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폐주유소_13 부들_14 먼 곳_16 자색 감자_20 긴 머리카락_23 돌_24 잠결의 말_29 오줌 뉘는 풍경_31 호수의 한 점 섬에서_32 면 마스크_38 슬픈 사람, 그 봄에 멀리 갔어요_42 한 줄의 시_45 옹이_48 라일락_50 저녁의 밀물_52 인격들_53 바지락칼국숫집 57 어쿠스틱 기타_58 우물자리_61 수레국화_62 2 백매화_67 낮은 집_68 흰 쌀밥_70 바통터치_73 수매미_77 기다려본다_78 컨베이어벨트_80 웃는 사람 얼굴_82 다중 인격체_84 송진_87 열매들 꽃을 물고_88 개양귀비_90배막_92 봉숭아 씨방_95 진공관_98 배막_92봉숭아 씨방_95 진공관_98 엄동嚴冬_100 까만 콩_102지금은 없는 바꿈이 씨_104 인생 총량의 법칙_111 백합의 구애_114 3 혹시라도_118토끼탕_120밤의배_123귀가_124봄눈_126울타리_128버틴다_130 입김_132화살나무_134 입동立冬_137숨_138대한大寒_140하늘못_142해루질 악어 집게_145 토끼귀선인장_146 입춘立春_149 미리내_150수수밭이 보이는 창문_152 향신료_154목장_156 4 장대의 정신_161 뱅어포_162흰 소국小菊_164 졸음쉼터_166마침표_168 다비식茶毘式_170 탱자 효소_173 붉은사슴뿔버섯_174 파랫국먹는저녁_176 봄날저녁볕_178 소나기의 급습_181 뱃머리 슈퍼_185 복사꽃_186 찔레꽃_189 접속接續_190 굴뚝 연기 _193 안개비 커튼_194 손수레_196 키_198 철공소_201 5 애플 청포도_204 빗소리_206국도변 편의점_209 말벌 집_210 열대야_213 붉은 게딱지_214 선택의 폭_216 목련 필 무렵_218 말목_220 이별_224아주까리_227 초여름 밤 _228 마른오징어 눈깔_230 사과당근주스_233 먼바다의 푸름_234 막잔_236 우체통 옆 덩굴장미_238 개구리밥_241늦봄_242분홍낮달맞이_244 6 만보기_248녹슨 종탑의 사라진 종과 줄_250 목감牧甘_252옥상의 벤치_255저녁의 가면_256북방의 하늘_258담배꽃밭_262교정과 반영의 연속_264캠핑 가스난로_267가시_268태백_270봄 상추밭으로_271수목원 근처_275등_276포옹_27912월, 어느 저녁_280점_282꽃다지_285혼밥_286숨2_287 7 노르웨이숲 고양이_291 해감_294검은 칠이 벗겨진 대문_298 쥐색 콤비_300 사랑해요 _306마가리_308우리는 언제 한 몸이었지_310 채송화_313처서處暑_314오래된 물조루_316반딧불이_318슬쩍_320수퇘지 씨_322킨츠기金?き? _325화성의 푸른 노을_326김모시기씨_328연습없이살기_333상강霜降_334비둘기묘_336박주가리_339 |
이윤학의 다른 상품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문간 못에 걸린 면 마스크들을 보게 되었다. 사름방 아궁이 앞에서 고양이를 안아 들고 웃는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최선을 다해 숨을 몰아쉰 진폐증 환자, 농사꾼 아버지, 면 마스크에 끼었던 희고 고운 안개의 미립자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버지가 50여 년 농사지은 써레질 끝낸 무논에 하늘과 주위 풍경이 얼비쳤다. 쓰다듬을 게 많은 봄바람이 무논을 지나고 있었다. 기침을 멈춘 농사꾼 아버지 전생의 설렘이 이어졌다.
--- p.41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여 생사를 넘나드는 꿈을 자주 꾸었다. 곁에 머무는 느낌은 확실한데 형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아버지 옹이 같은 입을 쭈뼛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승의 말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벌써 저승의 말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스탠드를 켜놓고 물끄러미 마주 앉아 옹이를 바라보곤 하였다. --- p.48 옥수수와 사탕수수의 터널 안으로 흰 여름 수국이 치아처럼 드러났다. 아이들 웃고 떠드는 소리 뒤꼍을 돌아 나와 참깨밭 고랑으로 이어졌다. --- p.69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열쇠 구멍까지 녹이 슨 자물쇠로 잠가놓은 잃어버린 마음의 공 간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잃어버린 열쇠를 아주 잊어버린 뒤에 남겨진 마음의 공간.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았다면 나만큼이나 늙어버린 그녀가 오래된 문을 열고 나올지도 몰랐다. 흰머리가 더 많은 그녀가 허리를 구부리고 나올 수도 있겠다. --- p.78 봄눈 녹는 소리 들려왔다. 순두부 퍼 담은 광주리 얼마 남지 않은 물이 빠져나갔다. 싹이 올라오는 잔디 정원에서 콩 비린내 나는 슬픔이 밀려왔다. 김 나는 순두부에 고춧가루 뿌리고 아버지의 손에 숟가락 들려준 어머니 잠깐 웃었다. “여보, 그것만 마시고 얼른 방에 들어가 시린 몸 지졌으면 좋겠구먼유.” 뜨듯한 부뚜막에 앉아 사기잔의 막걸리 들이붓는 아버지. 카. 주전자 내둘러 막걸리 쏟아붓는 소리 콸콸 이어졌다. 김이 오르 는 냇물 흘렀다. 탐스러운 버들강아지 붉게 터진 볼 비벼 눈물 번지는 웃음 만들었다. --- p.127 너희 아버지 어제 엄마 꿈에 나와 술 좋아한 국전이 아저씨랑 어서 좋은 데로 가자, 어깨동무하고 떠나더라. 그런데 어머니는 왜 술 얘기만 나오면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 웃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 p.133 추억은, 폐허를 건너기 위해 있는 게 아닌가. --- p.138 나는 얼마간 아버지와 함께 늙어갈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오랫동안 안 마신 술을 처음처럼 마셔볼 참이다. --- p.138 비탈의 밀밭에 파란 물결이 일렁거렸다. 밀에 닿은 부드러워진 바람의 혓바닥 풋내를 건드렸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40년이 지나 있었다. 밀밭과 내리막길을 보고 아이들도 나도 신이 나 40년 전 환호를 지르고 그걸 들었다. --- p.156 술 한잔하고 싶은 충동을 해바라기를 보면서 달랬다. 뒤돌아서니 반달이 보였다. 이제 내가 반을 채웠으니 나머지 반은 당신이 채웠으면 좋겠다. --- p.161 올겨울 첫 결빙이었다. 개 물그릇에 가마솥 뜨뜻한 물을 퍼다 붓는 어머니 휜 등 위에 수십 년 된 TV 안테나 여태껏 전파를 잡아 저세상 사람 된 아버지 온돌방으로 보내고 있었다. 우라지게 슬픈 날 도통한 하늘을 보면 뭐가 좀 나아지더냐. 유낵아, 뭐가 좀 멀리라도 보이더냐. 멀겋게 끓여낸 뭇국에 돼지비계라도 몇 점 떠다니더냐. --- p.191 내가 좋아한 사람, 끝까지 좋아할 사람, 앞으로 좋아할 사람에게 소중한 게 뭔지를 생각했다. 어느새 처서도 지났다. 제 집 밖에 머무는 개 두 마리 풍성해진 꼬리털을 흔들었다. 흔한 술잔들 파묻고 그 자리를 맴돌았다.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은 예전 식구들 얼굴이 떠오르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 p.238 언제나 나에게 독기를 불어넣어 주는 고통이여, 나를 비껴가지 말아라 터진 둑은 다시 터진다, 홍수는 지나간다 --- p.269 날이 저문다. 집 입구에 무덤 두 기가 있고 비석이 삐뚜름하게 서 있다. 1급 강원공업사 앞이다. 키 낮은 벚나무 껍질이 절반 벗겨져 있다. 춥다고 할 수 없다. 염수 마른 자국 희멀건 아스팔트 바닥에 담뱃불 비벼 끄고 가야지. 무덤 아닌 곳 어디나 천국의 겨울, 사글세 단칸방 냉골이었다. --- p.270 그해 겨울, 우리는 하우스 단지를 떠돌았지 봄 상추밭으로 걸었지 우리의 입은 돌아가지 않았지 모종보다 심하게 떨리는 연약한 몸이었지 병든 모종을 솎아 짠 녹즙을 마시고 우리는 봄 상추밭으로 걸었지. --- p.273 이곳 산촌엔 조그만 동산이 있어 해와 달이 떠오르는 게 더딥니다. 그래도 아주 어둡기 전에 떠오른 달이 반가워 데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누구보다 겁이 많은 어머니. 늙어가는 어머니. 안아드리지 못한 어머니. 어머니 생각이 나는 저녁입니다. --- p.280 그녀는 쥐색 콤비를 콕 집어 내게 입히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30여 년 전 한여름 일요일 대낮에 그녀의 요청대로 겨울 콤비를 입고 밖으로 나와 걸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다행히 더위를 덜 타는 내게 말했다. “한겨울이면 오늘의 우리가 생각날 거예요. 그렇다고 촌스러운 내 이름을 부르며 울지는 말아주세요.” --- p.305 십여 년 전부터 써 오던 장편소설 한글 파일을 열었다. 최선을 다해 고쳐놓고 마지막에 “사랑해요.”라고 속으로 말하고는 잊히고 싶었다. --- p.307 천문대에 가는 날엔 꼭 흐리거나 비가 왔다. 지난 토요일에도 어제도 그랬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먼 별이 아니니 흐려도 비가 와도 상관없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별과 언젠가 그려내고 싶은 별 모두 내 안에 있는데… 나는 천문대에 가서 천체 망원경으로 문 닫힌 하늘을 보고 돌아왔다. --- p.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