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시골 밥상 앞에 둘러앉아 싱겁지만 정겨운 싱건지를 먹으며 “서로의 온도에 기대”는 전북 방언 특유의 소박한 말맛에 초대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아침마다 마룻바닥을 닦고 모서리의 작은 틈에 묻은 얼룩까지 세심하게 어루만지며 자연과 삶에 올리던 시인의 감사 기도에 빠져들려는 찰나,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뭔가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자 몸부림치는 “은심(隱心)”에 나도 모르게 걸려버렸다. 그 은심의 말은 처음부터 기상 관측 장비 ‘백엽상’의 이름을 빌려 개와 함께 웅크린 몸으로 날씨와 자아의 흔들림을 측정하는 감정의 기상학에 닿아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지역적 삶의 결을 통해 말할 수 없던 존재들이 말하게 되는 시적 공간을 창조한다. 아버지의 기일, 어머니의 말 등 기억의 공동체와 물외, 노각, 탱자 울타리 등 토속적인 시어들이 빚어낸 세계가 그렇다. 그런데 그 세계는 회상과 서정시의 문법에 머물지 않고 무당의 의례와 귀신의 언어로 거듭나며 죽음과 삶의 경계를 전복시킨다. 3부의 ‘소룡골 시편’은 그것을 입체적으로 집약해낸다. 아득한 과거의 신화적인 한순간을 “살고 싶은 죄가 썩지 않아 죄를 지어 올리네”라고 비손하는 만신의 언어를 빌려 우리 바로 곁의 현실로 불러낸다. 이처럼 지연 시인의 시세계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의인화하여 목소리와 생명력을 부여하며 인간 너머의 존재와 우리의 현실을 잇는, 만신의 프로소포페이아의 경계에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