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직업 선택이라는 중대한 국면에서 우리 시야는 왜 이렇게 좁아질까? 다행히도 최근 직업 선택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 이에 대한 답이 나왔다. 이때 나온 결론과 노하우를 종합해보면, 우리가 커리어
를 잘못 선택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① 우리 뇌에는 직업 선택을 위한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지 않다.
② 우리 뇌에는 직업 선택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버그’가 존재한다.
먼저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선택하는 능력 자체가 갖춰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직업 선택이란 문제는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야 처음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사 대부분에서 인간은 직업 선택의 자유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만약 당신이 원시시대에 태어났다면 부족의 일원으로 사냥에 나서는 것 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고대에 태어났다면 뿌리 깊은 세습 구조 아래 가업을 이어받았을 것이며, 중세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농노의 삶을 살았을 확률이 꽤 높다. 사람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건 19세기 유럽에서 ‘능력주의’ 사고방식이 발전하면서부터다. 그러므로 인간은 역사의 90% 이상을 직업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연유로 우리 뇌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대로 처리하는 능력 자체가 진화하지 않았다.
--- p.16~17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진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조금이라도 바른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집필 과정에 필자는 그동안 읽은 10만 편의 과학 논문과 600명이 넘는 해외 학자/전문가 인터뷰, 특히 그중에서도 직업 선택이나 행복, 의사 결정 등에 관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선택, 활용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조직심리학이나 경제학 관련 논문을 수천 편 검토했으며, 행복이나 의사 결정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 50여 명에게 ‘적합한 직업 선택의 포인트’를 물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자면, 여기서 말하는 ‘적합한 직업’의 정의는 ‘당신이 가장 행복해 하는 일’을 뜻한다. 매일매일의 일을 통해 생활 만족도가 높아지고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늘어나며, 슬픔이나 화(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주는 일을 말한다. ‘적합한 직업’이라면 일반적으로 ‘자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 책에서는 굳이 그런 정의를 사용하지 않는다.
--- p.21
‘열정은 내 안에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이건 나랑 안 맞다’고 여기기 쉬워 그만큼 쉽게 포기해버린다. 하지만 ‘열정은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지던 작업도 ‘계속하다 보면 다른 가능성이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 없이 끝까지 몰두하는 것이다.
‘하다 보니 즐거워졌다’는 건 다분히 수동적인 태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천직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이가 훨씬 더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자’거나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자’는 말은 수많은 실험으로 틀렸음이 증명되었고, 인생 만족도를 높이는 해결책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자’의 원조나 다름없던 공자도 결국에는 원하던 정치 세계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말년에는 ‘다른 나라나 가볼까’ 한탄했다 한다.
--- p.37
조건 자체가 같은 일이라면 수입이 많은 직업을 택하는 게 인지상정이고, 적어도 연봉 800~900만 엔까지는 어쨌든 조금씩이라도 행복도가 올라간다. 그러니 거기에 자원을 투입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 인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도 이야기했듯 “20대 때보다 10배는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60대들을 찾긴 쉽지만, 그중 누구도 10배 행복해졌다고 말하진 않는” 법이다. 연봉 상승만을 좇는 인생은 결국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단 몇 퍼센트의 행복도를 올리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지 않고, 최소한의 의식주만 충족한 뒤부터는 여유 시간을 취미에 쓰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한 방식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건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 p.45~46
‘적성’이라는 말도 직업 선택 과정에서 자주 듣게 된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내가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능력에 딱 맞는 일이 존재하며, 그것만 찾으면 열심히 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말이다. 세간에서 말하는 ‘적성을 중시하는 기업’ 대다수는 지능과 흥미, 성격, 과거 경력 같은 다양한 요인을 체크해 유능한 인재를 찾으려 한다. 세상에 넘쳐나는 ‘직업 적성 검사’를 받고 ‘당신은 다른 사람을 뒷받침하는 일에 적합하다’든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타입’이라는 조언을 듣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딱 맞는 직업’을 사전에 발견할 수 있을까? 과연 이 세상에는 내 적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일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까?
--- p.67~68
올림픽에서 28개의 메달을 딴 ‘미국의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는 경기 전 항상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레이스 2시간 전 스트레칭으로 전신을 풀어주고 이후 수영장에서 45분간 워밍업을 실시한다. 그러고 나서는 본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힙합 음악을 들으며 보낸다. 밥 보먼(Bob Bowman) 코치는 그의 행동에 대해 “경기 전 하는 세세한 행동 하나하나가 승리의 감각을 전해준다”고 표현한다. 스트레칭이나 워밍업 등의 동작을 끝낼 때마다 펠프스는 확실한 성취감을 얻고, 그 덕에 보다 자신감을 갖고서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성취’의 중요성을 스포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일류 선수일수록 ‘이번 주는 폼을 개선하고 다음 주는 근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는 식의 하위 목표를 설정해, 1주일마다 세밀한 성취감을 쌓아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과학 분야에서도 ‘작은 성취가 일의 동기 부여를 크게 좌우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 p.87~88
현재 ‘다양성’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애니메이션〈토이스토리〉시리즈로 유명한 픽사(Pixar)일 것이다. 이 회사에는 ‘픽사 유니버시티(Pixar University)’라는 교육 시설이 존재해, 모든 임직원은 여러 가지 기술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 그 내용은 ‘그림 그리는 법’부터 ‘실사 영화 촬영법’까지 다양해, 여기서 익힌 기술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이 제도는 픽사에서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시작했다. 당초 픽사도 직원별 역할을 한정지었지만, 직원들 사이에 불편함과 지루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늘어났다. 이윽고 우수한 인재들이 하나 둘 떠나는 사례가 속출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픽사 측은 ‘다양성’이라는 사고방식을 도입해 직원들의 불편함과 지루함을 막는 시스템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기존의 경영 이론에서 보면 이익을 줄일 수도 있는 제도였지만, 그 덕에 픽사 직원들의 이직률을 큰 폭으로 낮출 수 있었다. 결국 우수한 인재들이 사내에 남아 장기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 p.103
인간관계 악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그 손상된 수준은 장시간 노동이나 복리후생이 부족한 상황보다도 훨씬 나쁘다. 아무리 실적이 좋은 회사라도 싫어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보내는 것만큼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직장을 선택하는 것도 결코 틀리다 할 수 없다. 적합한 직업을 찾을 때는 ‘사이좋게 지낼 사람이 있는지’의 관점도 절대 잊지 않도록 하자.
--- p.107~108
‘인간을 행복한 일로 이끄는 7가지 덕목’을 기초로 미래 가능성을 넓힐 수 있지만, 그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부정적 요소’의 존재다. ‘보람 있는 직장이지만 노동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거나 ‘꿈꾸던 일을 구했지만 상사와의 관계가 어렵다’거나, 또 ‘회사 동료들은 좋은데 윗선의 가치관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거나,,,아무리 자유가 보장된 일이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얻었다 해도, 일하는 환경에 마이너스 요소가 하나라도 있다면 ‘7가지 덕목’이 안겨주는 이점도 무의미해질지 모른다.
뇌과학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 머릿속은 부정적인 정보를 3~4초 만에 처리하는 데 반해, 긍정적인 정보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는 12초나 걸린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그만큼 빨리 우리 머릿속에 들어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요컨대 일의 긍정적인 측면만 봐서는 당신의 행복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일에서 안정을 찾고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직업을 선택하기 전 가능한 한 부정적인 요소를 배제할 필요가 있다.
--- p.126
편향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지금까지 연구로 확인된 것만 해도 170종이 넘는다. 각각의 편향에는 의사 결정을 잘못하게 만드는 것, 기억을 왜곡하는 것, 인간관계를 망치는 것 등이 있어 거의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적합한 직업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는 ‘자신이 믿는 것을 뒷받침해 줄 정보만을 모으는 심리’로, 만약 ‘현 시대는 자유롭게 일하는 방식이 최고’라 생각하면, 회사로부터 독립해 성공을 거둔 사람의 정보만을 모으고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과만 어울리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일단 이 상태에 빠진 사람은 대기업의 좋은 뉴스, 혹은 독립에 실패한 사람의 정보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과 다른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을 비판(공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치 이단 종교의 생성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 p.170~171
‘여러 관점으로 사안을 보자’는 충고를 자주 듣지만, 그만큼 따르기는 쉽지 않다. 만약 여러 관점을 반영할 수 있다면 적합한 직업 선택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때 우선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이 ‘3인칭(일리이스트) 노트’다. 여기서 ‘일리이스트(illeist)’는 라틴어 ille(3인칭의 의미)에서 온 말로, 고대 로마 시대 정치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가 《갈리아 전기》에서 스스로의 행동을 ‘그는 마을을 둘러싼 채 공격했다’고 해설하는 등 자기 일을 마치 다른 사람 일처럼 기록한 수사법에서 연유한다. ‘3인칭 노트’의 요점 역시 마찬가지로 ‘자기 행동을 3인칭으로 기록하는 것’이 최대 포인트다.
--- p.187
‘잡 크래프팅’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제인 더턴(Jane Dutton)은 다음과 같이 코멘트했다. “현대의 일은 관료적이어서 여러 타입의 사람을 한 가지 형태로 끼워 넣으려 한다. 그러니 일이 지루하고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자기 일을 가치관에 기반해 재구축할 수 있다면 어떤 직업에서나 깊은 의미가 생긴다.” 만일 당신이 ‘지금의 직장에 커다란 불만이 없음에도 이대로 괜찮을까’ 고민된다면 ‘잡 크래프팅’을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눈앞의 일을 새롭게 보게 되어 ‘보람’을 처음부터 재구축하기 때문이다.
--- p.21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