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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대체 무엇일까? 일단 내 몸은 아니다. 내 뇌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전부 내 경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은 나의 시각 경험이고, 내가 내 뇌를 떠올리는 것은 나의 표상 경험이다. 모두 내가 경험하는 내용이다. 이 모든 경험을 겪는 자, 즉 ‘나’는 존재하지만 그 경험하는 자가 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경험의 내용일 뿐, 경험하는 주체를 엿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그 어떤 주장이나 이론을 떠올리더라도 그것은 내 머릿속 표상에 불과하다. 즉 경험의 일종이지, 경험하는 자는 아니다. 경험하는 주체를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경험하는 주체는 항상 비어 있다. 채워지는 것은 오로지 형형색색의 경험일 뿐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하고 있다는 말은, 그 경험을 가능케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비어 있지만 존재하는 무엇, 자신은 비어 있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하는, 그래서 형형색색으로 이 세상을 채우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경험하는 자를 ‘나’라고 부를 수도 있고, 혹은 ‘마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뭐라고 부르든 일상에서 가리키는 의미와는 조금 달라지기 때문에 전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비어 있는 것은 비어 있는 대로 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이쯤 되면 그 경험하는 자가 과연 존재하는지도 무의미해진다. 그야말로 비어 있는 공포인데, 그것의 존재를 놓고 벌이는 표상 세계의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언어와 표상은 우리를 여기까지만 안내할 뿐이다.