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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에서 여름까지 짧은 기록 몇 개·3
_김언 11 파괴된 진공(眞空) _함기석 27 진실에 불과하지 않은 _이영광 45 시, 사물, 언어, 그리고 빛 _위선환 67 시적 순간은‘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에 있다 _이홍섭 81 시적 순간은 의지의 꿈이고, 꿈꾸는 의지 _박형준 93 수면의 떨림 _이민하 105 맹인용 카메라 _김언희 115 단독자의 고백 _이재훈 125 고해(苦海) 속의 고해(告解) _고진하 135 푸는 순간들 _오은 145 파도의 숨소리가 바위섬의 이마를 때리는 시간 _박용하 155 내부의 세계사들 _송재학 165 열세 번째 제자 _신용목 175 정지 비행하는 매 _문혜진 185 스파크와 포옹 _이윤학 195 물방울 변주 3 _김신용 205 소년이여, 오라 _손택수 219 부끄러움 _이규리 231 시의 탄생 _윤의섭 243 비겁한 침묵 _김안 255 이제 겨울이 녹기 시작했다 _길상호 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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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2일
보는 순간 이미지가 된다. 이미지가 되는 순간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로 전이되거나 중첩된다. 이미지의 이동 혹은 겹침. 그것이 비유다. 따라서 보는 순간 비유는 만들어진다. 시선은 반드시 비유를 동반한다. 그리고 시선에는 어떤 식으로든 정서가 동반된다. 요컨대 정서가 비유를 만들어낸다. 인간에게 시선 없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듯이, 정서 없는 비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유 없는 시 쓰기는 그러므로 불가능하다. 비유 없는 시 쓰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선 그것의 불가능이고 뜻밖에도 한 가지를 더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어떤 정서에 강하게 기대어서 쓰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어떤 정서가 동반된 이미지에 강하게 기대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거의 매번, 적어도 자주, 이런 정서에 기대어서, 그리고 이런 이미지에 붙들려서 시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 그 한 가지를 위해서 비유 없는 시 쓰기는 한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불가능하지만 지속될 필요가 있다. ---「그 여름에서 여름까지 짧은 기록 몇 개·3」중에서 시를 어떻게 쓰면 되냐고 여쭤보면, 나의 선생님들은 이런 알 듯 모를 듯한 말씀을 하셨다.“모를 때 써라. 알면 못 쓴다.”아마 지식과 개념이 들어찬 머리가 자유로운 상상, 직관의 움직임을 방해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진실에 불과하지 않은」중에서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대가리가 깨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한다. 뒤에 얘기하겠지만 시는‘힘’이다. 수련하지 않으면 힘을 얻을 수 없다. 요즘 시들이 수다스러워진 것은 이 힘에 대한 수련이 없기 때문이다. 시는 이스트를 넣어 빵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떡메를 쳐서 인절미를 만드는 것과 같다. 고물을 묻히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나는 시를 마치 빵 굽듯이 쓰는 것을, 또한 시단이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건 테크닉의 문제이지 시의 본질, 시 쓰기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시적 순간은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에 있다」중에서 우리의 영혼 속에는 저마다 악기가 한 대쯤 놓여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 잊힌 채 먼지를 뒤집어쓴 그 악기를 꺼내어 연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순간을 위하여 아직도 영혼의 근사한 이야기를 꿈꾼다면 자신의 마음속 악기를 깊은 밤에 혼자 튕겨 보는 연습을 하라. 시적 순간이란 악기를 다루듯 언제나 고독하게 자기 내면을 훈련하는 과정, 그 피나는 연습 속에서만 존재하니까. ---「시적 순간은 의지의 꿈이고, 꿈꾸는 의지」중에서 시적인 순간은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왜 굳이 시 속에서 헤매겠나. 시를 쓰는 순간이 시적인 순간이다. 시를 쓰는 순간은 마음을 쓰는 순간이다. 없으니까 쓴다. 재미가 없어서 쓰고 감동이 없어서 쓰고 침묵이 없어서 쓴다. 부끄러움을 쓰고 두려움을 쓰고 불안을 쓴다. 없애려고 쓴다. ‘없음’에서 시작한다. 시작(詩作)을 한다. ---「수면의 떨림」중에서 나는 내 내면의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적대와 모순에 맞서 싸울 만큼 내 문장이 단련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꿈을 존재케 하고 싶은 것도 아니며, 순결한 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쓴다. 다만 나를, 지금 여기를, 나의 헛된 상상과 치욕의 물이 뚝뚝 흐르는 기억과 아무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사랑을 견디지 못해서. 그 견딜 수 없음을 조금은 견뎌보고자 하는 비겁함으로 쓴다. ---「열세 번째 제자」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