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꽃이 되어주고 싶다〉
맹비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주었다.
비오가 나에게 와 꽃이 된 것은 2009년 1월 겨울 어느 날이었다. 중3 시절 비오는 나의 고전읽기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되어주었다.
어언 15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취미로 달리기를 했습니다. 동네 몇 바퀴 달리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마라톤 풀코스까지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달리기를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비오의 글은 간결해서 좋았다. “달리기가 밥 먹여주냐?”, “왜 뛰냐고 묻거든 웃지요.”, “게으른 사람 모두 모여라!” 비오의 글은 참 신선했다. “나는 까만 바둑돌처럼 새까맣게, 하얀 바둑돌처럼 새하얗게, 바둑 두는 법을 잊었다.”, “이상처럼 소설을 쓸 수 없지만, 뒹굴거리기는 내가 한 수 위이지 않을까?”
매일 아침 비오는 달리고 있었다. 달리면서 생각한다. 차별과 대립을 지양하고, 만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람 장자. 달리면서 마음을 비우는 장자의 수양법을 생각한다. 부처님의 삼법인을 생각한다. 제행무상, 제법무아가 별거냐? 세상은 변해간다. 달리면서 나조차도 변해간다. 세상은 변해간다. 헉헉. 더이상 뛸 수 없다. 하늘이 노랗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손가락을 접는다. 열 손가락을 다 접으면 이 고통은 끝나는데, 손가락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일체개고一切皆苦. 이래서 모든 것이 고통이란 말인가.
달리면서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야. 스스로 중요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어.” “‘소확행’이 별거야? 이렇게 달리면서 느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소확행이지?”
달리면서 생각한다. “손흥민, 황희찬, 김민재 선수가 ‘맹비오’를 알까?” 체력이 다 떨어지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 비오는 대한민국 선수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지.”
그러고 보니 비오는 달리는 철학도였다. 달리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고행을 생각하고, 니체가 말한 고통의 의미를 곱씹으며, 신영복이 말한 관계의 의미를 성찰한다.
2009년, 비오가 나에게 와 꽃이 되어준 것처럼, 2024년 나도 비오에게 꽃이 되어주고 싶다.
데카르트가 맹비오의 『거북이도 달리면 빨라집니다』를 읽는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는 달린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I run, therefore I ex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