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시집의 문장들에서 언어로 분절되기 전의 신음이 들리는 듯하다. 이 육성보다 몸의 진실을 더 잘 전해 주는 말이 있을까. 그것은 낯익은 사고와 정념의 그물을 찢고 다른 풍경을 현시한다. 이 시집의 낮고 격렬한 진술과 대화, 아름답고 파괴적인 이미지들, 미묘한 부정 교합이 낳는 팽팽한 행간은 한 영혼의 몸체가 어쩔 수 없어 타전하는 침묵의 메아리로 울려 온다. 그 풍경은 “내가 삼킨 것이 나를 못 견뎌”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 하거나, 나의 분신일 “내 개”의 ‘탄피 같은 눈’과 “머리 없는 해바라기”의 몸부림이 엄습하는 사태이다. 시인의 고통은 다른 몸을 달래는 고통이자 자신을 벌하며 앓는 고통이다. 그는 이 들끓는 무대에서 “예토”라는 이름으로 “회 뜬 도미”의 “뼈”로 헤엄쳐 가며, “핏속에/체온계를 꽂”고 다닌다. 그리고 여기 없는데도 자신을 존재라 믿는 “묵”과 “애기”와 “우무”들과 싸우고 사랑하며, 불가능한 애도의 시간일 “이름 없는 날”을 실성해서 산다. 그가 미라가 되는 때보다, 밤 골목에서 돌연 호흡이 끊기거나 불모의 일상에 짓눌리는 때보다 더 위중한 이 존재들은, 그를 신문하는 사랑이자 그가 사랑하는 원수이다. 서로의 발등을 밟고 선 이 자리에 “출구”가 있을까. 돌이 된 “마음 하나”를 날려 보내고 “눈꺼풀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을 오래 바라본다. 죽은 “너”의 세계와 이 세계 사이에 “안녕”을 놓는, 그러나 죽음 없는 “순간의 영토”를 생각해 본다. 세상에는 힘을 다해 누군가의 살과 피와 뼈를 살리고, 궁극에 자기를 살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시집도 오래된 치병의 노래이리라. 시는 흔히 상처의 기록이지만, 기록하는 그 사람은 어느 때 상처에 삶을 주는 시의 신비스러운 손길을 느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