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이십여 년 만에 첫 시집을 출간하는 시인의 원고, 틈을 두고 읽었다. 번번이 「수종사」에 이르러 뒤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했다. 어느새 시인의 속웃음이 사는 산 중턱의 별채를 기웃거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하였다. 시인은 가끔 가족을 위해 조기에 칼집을 내고 붉은 고추채를 썰어 올렸다. 조그맣게 틀어 놓은 전축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길쭉하게 자란 백도화 나무 수돗가에서 휘었다. 시인은 클래식에 띄엄띄엄 가사를 붙여 노래 불렀다. “함께 음악 듣느라 충치가 얌전해지는 곳”(「월광소나타」), “그렁그렁한 물밑에는 아직도 유선이 흐르지요/복숭아꽃 피는 옛집도 그대로 잠겨 있고요/젖 물리는 젊은 미망인 옆에는/활짝 웃는 코흘리개 소년이 붙어 있어요”(「횡성호」), “새가 흘리고 간 눈물로 단맛을 내요//특별하지 않은 날이지만 특별하게” “가까이 와서 보실래요/가까이에서 보면 비극만은 아니죠”(「팬터마임」), “한 번도 본 적 없는 당신의 웃음”(「프라이데이」). 시인은 누가 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랫말을 자연스레 잇대 놓는다. 시인의 ‘속웃음’과 ‘입속말’과 간주(間奏)로 흘려보낸 긴 ‘울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다. 시인은 자기 몸을 통해 이미지를 생성하고 알게 모르게 품고 산 날것이 발효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니까. 끝까지 자신을 관찰하여 객관화해 내는 사람이니까. 소리 나게 우는 자신을 단속하여 속웃음으로 독자를 위로하는 사람이니까. 언제나 자신의 느낌에 충실한 사람이니까. 첫 시집을 출간하는 속웃음 충만한 시인에게 슬며시 다가간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도기(陶器) 술잔에 백도화(白桃花) 꽃잎 띄워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