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경 시인의 이번 시집은 ‘미병(未病)의 시집’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병은 “숨을 쉴 수가 없”(「미병」)을 정도로 힘들지만, 막상 병원에 가면 병을 특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시인의 미병은 “기억의 집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다시 세 번째 골목을 찾는”(「부서지는 골목」) 공간 탈주병, “오래된 청동거울 같았다/백 년을 산 이끼식물 같았다”(「나의 가을」)라는 인식에서 보이는 시간 탈주병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병은 생로병사와 같은,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기에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는 없습니다.
시인이 “그날 나는 어디에도 없었네”(「양초를 사러 가기로 했네」)라는 자기 부재와, “나는 시간을 견디는 방법을 알고 있다.”(「가을」)라는 자기 견딤을 토로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이 붉은 노을을 보며 “매 순간이 마지막이었던//삶의 하루들”(「노을은 붉은 화장을 하고」)을 떠올리고, 동백을 보며 “뒤돌아보지 않고//툭,/홀로 떨어지네”(「동백」)라고 노래하는 것은 실로 큰 울림을 줍니다. 시인에게 미병(未病)은 비병(非病)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