깨부수고 약탈한 ‘수정의 밤’ 사건이 벌어진다. 더 놀라운 것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뺏고 체포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사실이다.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인 오토 질버만은 하루아침에 도망자로 전락한다. 위험이 목전에 닥칠 때까지도 질버만은 이렇듯 야만적인 일이 20세기 유럽에서 벌어진다는 걸 선뜻 믿지 못한다. 그러다 나치 지지자들이 자신의 집에까지 찾아오자 급히 재산을 처분해 도주에 나선다. 그가 믿는 것은 유대인 특징이 거의 보이지 않는 얼굴과 여행 가방에 든 거액의 현금. 출국의 기회를 잡을 때까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질버만은 기차를 타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끝없이 티켓을 끊어독일을 배회한다. 기차에서 그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난다. 독일군 장교부터 열성 나치 지지자, 침묵하는 시민, 도주로를 찾으려는 유대인 수공업자, 혼란을 틈타 사업 기반을 마련하려는 기회주의자까지……. 결국 질버만은 사업 파트너였던 아리아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독일에 갇힌 채 서서히 미쳐간다.

사회에서 배제된 인물의 눈으로 당대 풍경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가치 있지만, 《여행자》의 주제의식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저자 보슈비츠는 오토 질버만을 전형적인 약자나 희생자로 그리지 않는다. 아니, 질버만이야말로 작중의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탄압을 받지만, 박해가 시작되기 전에는 자본가로서 기득권에 속했고, 도망치는 중에도 다른 유대인들과 자신이 엄연히 다르다고 여기며 내심 그들을 책망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과 사회의 맨얼굴을 응시하는 시선은 《여행자》의 작가 보슈비츠 자신의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보슈비츠의 아버지도 주인공처럼 부유한 사업가였으며,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까닭에 보슈비츠 역시 개신교 환경에서 성장했다. 유대인으로 분류되어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계라는 사실은 그의 가족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공 오토 질버만이 사회를 보는 시각에는 자전적 요소가 짙게 담겨 있으며, 그 덕분에 독자는 사회적 낙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집필 후 80년이 지나 비로소 모국어로 출판된 고발문학
오늘의 차별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다


독일을 탈출한 보슈비츠는 가까스로 영국으로 망명했지만, 독일 국적자라는 이유로 적국인(敵國人)으로 분류되어 오스트레일리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용소 생활 끝에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에 탔지만, 이 배가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아 침몰하면서 사망한다. 《여행자》는 보슈비츠 생전에 영국과 미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나 정작 저자가 모국어로 직접 쓴 원고는 수십 년간 잠들어 있게 되었다. 전후 독일에서 이 소설을 출간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소설가 하인리히 뵐이 《여행자》를 출간하고자 출판사에 추천한 적 있으나, 부담을 느낀 출판사 측에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여행자》는 집필 후 80년이 지난 2018년에야 보슈비츠의 친척과 연락이 닿은 출판인의 손을 거쳐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독일의 어두운 역사를 유대인의 시각으로 담아낸 최초의 소설로서 문학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자국의 치부를 다룬 작품임에도 독일 언론과 독자의 찬사를 받았다. 2019년에는 보슈비츠를 기리는 걸림돌이 베를린에 설치되기도 했다.

8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역사적 사실과 내재된 본질을 생생히 전하는 《여행자》를 과거의 이야기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전쟁을 피해 도망친 난민이 줄을 지어 있으며,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못하고 공항에서 기약 없이 심사를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의 삶 역시 전쟁 전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했으리라. 또한, 2020년대의 우리는 팬데믹 사태를 맞아 타인을 배제하고 낙인찍는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여행자》의 주인공 오토 질버만은 안부를 묻는 지인에게 이렇게 답한다. “생각하는 습관을 버렸어요. 그게 모든 것을 견디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집단적인 두려움 앞에 인간은 자신과 타인을 구별해내고픈 충동을 느끼고, 그 충동은 쉬이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 책의 옮긴이 전은경은 ‘옮긴이의 말’에서 독자에게 묻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우리’라는 울타리와 그 너머의 타인을 어떻게 구분 지으며 살고 있을까.’ 질버만이 체포당할까 두려워하며 ‘인정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랐듯, 우리 사회의 약자들 역시 행동하는 양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회원리뷰 (31건) 리뷰 총점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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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어디에도 머물 수 없는, 끝없이 계속 움직이는 『여행자』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블* | 2021.03.29 | 추천12 | 댓글1 리뷰제목
여행자라고 하는 건 모름지기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돌아올 장소가 없는 사람을 여행자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원히 떠도는 사람. 그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없는 사람. 마땅히 돌아올 장소가 없다면 그의 앞에 죽음 외에 뭐가 있을까.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던 ‘수정의 밤‘ 무렵 사업가인 한 유대인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그 순간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리뷰제목

여행자라고 하는 건 모름지기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돌아올 장소가 없는 사람을 여행자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원히 떠도는 사람. 그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없는 사람. 마땅히 돌아올 장소가 없다면 그의 앞에 죽음 외에 뭐가 있을까.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던 수정의 밤무렵 사업가인 한 유대인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그 순간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여했던 오토 질버만은 사업가이자 유대인이다. 기독교로 개종한 그는 스스로 독일인이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유대인으로만 본다. 다만 그는 이름을 빼고는 아리아인의 외모를 가졌다. 그는 아들이 있는 프랑스로 가고 싶다.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거주권을 알아보라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리아인은 터무니없이 싼 값으로 집을 사려하고, 동업자인 아리아인은 그를 배신한다. 아내는 아리아인 오빠에게로 향하고 돈을 여행 가방에 넣고 그는 독일을 떠돈다. 기차에서 군인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일등칸을 탔으나 많은 유대인들이 일등칸에 있는 걸 보고 그는 이등칸과 삼등칸을 헤맨다.

 

어디에라도 숨고 싶은 그는 사업상 자주 다녔던 호텔에 가지만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다. 가진 돈은 많지만 그는 어디에도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없었다. 그와 관계했던 독일인들은 이제 그가 유대인이라며 피한다. 아내의 오빠가 힘들 때 보증을 서 주었어도 자신의 여동생은 자기의 집에서 머물 수 있으나 유대인인 그에게 내줄 방은 없다고 거절한다.

 

 

 

오토는 돈이 필요한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 벨기에의 국경을 넘으려고 하지만 벨기에의 경찰에 발각되어 다시 독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가 내민 뇌물을 제발 받아주고 그를 구해주길 바라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을 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숲을 넘어 다시 돌아온 그에게 독일은 그가 살아온 터전이 아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배제했고 유대인에게 독일은 그저 넓은 강제수용소에 지나지 않았다. 유대인이면서 다른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조차 그가 얼마나 아리아인이고 싶은지 알 수 있다.

 

기차에 유대인이 너무 많군. (중략)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 거라고. 당신들 때문에 내가 불행 공동체에 빠져버렸잖아! 나는 보통 독일 사람과 다른 점이 전혀 없지만, 당신들은 정말 다를지도 몰라.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고. 그래. 당신들이 없었다면 나는 쫓기지도 않을 거야. (251페이지)

 

독일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독일인이다. 하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청소의 대상이 되었다. 유대인인 오토 질버만이 기차를 타고 독일을 헤매는 중 그는 유대인들을 경멸하고 자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자기가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다른 하층민들과 달리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많은 부를 누리고 있었다. 그가 살고 있던 집은 11만 마르크에 달했다. 보통 젊은이들이 결혼하는데 천 마르크가 있으면 어느 정도 가능한 돈이었다는 점이다.

 

 

 

작가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가 유대인 박해 사건인 수정의 밤소식을 들은 후 쓴 두 번째 소설이며 영국과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가 80년 만에 다시 태어난 작품이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보다 먼저 쓰인 작품으로 보다 직접적인 유대인 박해 사건과 그것을 겪는 사람의 마음들을 볼 수 있었다.

 

독일의 아픈 역사를 유대인의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작품으로 오토 질버만이 겪는 그 모든 감정에 공감하며 읽은 작품이었다. 절망뿐인 상황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어 보는 그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수많은 질문을 건네는 장면에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가 애타게 머물 곳을 찾을 때 무심했던 사람들이 어디 그들뿐일까. 지금의 우리도 다르지 않다는 게 슬플 뿐이다.

 

#여행자 #울리히알렉산더보슈비츠 #비채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소설 #소설추천 #독일소설 #독일문학 #모던앤클래식 #비채모던앤클래식 

1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2 댓글 1
파워문화리뷰 《여행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는 것.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지* | 2021.03.30 | 추천5 | 댓글0 리뷰제목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융페른슈티크에 도착한 그는 알스터 강으로 다가가서 잿빛 강물을 잠시 노려봤다. 어둡게 흘러가는 수면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을 보다가 심호흡을 했다. 차갑고 축축한 바람에 머리가 맑아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질버만은 혼잣말을 했다. 어려움에 처하고, 귀찮은 일을 당하는 건 맞아. 하지만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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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융페른슈티크에 도착한 그는 알스터 강으로 다가가서 잿빛 강물을 잠시 노려봤다. 어둡게 흘러가는 수면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을 보다가 심호흡을 했다. 차갑고 축축한 바람에 머리가 맑아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질버만은 혼잣말을 했다. 어려움에 처하고, 귀찮은 일을 당하는 건 맞아. 하지만 다시 편안해질 거야. 그냥 이주해도 되고. 사실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니야. 살아 있으니까. 그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으니까.      p.83

 

기차를 배경으로 한 표지 이미지에 '여행자'라는 제목을 하고 있지만, 이 작품 속에서의 '여행'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 외에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혹은 어떤 위험을 겪게 되더라도 결국은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든든한 보험처럼 우리를 심리적으로 지켜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떨까. 끝없이 계속 움직여야 한다면 말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질버만은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도르트문트로, 아헨으로 독일 전역을 돌아다닌다.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 여행이라기보다는 그저 기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는 남자. 그는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너무도 피곤하지만, 갔다가 왔다가, 왔다가 갔다가 반복하며 여행하는 동안 자신은 지금 독일에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질버만의 시선이 다시 젊은 노동자를 향했다... 노동과 더 높은 임금과 생존을 위해 쉴 새 없이 싸우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느끼지 못해. 이 사람들은 청춘이 없어. 열네 살이 되면 이미 싸움이 시작되는데 늘 존재 자체가, 그저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죽음이 바짝 쫓아온 게 보여. 하지만 죽음보다 항상 더 빨리 달리기만 하면 돼. 서 있으면 가라 앉고 부패한다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해. 사실 나는 언제나 달렸어.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잘 뛰어야 하는 지금 이렇게 힘겨울까.      p.211

 

1938년 11월 독일에서 대규모의 유대인 박해 사건인 일명 ‘수정의 밤’이 벌어졌고, 이 소식을 들은 작가는 사 주 만에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두 번째 소설 《여행자》를 써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수십 년 동안 독일국립도서관 문서실에 잠들어 있다가 2018년에야 저자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출간되었고, 《안네의 일기》(1942~1944)보다 앞서 집필된 유대인 당사자가 쓴 최초의 소설인 만큼 기념비적인 고발문학으로 주목받았다. 사건 당시 수많은 유리창이 깨졌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수정의 밤(Kristallnacht)’에 나치 돌격대와 지지자들은 도끼와 쇠망치로 무장하고 수천 개의 유대인 상점을 깨부수고 약탈했으며, 당시 유대인 3만명 이상이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극중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였던 질버만은 하루아침에 도망자로 전락한다. 독일에서 나가야 했지만, 사실 갈 데가 없었다. 특히나 질버만은 전형적인 약자나 희생자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인데, 나치의 탄압이 시작되기 전에는 자본가로서 기득권 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살아왔던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스스로는 다른 유대인들과 엄연히 다르다고 여기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전에는 그와 가족에게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에, 수정의 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그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라 당시의 독일 풍경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다. 작가 역시 나치를 피해 유럽을 떠돌다 스물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끝내 죽임을 당했다. 그리하여 원고가 모국어로 출판되기까지 8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이름 없는 희생자들에게 이름을 부여했다는 것도,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역사적 증언을 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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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서평]여행자 -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나* | 2021.03.19 | 추천4 | 댓글2 리뷰제목
어제부터 유대인이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확연히 드러내고 싶기도 하군. 나를 과거와 똑같이 대하는 인간들에게. (19p)   도망자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살던 사람이었다. 남들처럼 그렇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 나라에 살던 다른 사람들과 겉모습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흑인과 백인처럼 확역한 차이를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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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유대인이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확연히 드러내고 싶기도 하군. 나를 과거와 똑같이 대하는 인간들에게. (19p)

 

도망자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살던 사람이었다. 남들처럼 그렇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 나라에 살던 다른 사람들과 겉모습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흑인과 백인처럼 확역한 차이를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렸다. 어제까지 자신을 친구로 대하던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친구 뿐인가 가족도 자신을 외면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은 단지 그가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그 이유뿐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자신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자신이 성형수술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피까지 모조리 바꿀 수는 없지 않은 일인가 말이다. [주홍글씨]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단지 그 여자의 표시만 보고 그녀를 외면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하던대로 그들은 단지 맹목적으로 표시를 붙였고 외면했고 손가락질 했다. 그 작품에 나온 것과 하등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질버만은 빨간 알파벳이 찍힌 여권을 가지고 어디를 갈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자신의 나라에서조차도 갈 곳이 없는데 말이다.

 

내 여권에 빨간색 'J'가 크게 쓰여 있으니까요. (271p)

 

난민

 

[아메리칸 더트]를 생각한다. 가족을 모두 잃고 카르텔에게 쫓기던 그녀는 아들과 함께 자신이 살던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단지 걱정이 되는 것은 자신이 어디를 가도 카르텔의 손길이 뻗어올 것이기 때문에 어디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는 현실이다. 비행기를 타려 해도 기록이 남는다. 그들이 자신들을 쫓아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숨어야 한다. 하지만 숨을 곳이 없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난민이었다. 불법으로 남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기 질버만도 그녀와 동일한 생각을 했다. 일단 가진 돈은 있다. 이 돈을 가지고 국경을 넘으려 했다. 자신에게 조여오는 올가미를 피해서 말이다. 아메리칸 더트의 그녀는 성공을 했지만 질버만에게 그런 좋은 운이 계속 따라줄까. 만약 그가 국경을 넘는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인생이 그에게 펼쳐질까.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서 허가서를 받았다면 또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나라에도 난민 문제가 중요한 이슈이다. 누군가는 그들을 받아 들여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그들까지 다 받아들일 여력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어느 누가 맞다고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나조차도 그런 분야에 회색을 띠고 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사실이다. 당신의 선택은 어떠한가.

 

유대인 피가 독일 민족에 들러붙은 꼴 아닙니까. (29p)

 

여행자

 

여행이란 얼마나 즐거운것이던가. 갈 곳을 정하고 교통편을 예약하고 계획을 짜고 짐을 싸는 것조차도 다 즐거운 준비작업에 속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즐거움을 우리는 빼앗겼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이동을 자제하는 판에 타국으로 나가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다. 만약 간다 하더라도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의 격리시간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짧게 갔다 왔다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소리다. 만약 여행이라는 것이 타의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진정한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여기 질버만은  뜻하지 않은 여행자가 되어 버렸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곳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곳을 벗어나야 했고 이동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종착지는 정하지 못했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즉흥적으로 갈뿐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 간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그래서 또다시 이동을 한다. 기차는 일등칸부터 삼등칸까지 다양함을 보여준다. 흡사 질버만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정도 돈이 있고 집이 있고 멀리서 공부하는 아들이 있고 아내가 있던 그였다. 그는 왜 이런 여행자 신세가 되어야 했나.

나와 당신들이 다른게 뭔가. 우리는 정말 무서울만큼 닮지 않았나.(302p)

'하일 히틀러'라는 인삿말로 작가는 시대상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시대인지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때 말이다. 이 시대를 다른 작품처럼 직접적으로 독일군의 박해라던가 유대인의 죽음을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가볍게 그려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심각함 없이 그저 단순히 질버만이라는 사람의 뒤를 쫓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박함이 둔화되지는 않는다. 질버만의 입장에서 보라. 그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던가. 단지 생김새로 또는 자신의 조상으로 인해서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그때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사람이던가 아니면 도망자인가, 난민인가, 그도 아니면 여행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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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프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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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둥***룽 |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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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어요^^ 유대인수용소...인간의 차별 무섭고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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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s*******4 |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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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을 것 같아서 구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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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혜***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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