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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쉼표-0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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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476g | 135*188*22mm
ISBN13 9791191384055
ISBN10 119138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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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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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든 사이에 나쁜 놈들이 들이닥치면 어쩌지?’ 게르에서의 첫날 밤, 불을 끄고 누웠더니 낭만의 자리를 불안이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게르의 주인이 나쁜 놈들에게 우리를 넘길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는 두식이마저 한패인 경우이다. 아니면 우리가 잠든 사이 좀도둑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인 아줌마의 게르에 또 누가 있는지 보지 못했으니까.
--- p.73

나라고 독일어를 알아들었을 턱이 없는데 어른들 세분이 삼중창으로 질문을 쏟아내셨다. 사고 회로가 멈추는 것 같았다. 급한 대로 길가에 있던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앞쪽 오른쪽 타이어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펑크가 난 정도가 아니라 타이어가 찢어져서 곧 휠이 바닥에 닿을 지경이었다.
--- p.117

엄마아빠의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미안함과 애잔함이 교차했다. 젊고 예쁜 신랑신부가 가난한 현실 앞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여행, 순서상으로는 절대 내가 준비해 줄 수 없는 여행이었다. 자존심 센 엄마는 남들 앞에서는 속리산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해 왔을 것이다. 줄줄이 태어난 자식들을 키우느라 여행 한번 맘 편히 못 가는 사이 아까운 젊은 시절이 다 지나갔다.
--- p.101

문제와 해결 방법에만 집중하며 도난을 당했을 때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가입해둔 여행자 보험의 도난 보상금을 받으려면 경찰 확인서가 필요했다.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평생 전화할 일 없이 살고 싶은 곳에 독일까지 와서 전화를 하게 될 줄이야. 아빠는 근처에 CCTV가 있는지, 혹은 쓰레기통에 가방이 버려지지는 않았을지 살펴보러 다니셨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답답함이 아빠를 기다리게만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빠가 속절없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10분쯤 지나 남녀 경찰관 두 명이 왔다.
--- p.125

엄마아빠가 친퀘테레라는 이름도 어려운 마을을 알 리 없었고, 에피톤 프로젝트라는 가수를 알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가뜩이나 볼 것 많은 피렌체에서 친퀘테레를 고른 건 순전히 나의 욕심이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무슨 문제 있대? 우리가 뭐 잘못했대? 차선 위반했대? ”
--- p.189

“내가 진짜, 너랑 같이 다시 여행을 오나 봐라!” “누군 뭐 엄마랑 또 여행 한대? 나야말로 엄마 없이 다녀도 아쉬울 거 하나도 없어!” 어째 잠잠하다 싶었다. 설마 이번에는 평화롭게 여행이 끝나나 헛된 기대도 했다. 하지만 스위스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로 넘어온 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폭탄이 터졌다. 그것도 하필 사랑이 넘치는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화가 난 엄마는 싸울 때마다 꺼내는 고약한 레퍼토리로 또 내 마음을 할퀴었고, 피차 지키지 못할 말이지만 나 역시 엄마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 p.179

쿠스코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 2층 바닥에 이모가 누웠다. 체면 같은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고산병 약을 먹고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비자를 포기할 수도 없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비자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급한 마음으로 서류를 검토하는데 아빠의 증명사진이 이상했다. 퇴짜 후기들을 정독한 후 일부러 새 증명사진을 찍어서 온라인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하필이면 예전 사진을 들고 오신 것이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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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여행담을 읽으며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생각을 했다. 몽골로, 남미로, 유럽으로 떠나며 그의 가족 옆자리에 동행한 듯 즐거웠으니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정하는 순간들은 여행의 로망이 불쑥 얼굴을 달리하던 때였다. 설렘은 이내 눈물범벅으로 바뀌고, 돈독함은 냉전으로 급물쌀을 타던 때. ‘이럴려고 떠나왔나’ 주저앉고 싶은 순간들을 만나는 때. 이렇게 ‘가족과의 여행은 힘들다’는 고생담을 모두 상쇄할 행복을 저자는 이내 발견하게 된다. 떠나오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부모의 귀여움과 취향을 발견하게 되었고, 부모가 나만큼이나 열정과 젊음을 가진 오롯한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완벽한 여행코스는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떠나온 것으로 이미 여행의 의미는 완성된 것이다. 가족과의 여행은 어떤 것일까 막연하다거나 망설인다면, 이토록 야무진 에세이를 건네고 싶다.
- 임현주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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