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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장 쉴 새 없이 명랑하자 화전을 부치다 쉴 새 없이 명랑하자 사랑의 꽃가지에 앉은 생 둥지를 떠난 새는 둥지를 돌아보지 않는다 내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아직도 써야 할 청춘이 남아 있다 청풍명월을 노니는 법 인간 증서 예술 피리 흰 종이의 숨결, 창조의 여백 소멸의 아름다움 새들은 뼛속이 비어 하늘을 가볍게 날 수 있다 알몸의 귀향 고드름 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2장 너와 나를 살리는 녹색의 시간 삶이 버거울 땐 잡초를 보라 땔나무를 쪼개다가 꽃만으로도 부자 최고의 의원은 주방에 있다 느긋한 삶의 지혜 하심 한가로움이말로 영의 보석 제비들이 찾아오셨다 구부러진 길이 좋아 너와 나를 살리는 녹색의 시간 나는 진짜 부자 새에게는 내일이란 개념이 없다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 두더지와 도도새 생명을 살리는 물건, 요강을 타자 아날로그식 생존법 3장 꽃들에겐 이분법이 없다 여물어간다는 것 시와 꽃과 예술과 하느님을 낭비하자 당신은 무엇을 잃었는가 계도 꽃들에겐 이분법이 없다 그대 나날의 삶이 그대의 사원 우렁이의 사랑법 영혼의 정원에 물주는 방법 향기로운 어울림 자아의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마음의 다이어트 성탄, 신생의 불꽃놀이 모성애가 시들면 지구도 시든다 이젠 하늘이 굴리는 대로 살 거야 4장 아플 때 즐거움을 창조하라 첫 불 나의 비밀스런 아름다운 양식 장엄한 빛의 속삭임 사람은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돌담과 트럼프의 장벽 아플 때 즐거움을 창조하라 생존배낭 맛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지기 빌려온 지식, 체화된 지식 어린 야만을 용서하다 오 남매 집에만 오면 희망이 생긴다 아름다움을 멀리하는 집 수행자보다 거룩한 야크의 공생 우리가 지녀야 할 두 개의 가방 차별의 세상을 평정한 함박눈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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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끈을 가져다가 드러누워 있는 녀석들을 조심스레 일으켜 세운 후 몇 그루씩 묶어주었다. 꽃들을 세워주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네들은 서예가 선생께서 써준 글귀처럼 쉴 새 없이 명랑한 것 같아요.” 내가 거들었다. “그거 우리 집 가훈하면 좋겠소. 〈쉴 새 없이 명랑하자!〉”---「쉴 새 없이 명랑하자」중에서
내가 은행나무를 쳐다보며 문득 입을 열자, 함께 동행한 젊은 시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고사목으로 보일 만큼 폭삭 늙었지만, 아직도 써야 할 청춘이 남았나 봅니다.” 그날 은행나무를 보고 온 뒤 나는 젊은 시인이 한 말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아직도 써야 할 청춘이 남았나 보다’라는 말. 이 은행나무처럼 연륜이 오래된 나무는 있지만 늙은 나무란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 나무는 늘 청춘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아직도 써야 할 청춘이 남아 있다」중에서 저물녘, 천둥지기 논들이 있는 농로를 걸었다. 모내기가 끝나 초록 기쁨이 초록초록 자라 논배미마다 우렁이가 까놓은 알들이 딸기 모양으로 볏잎에 붙어 있었다. 이제 곧 우렁이들은 알을 까고 나와 잡초를 씹어 먹고 벼가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돕다가 추수가 끝나면 석회질 껍질만 남으리라. 이것이 우렁이의 사랑법이다. 사랑을 자기 몸으로 아는 생명은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우렁이의 사랑법」중에서 일찍이 장자는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백하지만,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고 했다. 여러 해 전 우리 가족은 시골로 솔가하여 야생의 삶을 즐기고, 잡초를 뜯어 먹으며 지낸다. 우리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묻는다. “아니, 잡초를 무슨 맛으로 먹죠?” 그러면 대꾸한다. “싱겁고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먹죠. 그러면 자극을 탐하는 혀에 덜 놀아나게 되죠.” 요컨대 우리가 맛의 지배를 덜 받게 되면, 그만큼 존재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숱한 생의 속박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맛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지기」중에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소속 칼리지의 주요 목표는 학식이나 지식을 두뇌에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곳 졸업생은 의사나 변호사, 신학자, 물리학자, 운동선수 같은 전문가가 되어 나가지 않는다고. 젊은이들은 이 칼리지에 2~3년을 머무르며 조화로운 삶을 배우는데, 육체, 정신, 심리가 고루 단련된 완벽한 인간이 유일한 목표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졸업식 때 받는 것은 전공 분야에 대한 증서가 아니라 ‘인간 증서’라고.---「인간 증서」중에서 잡초는 예측불가의 환경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을 가졌다. 어떤 식물학자는 이런 잡초를 두고 “예측불가능한 난세亂世를 좋아하는 식물”이라고 했다. 햐, 식물의 세계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웅숭깊다.---「삶이 버거울 땐 잡초를 보라」중에서 아내는 그동안 온갖 꽃씨를 구하고 틈틈이 뒷산을 오르내리며 야생화를 캐다 심으면서 정성을 다해 마당을 가꾸었다. 그래서 ‘꽃만으로도 부자’라고 탄성이 나올 만큼 우리 집 마당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정원으로 변했다. 그러나 혹한의 겨울을 지내는 동안은 가족들이 몹시 힘들어했다.---「꽃만으로도 부자」중에서 어느 날 나는 이 비단풀을 찾아 마당에 쪼그리고 앉았다. 적자색의 꽃은 몸을 낮춰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일 정도로 작았다. 과연 꽃에는 잔 개미들이 붙어 꿀을 빨고 있었다. 하여 간 그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식물과 사귀기 위해 마치 절을 하듯 한껏 몸을 낮추었다.---「하심」중에서 “아무렴 어때요. 우리가 농사짓는 동안은 우리 땅이죠.” 진심이다. 하늘을 소유할 수 없듯이 누가 땅을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말뜻을 알아들은 할머니가 한 술 더 뜨신다. “고 선상네는 진짜 부자네요.” 나는 할머니에게 엄지를 척 세워 보인다. “네, 부자 맞아요. 마을 논밭가의 잡초를 뜯어 먹으니, 우리 마을의 논밭도 다 우리 소유죠.” 할머니는 어이가 없는 듯,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벙긋 웃으며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신다. ---「나는 진짜 부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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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시인, 권포근 잡초요리연구가의
따뜻한 공생을 만나다 “여보, 저 집은 꽃만으로도 부자네요!” 산책을 다녀오다 집 부근에 이르렀을 때 아내는 우리가 사는 집을 마치 남의 집을 가리킬 때처럼 ‘저 집’이라 부르며 탄성을 질렀다. 고진하 시인과 권포근 잡초요리연구가는 강원도로 귀촌 귀농해 자발적 불편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잡초로 밥을 지어 먹기 시작하면서 “흔한 것이 귀하다”는 삶의 화두를 깨달았고, 잡초처럼 낮아진 겸허한 삶을 살고 있다. 화전을 부쳐 먹기 위해 뒷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따고, 보랏빛 제비꼿, 노란 꽃다지도 조금 뜯어 내려오며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엄청 사치를 누리는 것 맞죠?” “암, 사치구 말구. 우리가 시골에 살지 않았으면 어찌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겠소.”(화전을 부치다, 33p) 지천에 널린 꽃을 뜯고, 잡초를 뜯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그들은 이것을 ‘사치’라고 말한다. 현대인에게 사치란 지나치게 높은 엥겔지수, 월급에 맞먹는 쇼핑비용을 뜻하겠지만 이 시골 부부에게 사치는 그저 화전을 부칠 만큼 넉넉하게 꽃을 뜯어오는 일이다. 요즘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뜻하는 말이다. 이 책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골생활의 소확행을 담았다. 마트에 파는 잘 포장된 채소 대신 논밭가에 들쭉날쭉 자란 잡초를 뜯어 멋진 요리를 만들고, 버튼만 누르면 뜨근해지는 편리한 보일러 대신 직접 장작을 쪼개 아궁이를 때야 하는 전통 한옥에 사는 일. 화장실이 집밖에 있어 추운 겨울엔 방안에 둔 요강을 쓰고, 온 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냄새 가득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사니 더 편해졌다는 부부의 시골 라이프! “고 선상네는 진짜 부자네요.” “네, 부자 맞아요. 마을 논밭가의 잡초를 뜯어 먹으니, 우리 마을 논밭도 다 우리 소유죠.” 꽃이 피면 꽃마중을 가고, 태풍으로 쓰러진 꽃들은 기둥을 엮어 바로 세워준다. 가뭄에는 하늘이 주시는 비를 기다리고, 단풍이 질 땐 노랗게 ‘산불’이 났다며 가을을 반기고, 겨울엔 처마 밑에 달린 고드름을 실로폰처럼 두드리며 노래도 부른다. 바쁜 도시에선 계절도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느린 시골에선 계절이 천천히 다가와 오래 머물다 간다. 추수가 끝난 고추밭에 아직 달려 있는 풋고추를 먹을 만큼 따가라고 권하는 이웃, 눈 오는 날이면 심심풀이로 눈사람을 만들어 경로당 앞에 세워두는 할머니들, 학교 대신 홈스쿨링으로 꿈을 키우는 오 남매, 평생 남의 머리만 만지며 살았지만 가끔 도인 같은 말로 놀라게 하는 이발소 주인. 평범한 이웃이지만 그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마주하는 삶은 예사롭지 않다. 가뭄에도 꽃을 피우는 잡초들, 담을 타고 넘어와 밥을 동냥하는 고양이 가족, 철마다 세를 주는 제비들 모두 행복하게 공생하는 시골 이야기. 너도나도 ‘힐링’과 ‘여유’를 좇는 시대다. 도시생활은 너무 바쁘고 빠르고 정신없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편리한 일상에 익숙해져 조금이라도 느리고 불편한 것들은 힘들어한다. 경쟁하며 사느라 주위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이 부부는 왜 도시를 벗어나 이렇게 불편하게 사는 것일까? 자발적 가난, 자발적 불편 속으로 들어간 일상을 확인해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도시보다 느리고 불편하지만 불편한 만큼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따뜻한 일상을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