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3월 08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84쪽 | 416g | 127*193*28mm |
ISBN13 | 9788934991946 |
ISBN10 | 8934991941 |
발행일 | 2021년 03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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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84쪽 | 416g | 127*193*28mm |
ISBN13 | 9788934991946 |
ISBN10 | 8934991941 |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밖을 나갔다왔다가 집에 와서는 새로 설치한 스피커를 틀어두고 책을 읽었다.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나 책으로 접해도 가늠이 안간다.
특히 친구가 해준 말 중에 유대인 수용소의 관한 얘기가 있었는데
대충 그곳의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상황에서
자살률은 놀랍게도 0%에 가까웠다는 말이다.
사람이 어떤 희망이나 기대감이 없어지면 어떤 고난에도
감각이 무뎌지는 상태가 된다는 얘기를 해줬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왜곡됐다면 댓글로 알려주길 부탁해
무튼 그정도의 무력감이 느껴지려면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아야하는지
감도 안와서 좀 놀랐던 기억이 있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해 책을 선정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되게 띵 했던 부분은 아래 구절인데
"참 이상도 하지. 십 분 전까지만 해도 내 집, 그러니까 내 재산 일부가 문제였어. 그런데 이제는 내 목숨이 문제로군. 얼마나 급격한 변화인지."
이걸 읽으면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사고든 전쟁이든 비슷한 맥락의 혼란을 주지만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별안간 공격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의 질버만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부정하며 강제적인 여행을 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서평은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여행자>
?? 2021. 02. 23
?? 누가 그를 여행자로 만들었나
이 소설은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던 시기 독일을 배경으로, 유대인이지만 외적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질버만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줄거리를 적어나가는 것보다는, 내가 이 책을 보고 느낀 점을 적어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줄거리는 생략하려고 한다.
나는 유대인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관심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능한 사업가라는 점에는 감탄하지요.
그들이 뭔가 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유감이긴 하지만 놀라지는 않습니다. 세상사가 다 그래요. 한쪽이 파산하면 다른 쪽은 성공하는 법입니다.
본문 p. 30
질버만과 그의 아내 엘프리데 자신에게 집을 계약하러 온 핀들러에게 위와 같은 소리를 듣는다. 필자가 읽자마자 경악했던 부분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구나 타인의 아픔에는 무관심한 법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래도 되는가?
유대인 박해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그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구금해버리는 '그들'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가?
이 책은 <여행자>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행자라고 하면 우린 무엇을 떠올릴까?
신난 발걸음, 활기찬 미소, 밝고 당찬 분위기...
그러나 책 속에서 질버만은 도통 여행자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그는 지쳐있고, 불안에 떨며,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행동한다.(실제로 이게 맞기도 하고)
과연 이런 그를 우리는 여행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열일곱 살짜리 젊은이가 자살하는 대신, 자살하라는 조언을 건넨 쪽에 총을 쏘았다. 그래서 그가, 우리 전부가 독일 제국을 공격했다는 거로구나.
본문 p. 51
누군가 나에게 인종을 빌미로 부당한 일을 행사하려고 해서 항의했더니 그게 공격이란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그러나 그 시대에는 이 어이없는 일이 하루가 머다하고 일어났다. 대체 인종이 뭐기에 그들은 그렇게 차별 받아야 했을까. 그저 건실히 삶을 살아가던 질버만은 왜 쫓기는 '여행자'가 되어야만 했을까.
이 책은 매우 흡입력 있는 문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접해야만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저때보다 나아졌을까? 우리 사회는, 저때보다 건강해졌을까?
과연 지금은 '여행자'가 없을까?
당신들 때문에 내가 불행 공동체에 빠져버렸잖아! 나는 보통 독일 사람과 다른 점이 전혀 없지만, 당신들은 정말 다를지도 몰라.
본문 p. 251
필자가 책을 읽으며 경악했던 수많은 구절 중 하나다.
외적으로는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는 질버만. 그는 이제 자신과 같은 유대인들을 원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읽는 내내 착잡하고 속상했던 소설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결말을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그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 글에 담고 싶다.
우리는 왜 우리와 다른 누군가를 끊임없이 억압하고 착취하고 못살게 굴며 일생을 보내는 걸까?
우리는 왜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까?
그 물음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과 해결책을 찾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정의 밤’이라는 사건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꽤나 낭만적인 이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거리에 어지러이 흩어진 유리 덩어리에서 유래된 ‘수정의 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어난 유대인 박해의 출발점이었다. 독일 외교관인 에른스트 폼 라트가 폴란드계 유대인 헤르셀 그린슈판의 총을 맞고 사망하자, 1938년 11월 9일 전국의 돌격대원과 친위대 등 나치 회원들이 유대인 사회를 공격하였다. 유대인이 운영하는 상점, 유대인의 저택, 백화점 등이 약탈당했고 예배당과 묘지까지 모두 훼손되었다.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며 언제 또 다시 습격받을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 특히 유대인 박해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기에 그들은 더욱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의 『여행자』는 ‘수정의 밤’ 사건을 바탕으로 유대인에 대한 주변 독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한 유대인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자세히 묘사한 책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네의 일기』보다 앞선 고발 문학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이 책이 작가 모국어인 독일어로 출간되기까지 8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로 유대인이었던 작가 자신의 기구한 삶 때문이다. 1938년에 ‘수정의 밤’ 사건을 겪은 뒤 곧바로 4주 만에 집필한 『여행자』는 1939년에 영국, 1940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지냈던 저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맨 섬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의 수용소로 옮겨 갔다가 다시 영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배를 타고 영국으로 귀환하는 길,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로 인한 배의 침몰로 저자는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27세의 젊은 나이었다. 원고를 잃는 게 죽기보다 두려웠다고 말한 저자는, 영국으로 귀환하는 배에서 수정된 여행자 원고를 가지고 있었다. 고쳐 쓴 원고를 미리 어머니에게 보냈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쓴 초고만 남아 있었을 뿐이다. 2018년, 독일인 편집자가 초고를 다듬어 출간하였고, 『여행자』는 우리에게 왔다.
주인공 오토 질버만은 사업가로, 아내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유대인을 이방인 취급하는 독일 사람들의 태도에 혼란을 느낀다. 독일에 존재하는 유대인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며 같은 유대인을 혐오하기도 한다. 그는 ‘수정의 밤’ 사건 당일, 나치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하룻밤 사이 여행자, 아니 도망자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간신히 도망쳐 수용소에 끌려가는 상황은 면했지만,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집을 떠나 호텔에 묵기로 했지만, 가만히 누워 있으면 덮쳐오는 불안을 그는 견디지 못했다. 함께 사업하는 친구에게 찾아가 보기도 하고, 국경을 넘는 시도도 해 보고, 아리아인 아내가 피신하고 있는 처남의 집에도 방문하지만 결과는 모두 참담했다. 함께 사업하는 친구는 그를 배신했고, 벨기에 국경을 넘다 경찰에게 붙잡혔으며, 처남은 유대인 질버만을 받아줄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주인공에게 그나마 편안한 장소는 바로 기차 안. 움직이는 기차 안에 있으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고 안심한다. 언제까지나 기차를 갈아타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주인공이 맞이하게 될 최후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 보기 바란다.
『여행자』는 박해받는 유대인을 묘사한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질버만은 유대인이면서도 독일인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기독교로 개종한지도 오래다. 사업가로 부유한 생활을 해 오면서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았기에, 변해버린 상황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안에 떨면서도 거리의 유대인을 욕한다. 또한 웃음거리가 된다며 유대인 질버만을 내치던 처남에게 분노의 감정을 느끼면서 기차에서 만난 노인에게는 웃음거리가 된다는 비난을 내뱉는다. 이 얼마나 모순적 상황인가. 질버만의 심리가 당시 독일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도 질버만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질버만은 점점 이성을 놓고 악에 받쳐 소리친다. 나는 습격 받은 유대인이다, 법과 경찰은 나를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고 되뇐다. 질번만 스스로를 도망자가 아닌, 여행자로 칭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 없이 박해받는 자신은 죄가 없다는 최후의 소신 표현이 아닐까.
“나는 유대인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관심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능한 사업가라는 점에는 감탄하지요. 그들이 뭔가 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유감이긴 하지만 놀라지는 않습니다. 세상사가 다 그래요. 한쪽이 파산하면 다른 쪽은 성공하는 법입니다.
『여행자』 30p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끝없이 계속 움직이는 여행자.
나는 안전해, 지금 움직이고 있잖아.
『여행자』 24p
영원히 이런 식으로 계속될까?
여행하고, 기다리고, 도주하고?
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
왜 나를 붙잡고, 체포하고, 때리지 않을까?
나를 절망의 끝으로 몰고 가 거기 서 있게 만드네.
『여행자』 295p
『여행자』의 번역가 전은경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쳐서 여행을 그만두려는 여행자는, 모든 것을 견디기 위해 생각을 그만둔 우리 사회의 유대인은 누구일까.” 팬데믹 시대에, 바이러스의 근원지라며 쉽게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쉽게 타인에게 잘못을 돌리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 태도의 희생양들이다. 이들이 고통받도록 놔두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혐오와 증오의 대상 만들기를 멈춰야 하는 때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여행자』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