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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네루다의 종소리│사리│김민기│무영탑│제비│약藥과 독毒 ― 제비 2│제비 3│제비 4│제비 5 ― 아들에게│호박│손│가을│명왕성冥王星│사십구재│독고 ― 문재 형│백비白碑 2부 첫눈이 말하다│들국│코스모스는 슬프다│등│모자母子│능경봉│봉평도서관 개관 기념 시낭송회│신사임당과 요구르트 아줌마│빙어│춘천│울음│맨드라미│야유회│비 온다│정선│꽁치│선시禪詩│벚나무의 침묵│패랭이꽃│하늘의 벌레│초당 순두부│숭어│어미소와 송아지│추색秋色│강릉의 일몰│골목길│등대 2 3부 햇봄│연꽃등│모를 일│요로코롬 동그라미│법명 받던 날│취모검 날 끝에서 ― 곡哭 오현스님│긴 잠 ― 곡哭 오현스님 2│독작 ― 곡哭 오현스님 3│설악무산雪嶽霧山 대종사 행장行狀│옛 백담사│안거安居│아생 시인의 산문 _ 종소리를 머금다 │ 이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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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작 시집을 펴내면서 이홍섭 시인은 「시인의 말」과 「시인의 산문」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돌이켜보니, 존경과 사랑이 넘칠 때 시도 충만했던 것 같다. 한동안 시를 쓰지 못하면서 내 속에 넘치던 존경과 사랑이 다 어디로 사라져 갔을까에 대하여 깊이 참구했다.// 시집을 엮는 내내 경포호수 습지에서 만난 적이 있는 자주색 가시연꽃이 자꾸만 생각났다. 꽃이라기보다는, 나 여기 살아 있다고 외치는 주먹손 같았던 가시연꽃. 그 작은 꽃이 온몸에 가시를 두른 것이 참으로 처연했다.”(「시인의 말」) “오래전, 기억의 저편에 해질녘에 들었던 종소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 작은 도시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던 사원에서 퍼져 나오던 그 저녁 종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순 평화롭게 만들었고, 마치 비단 천을 덮듯 천천히 도시의 하루를 쓸어 담았다. 신기하게도 그 종소리가 그친 뒤에는 사람보다는 다른 생명이 주인공이 되었다. 바람 소리, 소나무 쓸리는 소리, 물결 소리, 귀뚜라미 소리, 개 짖는 소리가 살아났고, 나무와 풀의 냄새도 깊숙이 들어왔다. 저녁 종소리는 숱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잡소리들을 잠재우면서, 잊었던, 혹은 저쪽으로 밀려났던 생명과 감각들을 다시 살아나게 했다. 며칠 전, 문득 그 저녁 종소리가 그리워졌다. 이제 도시의 사원에서는 저녁 종을 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치고 있는데 나에게까지 들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예전보다 저녁은 훨씬 늦게 오고, 밤낮의 구별도 거의 없어졌으니 이제 저녁 종소리는 그 의미가 무색해졌다. 더불어 사람이 주인공인 시간도 그만큼 길어졌고, 다른 생명은 뒷전으로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 그런데 뜬금없이 난 왜 그 저녁 종소리가 그리워지는 것일까. (…중략…) 문득 종소리가 떠올랐을 때, 시가 종소리를 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종을 누가 치는가 하는 질문은 저 산속의 수좌들이 깨치고자 하는 화두 속에나 있는 것이고, 시인은 다만 건달처럼 그 종소리를, 그리고 그 외의 숱한 종소리를 부단히 담아낼 뿐이다. 화장터의 연기도 종소리고, 어머니의 울음도 종소리고, 노스님의 재도 종소리다. 구름과 새와 서쪽 하늘도 참으로 아름다운 종소리이다. 시인은 하루하루 그 종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최선을 다해 담아내는 존재가 아닐까. 배가 고파서, 늘 허기가 져서 그 종소리로 배를 채워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좋은 시는, 아니 내가 쓰고 싶은 시는 이 종소리가 시의 안팎에서 울려 퍼지는 시다. 종소리의 시작도 아니고, 종소리의 끝도 아닌, 늘 종소리가 웅웅한 시, 종소리를 머금고 있는 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내 몸을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길목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종소리를 머금을 수 있지 않겠는가.”(시인의 산문, 「종소리를 머금다」) 야밤에 불현듯 깨어나 시를 쓰는 날이 잦다 부모님은 살아 계시고 아이는 아직 어리고 갈 길은 먼데 벌떡 일어나 자기 가슴을 치는 고릴라처럼 궁한 귀신처럼 나는 무엇을 끄적이려 하는가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났고 서녘 노을 아래 빈 과녁들만 어지러운데 나는 왜 불현듯 깨어나 시를 쓰고 있는가 꿈꾸다 죽은 노인보다 꿈을 죽인 노인으로 자기 가슴이 다 부서진 고릴라처럼 그렇게 살다가 가고 싶은데 이 야밤에 시는 왜 다시 찾아오는가 ― 「아생」 전문 세상은 여전히 숱한 물욕의 소리들로 가득하고, 자기 생존을 위한 방편의 온갖 술수들로 소란하다. 문학과 예술이 그런 비정상의 사태를 오히려 부추기기까지 하는 일그러진 세상이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이 시집을 읽으시라. 이홍섭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귀를 씻는다는 것이고, 마침내 고요에 들 종소리를 듣는 것일 테다. 시인의 말 돌이켜보니, 존경과 사랑이 넘칠 때 시도 충만했던 것 같다. 한동안 시를 쓰지 못하면서 내 속에 넘치던 존경과 사랑이 다 어디로 사라져 갔을까에 대하여 깊이 참구했다. 시집을 엮는 내내 경포호수 습지에서 만난 적이 있는 자주색 가시연꽃이 자꾸만 생각났다. 꽃이라기보다는, 나 여기 살아 있다고 외치는 주먹손 같았던 가시연꽃. 그 작은 꽃이 온몸에 가시를 두른 것이 참으로 처연했다. 2024년 가을 이홍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